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사회에서 대학의 역할은
중요하다. 자본, 노동, 기술에 이어 지식이 경제성장을 결정짓는 중요한 생산요소로 떠오른 상황에서 한국의 대학은 산업계 요구를 수용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재계는 대학 졸업자를 뽑아도 재교육을 시켜야만 현장에서 일할 수 있다며 대학 교육을 원천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다.
스위스 IMD(국제경영개발원)가 실시한 각국별 대학 경쟁력 순위를 보더라도 우리나라 대학들은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영국 ‘더 타임스’가 분석한 대학 경쟁력 순위를 보더라도 서울대는 118위에 불과하고 도쿄대는 12위에 올랐다. 대학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상아탑에 개혁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기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비슷하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 대학들은 세계 100위 대학을 배출하지 못할 만큼 안방에 안주해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대학 개혁에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고려대와 와세다대의 ‘개혁 전도사’를 초청해 일본 닛케이라디오와 공동으로 ‘한-일 대학 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와 관련된 대담을 가졌다. 어윤대 고려대 총장과 오쿠시마 다카야스 와세다대 전 총장을 초청한 이번 대담은 지난 8월 30일 호텔롯데(서울)에서 2시간 가량 진행됐다. Q> 두 대학 모두 양국을 대표하는 ‘개혁리더’로 평가 받는데, 간략하게 대학개혁의 성과를 들려주십시오. A> 오쿠시마 다카야스 와세다대 전 총장 : 저는 94년에 총장에 부임한 이후 2002년까지 와세다대학을 변화시켰어요. 당시 와세다대는 게이오대와 함께 명문 사학이었지요. 한국의 명문사학인 고려대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대학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러나 명성에 걸맞지 않게 ‘3류 연구환경 대학’이란 평가를 받았지요.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8년 동안 매몰차게 개혁을 단행했답니다. 그 결과 ‘기업에 가장 도움이 되는 졸업생 랭킹 1위(다이아몬드 지 평가)’ 대학으로 등극할 수 있었지요. 외부 출신 교수 비율을 20%에서 40%로 끌어 올렸어요. A> 어윤대 고려대 총장 : 총장 자리에 오른 지 2년 반이 흘렀습니다. 벌써 당초 목표치를 달성했다고 자부합니다. 올해가 학교 설립 100주년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새롭게 학교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개혁을 펼쳤지요. 총장은 CEO(최고경영자)라고 생각했어요. 외부 자금을 끌어들이고, 국제화에 필요한 일을 하는 게 총장 역할이라고 생각했죠. 교수채용 권한은 모두 학장에게 넘겼습니다. 총장은 단지 거부권만 행사할 뿐입니다. 2년 반 동안 2000억원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대학 변화가 외부에 알려지면서 수시 지원자가 큰 폭으로 늘었어요. 2003년 수시지원 비율은 10대 1에 불과했으나 올해 들어 40대 1를 넘었어요. 그만큼 고려대에 진학하고 싶은 학생들이 늘어났다는 얘기죠. 외국에서도 학생들이 몰려오고 있어요. 2003년 27명에 불과했던 외국 학생이 올해 340명으로 늘었어요. 내년엔 500명에 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Q> 두 분의 말씀을 듣고 보니 ‘개혁 전도사’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A> 오쿠시마 전 총장 : 연구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과 재무구조 개선에 사활을 걸었어요. 와세다대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교수들의 연구 분위기가 엉망이었어요. 자만심에 빠졌던 거죠. 우선 순혈주의를 타파했어요. 외부 출신 교수들을 대거 뽑았어요. 교수 수도 대폭 늘렸어요. ‘오픈 교육센터’를 설치해 1300개과목의 강의자료를 전 학부에 공개했습니다. 학생들은 강의 질이 좋은 곳으로 몰렸고, 교수들은 더 좋은 강의자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어요. 교수를 많이 확보할 수 있었던 힘은 비용절감을 통해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기때문이었죠. 보직 교수들의 공용차를 없앴고 경쟁 입찰을 통해 물품구입 비용을 줄였어요. 이런 경비절감으로 총장 재임 기간 동안 320억엔을 절약할 수 있었어요. 그 결과 2003년 민간 신용평가회사인 R&I로부터 대학 최고등급인 AA+를 받았지요. A> 어 총장 : 크게 3가지 목표를 설정했어요. 산업체 연계강화-글로벌 리더 양성-행정 분권화에 역점을 뒀어요. 산업체와의 연계를 통해 살아 있는 교육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지요. 서창캠퍼스 물리학과를 아예 디지털반도체학과로 바꿨습니다. 삼성전자와 공동으로 학부 커리큘럼을 바꾼 셈이지요. 업계에서 직접 강의도 할 수 있도록 교수로 채용했습니다. 글로벌 리더로 키우기 위해 영어교육을 확대했습니다. 영어 강의 과목을 5%에서 30%로 끌어올렸지요. 당초엔 4년 내에 달성하고 싶은 목표였지만 2년 반 만에 조기 달성했어요. 2010년까지 두 과목 중 하나가 영어로 강의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어문계열 학과는 해당 국가에서 1학기 이상 교육받아야 졸업할 수 있도록 했지요. 행정 분권화 차원에서 학장 권한을 강화했습니다. 요즘엔 학장이 교수를 직접 뽑아요. 물론 예산권도 갖고 있지요. 목표중심경영(MBO) 시스템도 도입했습니다. 교수 논문수, 연구비, 우수학생수 등의 목표를 주고 기간 내에 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평가를 받지요. 국내 대학최초로 재계의 경영기법을 도입한 셈이지요. Q> 성공적으로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이 궁금합니다. A> 오쿠시마 전 총장 : 개혁이 성공하려면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 합니다. 순혈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외부 출신 교수 채용을 늘리자 교수들과 동문들의 반발이 거셌어요.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게 밀어붙였지요. 사립대학 재원의 70%가 학생들 등록금에서 나오는데도, 학생을 고객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였어요.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 될 수 있도록 강의내용을 공개했던것도 이런 맥락이었지요. 대학의 지배구조도 중요하다고 봐요. 와세다대는 총장이 이사장을 겸직합니다.총장이 아무리 개혁을 하고 싶어도 이사장이 반대하면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죠. 총장은 교직원과 동창들로 구성된 선거단의 직접선거로 선출됩니다. A> 어 총장 : 총장을 맡으면서 가장 먼저 오쿠시마 전 총장께서 직접 쓰신 ‘대학혁명’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개혁 논리를 완벽하게 무장한 다음 설득에 나섰어요. 교직원들이 대학 침체를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개혁 논리가 먹혀들더군요. 특히 학장들이 사심 없이 개혁에 동참해줬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개혁으로 인해 손해 보는 집단이 없도록 세심한 배려를 했습니다.반대 집단이 생기면 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글로벌 리더로 키우기 위해 영어 강의 비율을 높이는 과정에서 국문학 교수들의 반발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어요. 첫해에 유치한 외부 지원자금 40억원을 국문학 발전에 투자했지요. Q> 지속적인 경제발전이 가능하려면 일본이나 한국 모두 대학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특히 어떤 학문의 발전에 역점을 두는지요. A> 오쿠시마 전 총장 : 벤처비즈니스와 기술경영(MOT)이 중요하다고 봐요. 기술 발전 없이는 경제발전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인센티브가 존재하는 산학협동을 통해 기술발전을 꾀하고 있습니다. 일본 대학들은 앞다퉈 기술경영 코스를 설치하고 있어요. 와세다대는 경영대학에 기술경영 코스를 설치했습니다. 대학 차원에서 지속적인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학문에 역점을 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시아 국가들이 ‘머리’를 합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한국은 미국식 교육에 치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와세다대는 아시아권의 연합에 관심이 높아요. 무엇보다도 인류 발전과 와세다대학 발전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봐요. 원천적으로 이런 학생을 뽑을 수 있도록 ‘입학사무소(AO) 제도’를 운영하게 됐습니다. 수학능력만을 가지고 학생을 뽑지 않고 문제의식과 열정, 미래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학생을 뽑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대학원 차원에서 먼저 도입했고, 학부에서도 도입할 예정입니다. A> 어 총장 : 고려대는 그 동안 정경분야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었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려면 공학과 자연과학이 발전해야 합니다. 불행히도 고려대는 이런 분야에 뒤늦게 진입했어요. 취임과 함께 공대 교수 확충에 나섰지요. 공대 소속 교수들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 교수를 80명에서 130명으로 늘려야 한다고 건의하더군요. 현재 공대 교수는 건의한 수보다 더 많은135명에 달합니다. 앞으로 2년 안에 150명으로 늘릴 겁니다. Q> 산업계에서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려면 산학협동이 중요한데, 어떤 식으로 유대관계를 높이고 있는지요. A> 오쿠시마 전 총장 : 어떤 연구에 성공했을 때 이익분배가 잘 돼야만 산학협동이 잘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발명자 30%, 연구실 30%, 대학 40%’라는 수익배분 기준이 정해져 있어요. 이미 대학 산학협동을 통해 신기술을 개발해 사업에 성공한 사례가 많습니다. 기업상장을 한 기업만도 20곳에 달합니다. A> 어 총장 : 특정 기업과 제휴해서 주문형 커리큘럼을 만들기도 하고, 산학연이 공동으로 연구도 합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BK(브레인 코리아) 21’ 프로젝트에 따라 고려대는 바이오와 IT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서울시립대, KDI, 한양대 등과 공동 연구단지를 만들 계획도 있습니다. 연구단지를 만들려면 서울시의 협조가 절실합니다. 서창캠퍼스에서도 지방 소재 기업과의 제휴를 통해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Q> 아시아권 대학들의 경쟁력이 여전히 미국과 유럽에 비해 뒤집니다. 대학 경쟁력이 향상되지 않고선 아시아 경제 발전도 그만큼 늦어지지 않을까요.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A> 오쿠시마 전 총장 : 아시아권 대학의 컨소시엄을 제창합니다. 먼저 중·일·한(CJK) 대학들이 힘을 합쳐 ‘엘리트 교육’을 해야 합니다. 각국의 대학들이 강점을 갖고 있는 분야를 정해 학생과 교수들이 함께 연구하는 방식입니다.예를 들자면 한국의 고려대가 바이오연구에 강점을 갖고 있다면 일본 와세다대와 중국 베이징 대학에서 학생과 교수를 고려대로 보내는 거죠. 같은 방식으로와세다대와 베이징대학도 경쟁력 있는 분야에서 각각 교육과 연구를 하게 하자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기술력을 키우면 아시아경제권이 세계경제를 움직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단순한 학생교류나 교환교수로는 미흡하기 때문이죠. A> 어 총장 : 공동 연구가 절실합니다. 학생 교류도 중요하지만 먼저 할 수 있는 게 공동 연구라고 믿기 때문이죠. 자유무역(FTA)과 공동 통화 문제를 놓고 함께 연구해야 합니다. 한·일·중 대학 교수들이 프로젝트별로 모여 공동연구를 한다면 좋은 결실을 거둘 수 있다고 봅니다. [이제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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