1934년 1월 7일 新昌 敎會 說敎
本文:
이사야 61장 1 - 3절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 禧年 희년
安息年의 7回를 거듭한 다음해인 50년이 즉 禧年이다.
喇叭을 大吹하여 禧年을 고하여 복된 해의 소식을 전한다. 이 해에는 토지를 不耕 休息하고 奴隸에게 自由를 주고 貧困을 因하여 失한 世帶의 재산의 所領을 舊主에게 復還시키는 해이다.
이와같이 하여 이 해에는 유대국 사회를 처음 여호와께서 所立 하신 대로 자유와 平等에 基礎로 復歸하여 처음 가나안에 入하여 얻은 基業 本位로 돌아가게 하였던 것이다.
이 날은 일부의 小數는 모르나 大衆은 그 이상의 기브고 즐거운 해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最高尙한 靈敎 意義로 解釋하여 모든 예언자는 말하였으며 예수께서도 친히 은혜의 시대를 희년과 같이 말씀하야 메시아 나라의 기쁨을 論及 하시었다.
눅 4장16절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그리하여 기쁨의 해를 禧年, 千禧年이라하고 명칭하여 즐거움의 대표적 名詞로 사용한다.
이 기쁨의 해, 행복의 해는 왔나니 基督舊敎가 朝鮮에 入한지는 勿論 100여년이나 新敎
도마스 목사 入朝 殉敎도 70년이다.
그러나 合法的으로 新敎가 朝鮮 宣敎에 着年 한지는 꼭 50년이 되는 해이다.
그 까닭에 長老敎 總會에서는 禧年 事業을 착년하였고북 장로교 선교부에서는 50년 희년 기념식 준비와 기타 사업 준비에 奔忙한 중이다.
그리고 외국에서 희년 기념식에 참여할 貴賓들도 多數할 模樣이라고 傳聞 된다.
2. 過去 50년의 成長期
과거 50년은 조선 교회의 好時節이었다. 세계가 어떻고 政變이 어떻다고 할지라도 전 세계적으로 보아서 우리 조선교회처럼 加速度로 성장 된 교회는 다시없다고 말 할수 있다.
마치 좋은 씨가 沃土에 떨어져서 雨順風調와 따뜻한 일광의 혜택을 입어서 움이 빨리 트고 싹이 낮과 밤을 헤아리지 않으며 무럭무럭 자라남과 같도다.
그 동안에 눈을 들어 世界를 본다던지 東洋을 한번 본다든지 朝鮮內를 한번 回還한다면 끔찍끔찍한 전쟁도 많았고 政變도 꾀 많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일이 지나고 지날 때에 조선 교회는 가문 날에 소낙비를 맞은 것처럼 잠시 쓰러져 누운 것 같았으나 소낙비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뿌리는 더욱 더욱 깊이 박아 무럭무럭 자라남 같도다.
이것은 불쌍한 민족을 늘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特愛시오 大祝福 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과거와 같은 교회의 성장기가 再現하기를 筆者 역시 기다린다만은 다시 올는지?
바라건대 加速度의 成長期가 있을 것을 믿는다.
고린도 전서 3장 6절 말씀에 바울은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고 오직 하나님은 자라게 하시나니 하신 말씀같이 심우는 자가 있어야 곡식이 날 것만은 사실이다.
그뿐 아니라 물을 주는 자가 있어야 곡식은 마르지 않고 자랄 것이다.
이와 같이 조선 교회의 성장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일이다.
첫째는 선교사들 중에는 위대한 信仰家, 위대한 人物이 있었다.
이름은 누구라고 거론 할 수는 없으나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니) 그의 성격이라든지, 정신이라든지, 冒險性이라든지, 忍耐力 이라든지, 경제방면 用途라든지, 남을 도와 주는 마음이라든지, 모두가 近代에서 보기 드믄 좋은 人物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바울같은 인물이 아니었던들 기독교는 가속도로 세계적 종교가 되어서 수억인생에게 복음이 그렇게 빨리 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위대한 신앙가인 선교사의 힘도 꽤 많았다.
궁벽한 산촌, 태산준령을 넘어 산 설고 물선 강산에 와서 묵고 묵은 밭, 이 강산, 이 민족의 묵은 마음에 씨를 심느라고 얼마나 애를 썼을 것인가?
필자는 상상만 하여도 고마운 것뿐이다. 지금도 이러한 선교사가 없다는 것은 아니나 年老하고보니 기력이 衰殘하여 마음뿐이고 생각뿐이니 後進들도 그와 같을 수 없을 것인가?.
둘째로는 朝鮮 敎役者 先進들의 努力이다.
朝鮮에 처음으로 生前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西敎를 전하니 그 누가 西人의 敎를 들으랴? 그러나 듯이 있고 생각이 있고 의지가 있는 학자들과 그 중에 명철한 人格者, 心性이 열열하야 보통에서 좀 지난 인물들이 먼저 믿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먼저 믿고 보니 교회의 지도인물이 되고 알지 못하는 대중들에게 주의 복음을 왜치고 세계적 선교와 세계 소문을 전하니 迷信에 잠긴 백성들에게 참 지도자가 되어 어느 방면으로든지 선생님의 대우를 받는 동시에 지성껏, 자기의 생명을 내어 놓고 핍박중에서 교회를 지도하고 물을 주니 道의 씨는 싹이 나고 점점 자라 잎이 피고 가지가 자라고 하여 現存 교회를 이룬 것이다.
現今 얼마동안 長成基가 지나서 그런지 ! 우리들의 노력이 부족하여서인지 ! 別變動이 없어서 그러한지! 어느 누가 剪枝(無宣敎思想)를 하여서인지는 都是 알 길이 없으나 이 만큼이라도 자라게한 先輩들의 물을 준 수고가 고마운 것 뿐이다.
셋째는 人物 養成이다.
그 동안 조선 교회의 성장 이유중 하나는 좋은 인물 양성이다. 필자가 평양에 있을 때, 어떤 선교사(모이리 傳士)가 病中에 누어있을 때에 어느 친구가 가서 묻기를 당신 지금 저금한 것이 얼마냐? 고 물을 때에 그 친구 대답하기를 나는 오히려 부채가 있소 하고 대답하면서 내가 죽는 다고하면 내가 양성하던 인물을 뉘게 맡길 것인가를 걱정이라고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까지 氏가 얼마만큼의 인물을 양성하였는지는 모르나 그 때 필자가 듣기에 대학을 맞추어 준 사람이 20여명이라고 하니 자기 자식 1人도 양성하기 어려운 세상에 놀랄만한 일이다.
이와같이 과거 50년 동안에 많은 선교사들은 全力을 다하여 人物養成에 置重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조선 교회는 자기들의 助師(現今은 傳道師)들을 神學校, 혹은 성경학권에 파송하여 인물을 양성시켰다. 그것은 곧 교인, 교회의 전체의 생명양식, 生命水를 가져다가 分配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더욱이 좋은 일이다. 이 일이 永久히 있어야 할 것이다.
人物이 가난한 우리 교회에 없지 못할 한가지 일인데 지금 와서는 자기 교회의 조사가 공부 가는 것을, 혹은 선교사, 혹은 교회가 반대하여 몇해에 한번씩 신학교를 가게하니 이는 소위 손톱 곪는 줄만 알고 염통 곪는 줄을 모르는 格이라고 하고 싶다.
이미 老將 敎役者는 나이 늙어 마음분이고 젊은 청년들은 修養(信仰 眞理의 經驗) 이 부족하니 인물을 양성할 필요한 일 중에 하나인 것은 사실이다.
일본 선교사로 나갔던 웰리암씨는 자기 말이 나는 일본에 나와서 수십 년 동안 한 일은 賀川風彦밖에 얻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
사업성공에는 좋은 인물 양성이 절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일본에 어떤 문학가요 대 정치가 일인이 말하기를 알본에서 수천만원의 경비로 10년을 기독교를 선전한 것 보다 賀川 씨의 “사선을 넘어서” 의 一冊의 效力이 더 나았다고 평론한 것을 보았다.
그와 같이 조선 교회가 가속도로 성장한 이유 중의 하나로 빠질 수 없는 것은 인물 양성이라고 말 할 수 있다.
혹은 개인. 혹은 교회, 혹은 학교, 혹은 선교부, 혹은 병원, 혹은 上會 獎學金(總會 學務部) 으로서 手中 無一分錢 이지만 貸費, 補費를 받아 修養 받은 인물들의 활동으로 조선 교회의 성장 이유중 하나가인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요사이는 인물 양성하는 이가 없는가? 물론 그런 것은 아니다. 없다고 하기 보다는 적다고 말하겠다.
필자는 요사이 이러한 소식을 듣고 감격한 눈물을 금할수 없었다.
원산 신학원에 교편을 잡고 있는 모 선교 부인(朴惠善 -남편은 귀국 휴양 중 별세)은 자기 앞으로 양성하는 학생이 십여 명이 되어서 자기 식사를 동거하는 다른 부인들과 같이 못하게 된다고 하니 그 얼마나 인물 양성에 전력을 다하느냐?
이러한 고마운 선교사들의 인물 양성으로 인물이 배출 하여 가속도로 성장한 이유중에 하나를 었었다고 할 것이다.
3. 未來 50년의 成熟期
과거 50년 동안 장성한 조선 교회는 미래 50년 동안은 성숙기라고 보고 싶다.
가지가 많이 자라고 잎이 피어 허울이 아주 좋게 성장하였다. 그 까닭은 씨를 심으던 선교사도 세계적으로 자신들이 자랑하고 칭찬도 받았던 것이며 열매나무(교회)가지도 칭찬을 받았었다.
그러나 요근 수년에는 量으로 자라남이 없다고 自他가 다 걱정으로 지낸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不振이냐? 退步냐? 휴식이냐? 하고 걱정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필자 소견이 좁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역사 페이지를 보니 어느 나라를 물론하고 처음 반세기는 양으로, 반세기는 질로 즉 內面充實로 자라남을 고찰 하였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기를 일년을 일세기라고 보고 싶다. 봄에는 움이 트고 싹이 자라고 다음에는 가지가 자라나서 꽃도 피고 잎도 피어 연연 무성하여 지다가 꽃이 떨어지고 과실이 처음 맺을 때 같이 해서는 아무도 낙심키 쉽고 나무가 나무 구실을 할 것 같지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공연히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 것과 같이 근대 조선 교회는 꽃도 피었고 잎도 피어서 과거 50년 동안 잘 성장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사이 보면 교회가 잘 자라나지 나는 것 같지 아니하다. 그래서 이것이 웬 셈이냐? 이것이 어찜이냐? 원인이 있겠다고 하여 애를 쓰는 이도 보고 또 조선 교회가 퇴보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도 많이 본다. 그러나 나는 그다지 비관하지 아니한다.
왜 그런가하면 처음 열매를 맺기 시작 할 그 때에는 열매 맺는데에만 집중하는 까닭에 가지와 잎은 그렇게 가속도로 성장치 못할 것만은 사실인데 그것을 퇴보니 부패하였느니 枯息이니 하는 것은 나의 視察에는 잘 맞지 아니한다.
차라리 아직까지 완전한 조직적 조선에 기독교가 건설 못 하였다고 하면 이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量만 위하여서 선동적으로 일하였다. 한 부흥회야 몇 백 명씩 믿었다하는 그러한 운동이다. 부흥회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불신자를 대상으로 전도 강연식으로 하기 까닭에 교인에게 보다도 불신자 편으로 치중 하였던 것이다.
필자가 있던 교회에 부흥사를 초청하여 10일간 전도결과 98명 新信者가 믿기로 하였으나 부흥사가 간 다음에는 10여명이 오더니 자중에는 1人도 다니지 아니하였다. (본 교회에서는 전력을 다하였어도) 이러한 일이 非一非再이다.
이후로는 언필칭 부흥회 보다는 영의 양식이 되는 사경회라고 하고 교인 본위로 하고 불신자의 거수(억지로 손을 들도록)는 그만두고 마음에 결신이 있도록 하여 교회에 찾아오도록 할 수 없을까를 생각한다.
물론 개인 전도는 각자가 힘슬 것이다. 우리는 신앙적으로 낙심치 말 것이다.
과거에는, 작년에 믿는 이가 금년에 背道하고 몇해전에 교역을 하던이가 몇해 후에는 교회를 반대하는 이가 종종 있다. 이후에도 그러한 不祥事가 없다는 것은 아니나 비교적 그러한 일이 적어져야 한다.
과거에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마귀가 무서워서, 별별 일로 다니는 이가 많았으나 이제부터는 참으로 믿으려고 다니는 이가 많아야 한다.
不然이면 조선 기독교는 건설되지 아니한다. 설교자나 교인을 勿論하고 리론과 실현이 맞아서 바른 신앙을 가지고 圓滿한 人格다운 實際生活로 복음 진리를 전할 때이다.
그리고 교역자는 修養을 등한히 말아서 사회에 뒤 덜어지지 말고 산에 세운 성, 暗夜燈火
같이 어느 방면에서든지 앞서 나갈 수 있고 교회로서는 심지어 문부까지라도 조직적으로 해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누가 보든지 규례적이요 통일적이어서 우리도 우리의 조선 교회를 완전케 할 때 도 미래 50년이다.
성경 번역이나 해석류이나 찬송까지라도 과거에는 不統一이요 無順市的이요 남의 흉내 내어 지냈으나 미래 50년에는 완성 될 것으로 믿는다.
어느 방면으로 보던지 미래 50년은 덜 피고, 덜 되고,미비한 점이 완성 될 것을 생각하고 성숙기라고 보고 싶다.
4. 現今의 除草期
과거 50년의 성장기와 미래 50년의 성숙기를 생각하니 現今은 제초기라고 보고 싶다.
지난 가을 장로교 총회에서 異端者 지적 불용납 이라든지 경남 노회에서 대중 출교 사건이라든지, 함남 원산에서 출교 사건, 평양 노회에서 이단자 사건, 어느 노회, 어느 시찰회, 어느 당회를 勿論하고 이단들 까닭에 대제초를 하면서 곡식 상할까보아 아끼어 머리를 앓으면서도 골라 봅아 내는 시기이다.
열매의 성숙기가 차오면 가라지는 더 발리 자라나려고 최후 用力을 다하는 때이다.
이때에 농부들은 땀을 흘리면서 더위를 무릅쓰고 除草를 하여 곡식을 가꾸어 열매를 맺도록하는 것처럼 현금 교회를 當局하여 일하는 우리들은 곡식이 잘 자라나도록 가라지를 뽑고 곡식을 북도다 주어야 될 때이다
우리들이 잘하면 교회는 성숙의 길을 닥아 논 것이 되고 못하면 고이고이 자라 논 곡식을 없앨 수도 있고 고생 시킬 수도 있으니 우리는 튼튼한 신앙과 성경 말씀에 의하여 과거의 교회사와 선배들의 경험을 비추어 보고 꾸준하게 일하여 제초기에 있는 우리는 곡식을 잘 가꾸어서 미래의 좋은 열매를 얻도록 할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30배, 60배, 100배의 좋은 곡식, 좋은 열매를 조선 교회가 가득 맺어서 하느님을 영화롭게하고 모든 인류로 하여금 이 교회 동산에서 생명과로, 생명수로 다들 배불리기로 하여 보자
(1934년 禧年을 맞으면서)
성산 김성배 목사 (철학 박사, 신학 박사, 의학 박사, 한의학 박사 등 명예박사까지 생전 7개의 박사 학위 소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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