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精神修養 마당

名文 시리즈/金素雲의 '木槿通信'

鶴山 徐 仁 2006. 1. 25. 16:03
名文 시리즈/金素雲의 '木槿通信'
일개인에도 정반대로 대립되는 양면의 성격이 있거든, 하물며 일국 일민족을 들어 어느 한쪽으로 규정지어 버린다는 것은 될 말이 아닙니다.
金素雲   
 편집자 注: 이 글은 ‘목근통신’ 中 ‘일본에 보내는 편지’에서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원문은 ‘한국수필문학전집’(문원각 刊)에서 옮겨 싣는다. 공로명씨 추천.
 
 
 ‘선데이 每日’의 기자가 묻습니다.
 “한국의 도시나 촌락에서 掠奪(약탈)을 당한 그런 흔적은 없던가요?”
 “글쎄요, 한국에 약탈을 당할만한 무슨 財産(재산)이 애당초에 있었던가요? 그토록 빈한합니다. 이 나라는―”
 UP기자의 이 대답에는 ‘掠奪의 대상이나 되었으면 제법이게―’하는, 또 하나의 暗意(암의)가 풍기어 있습니다. 사실인즉, 戰火(전화)로 인해서 입은 직접피해 外에도 한국의 국민들은 허다한 재산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재산’이라고 하는 물자며 세간들은 있는 이의 눈으로 볼 때, 소꼽장난의 부스러기들로 보였을 것입니다.
 약탈의 대상도 못 되리만치 빈곤하다는 이 辛辣(신랄)한 비평을 그러한 의미에서 감수합니다. 그러나 看過(간과)치 못할 또 하나의 문제가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은 36년 동안을 日本이 다스리던 나라입니다. ‘一視同仁(일시동인)’의 일본의 정치가 마침내 한국을 이 빈곤에 머물게 했다는 사실은 別로 일본의 자랑이 못 될 것입니다.
 
 ‘센징(鮮人)의 주택은 더럽다’고, 쓰는 것보다 ‘센징의 집은 돼지우리 같다’고 쓰는 편이 문장 표현으로는 더 효과적이다.
 
 20년 전 東京 三省堂에서 발행된 敎材書(교재서)의 한 구절입니다. 현명하고 怜悧(영리)한 귀국 국민에도 제 욕을 제가 하는 이런 바보가 있었습니다. 이런 천진한 바보의 귀에는 掠奪감도 못 된다는 외국기자의 한국평이 통쾌하고, 고소했을는지 모릅니다마는, 마음 있는 이는 아마 또 하나의 반성을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국의 ‘미제라블’(悲慘)은 한국의 수치이기 前에 實로 일본의 德性(덕성)의 ‘바로미터’라는 것을―.
 A: “한국에서 돌아와 일본을 보니, 여기는 바로 天國이야. 한국은 정말로 地獄이지…”
 B: “戰線에서 잠드는 UN部隊들의 野營의 꿈은 뉴욕이나 캘리포니아가 아니거든―. 긴자, 돗톤보리, 아사쿠사, 신주쿠―, 하나코상, 기미코상, 노부코상의 꿈이지.”
 
 敗戰國(패전국)이라던 일본이 천국이요, 36年의 桎梏(질곡)에서 벗어났다는 한국이 지옥이란 것은 ‘메피스토펠레스’와 ‘파우스트’가 위치를 顚倒(전도)한 것 같은 신통하고도 재미있는 후세의 이야깃거리입니다. 전쟁에 지면 사내란 사내는 모조리 아프리카로 끌려가서 강제노동의 노예가 된다던 일본, 그 일본은 점령군 사령부의 寬厚(관후)한 庇護(비호) 아래 문화를 재건하며, 시설을 다시 回復(회복)하여 着着으로 戰前(전전)의 면모를 도로 찾아가고 있습니다. 거기 대비할 때, 연합국의 일원이요, 당당한 승리자인 중국은 그 광대한 영토를 버리고 대만으로 밀려가고, 해방의 기쁨에 꽹과리를 울리며 좋아 날뛰던 한국은 국토를 양단당한 채, 지난 1년 동안에는 두 번이나 수도 서울을 敵手(적수)의 유린에 맡기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이 事實―, 가장 냉엄해야할 ‘歷史’도 알고 보니 익살맞고 짓궂은 장난꾸러기입니다.
 행여나 誤解(오해)치 마십시오. 우리는 일본의 불행을 바라는 者가 아닙니다. 일본의 행복을 嫉視(질시)하는 者가 아닙니다. 비록 ‘地獄’의 대명사를 가지도록까지 일찍이 상상치도 못한 艱難(간난)과 塗炭(도탄)을 겪고 있다고는 하나,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지녀나가야 할 최후의 德性(덕성) 하나를 쉽사리 잃어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개인에 연령이 있는 것처럼 민족에도 민족의 연령이 있을 것입니다. 젊으면 경솔하고 순진하고, 늙으면 신중하고 狡狡(교교)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生理(생리)의 약속입니다.
 같은 민족끼리도 문화의 차이는 현저합니다. 東京을 중심으로 한 關東과 京都를 표준으로 한 ‘가미가타’(上方)의 기질이며, 지방색을 비교해 본다면, 여러분 자신이 이 사실을 수긍할 것입니다. 중국은 이미 늙은 나라입니다. 일본은 동양삼국 중에서 가장 어리고 젊은 나라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민족의 연륜으로 보아 바로 그 중간에 위치해 있습니다.
 일본인의 민족성은 조급하거나 경솔한 것이 자랑입니다. 대〔竹〕를 가른것처럼 꼿꼿하다는 形容(형용)을 여러분의 나라에서는 곧잘 씁니다.
 우리는 그것을 과신했기에 만일 일본이 패전한다면, 군인은 모조리 자살해 버리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실로 一場(일장)의 넌센스입니다. 일본이 그렇게 柔順(유순)하게 승리자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귀염까지 받으리라고는 예상치도 못했던 일입니다.
 한국은 문화에 있어서 적어도 10여 세기를 일본에 앞선 나라입니다. 中國의 年輪(연륜)에는 미치지 못하나, 일본보다는 더 長成(장성)한 나라입니다. 따라서 사교성과 御人術(어인술)이 일본보다는 能해야 할 나라인데도 나타난 결과는 正히 그와 반대입니다.
 大川周明 博士는 전범자로 在監中(재감중)에 발광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의 기고만장한 저술 ‘일본 2600年史’에 대해서 일찍이 나는 ‘婦人公論’에 글 하나를 쓰고 削除(삭제)를 당한 일이 있습니다. 그 저서 중 ‘蘇我氏’에 언급한 1절에 조선으로부터 도래한 귀화인의 예를 들어, 우리 민족성을 교활하고 간악한 최고의 표본으로 내세운 한 대문이 있습니다. 만일, 그가 발광하지 않고 정신이 성했다면, 한번 다시 물어보고 싶은 일입니다.― 오늘날의 일본과 한국을 비교해서 과연 어느쪽이 더 순진한 민족이더냐? 어느 쪽이 더 능란하고 교활한 민족이더냐를. 그러나 다행히도 그는 狂者(광자)입니다. 살아 있다손 치더라도 그는 이 설문에 대답할 의무를 거부할 것입니다.
 
 
 일개인에도 정반대로 대립되는 양면의 성격이 있거든, 하물며 일국 일민족을 들어 어느 한쪽으로 규정지어 버린다는 것은 될 말이 아닙니다. 이 과오는 이미 大川 博士가 犯했거니와, 그 전철을 또 한번 이 글이 踏襲(답습)한다는 것도 우스운 노릇입니다.
 일본이 순진하든 한국이 교활하든 그것은 대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결과로 보아서 한국은 그 전통의 美와, 민족의 숨은 정서를 백에 하나 나타내지 못하고, 외국기자의 입으로 ‘지옥’이란 별명을 듣도록쯤 되었습니다. 반대로 戰時(전시)에는 美·英을 ‘鬼畜(귀축)’이란 冠詞(관사)로 부르던 일본이 그네들에게 도리어 ‘천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한국인 된 우리 자신이 반성할 허다한 문제가 잠재해 있는 것은 물론입니다. 우리는 불가피한 역사의 불행만을 구실삼자는 것이 아닙니다. 인위적으로도 우리는 적지않은 불행을 제조해 왔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마땅히 우리 자신이 우리가 뿌린 씨를 거두어야 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는 별문제로 패전국 일본이 ‘천국’이 된 그 연유나 경로는 우리가 알고 싶은, 알아두어야 할 또하나의 흥미 있는 과제입니다.
 서양주택에 중국요리, 게다가 일본 아내를 거느린 자는 세계 최대의 행운아란 말이 있습니다. 由來(유래)로 일본의 ‘서비스 스피릿’이란 그토록 유명합니다. 이것은 우리로서도 배움직한 미덕의 하나입니다.
 進駐軍(진주군)에 대해서 이 ‘서비스 스피릿’이 얼마나 철저하게 충실하게 발휘되었던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들은 바가 아니나, 전해오는 소문만으로도 짐작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내가 못하는 일을 남이 하면 으레 탈을 잡아보고 싶고, 티를 뜯어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의 이 ‘미덕’에 대해서 감히 입을 대이지 못합니다. 일찍이 ‘마담 버터플라이’ 하나를 내지 못하고, 시모다(下田)의 ‘오키치’ 하나를 가지지 못한 우리로서는 흉내를 낼래야 낼 수 없는 노릇입니다.
 UN軍이 지나갈 때, 입을 벌리고 황홀히 쳐다보며 ‘야아, 참 키도 억세게 크다’ ‘그 친구 되게 검네’하고, 탄복을 마지않는 것이 대한민국의 가두풍경입니다. 사교성과 접대술에 이렇게 우둔한 민족이 ‘서브’의 종가라고 하는 일본 같은 나라와 지리적으로 이웃해 있다는 것이, 이를테면 우리들의 불운입니다. 하필 일본과 비교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우리의 사교성은 확실히 낙제입니다. 山 설고 물 다른 만리이역에 와서, 더욱이 신명을 바쳐 戰野(전야)를 달리는 이들에게 한국이 지옥으로 비친다는 것도 생각해 보면 무리가 아닙니다.
 
 
 새 역사가 가져온 우리들의 비극 하나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서민문학의 주인공인 ‘春香(춘향)’의 절개를 자랑하던 민족입니다. 倭將(왜장)의 허리를 끌어안고 南江(남강)의 푸른 물에 잠긴 ‘論介의 義’를 羨慕(선모)하던 백성입니다. 우리들이 아끼고 위하는 이런 고귀한 정신은 ‘紅毛碧眼(홍모벽안)’의 외국 손님들 앞에는 하나의 ‘빵빵 걸’의 매력에도 당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한국의 전통이나 문화를 연구하러 온 학자·예술가가 아닙니다. 그들이 흘린 ‘피’의 희생에 대한 報酬(보수)는 다만 ‘승리’일 뿐입니다. 승리 하나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그들에게 ‘春香’의 절개, ‘論介의 義’를 이해하라는 것이 도대체 지나친 기대입니다.
 이렇게 말씀하면 혹시 오해를 살지 모릅니다마는, 일본의 천국설이 ‘빵빵’ 文化, 娼婦(창부)의 서브에 유래한 것이라고 결론할 것이라면, 애당초에 이런 글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戰後(전후) 일본의 새 유행인 소위 아프레게에르와 당신네들의 그 봉사정신의 미덕을 같은 촌수로 따지도록까지, 그렇게 일본에 對해서 나는 몰이해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화자찬 격입니다마는, 나는 ‘源氏物語(원씨물어)’를 原文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萬葉(만엽)’의 詩心(시심)을 ‘바쇼’(芭蕉)·‘부손’(蕪村)의 경지에 내 딴에는 이해한다는 자입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일본을 천국이라고 하는 어느 외국기자, 어느 進駐군인에 뒤떨어질 바 아닙니다.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 그 결산은 별문제로 하고, 나는 내 過半生(과반생)의 에네르기를 기울여 일본을 알고 일본을 배우고, 일본의 그릇된 방만과 자존 앞에 내 향토의 문화와 전통의 美를 矜示(긍시)함으로써 임무삼던 자입니다.
 일본이 지닌 ‘惡’을 한국의 어느 애국자 못지않게 나는 압니다. 동시에 일본의 ‘善’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고 자부하는 자입니다. …(後略)
[ 2006-01-25, 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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