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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검찰 관계자들은 “정 전 회장의 죽음으로 현대 비자금 사건이 ‘미완의 수사’로 끝나는 바람에 각종 ‘미스터리’를 남겼다”며 “이 때문에 타살설 등의 의혹이 꼬리를 무는 것 같다”고 했다. 아직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 속에 정 전 회장 죽음의 비밀이 있다는 것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정 전 회장의 죽음은 스위스연방 계좌에 송금했다는 현대 비자금 3000만달러(약 300억원·확인된 송금액은 2500만달러)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대다수 수사 관계자들도 이 돈의 행방과 정 전 회장의 죽음을 조심스럽게 연관시켰다.
이 괴(怪)자금은 정 전 회장이 죽기 전에 정치권에 줬다고 마지막으로 시인한 돈이라고 한다. 정 전 회장은 2003년 5~6월 대북송금 특검 수사 때 박지원씨에게 150억원을, 그해 7월 26일 대검 중수부 수사 때 권노갑씨에게 200억원을 건넨 사실을 인정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정 전 회장은 3000만달러 부분을 마지막에 시인했다”고 했다.
문제의 3000만달러는 권노갑씨의 3차 재판에서 처음 공개됐다. 당시 검찰은 정 전 회장의 진술서를 뒤늦게 재판부에 제출하면서 “권씨가 200억원 이외에도 해외(스위스) 계좌에 엄청난 금액을 받은 혐의가 있어 이를 수사하느라 제출이 늦어졌다”고 밝혔다. 표면상 돈을 받은 사람은 권노갑씨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괴자금의 실제 주인은 권씨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수사팀 관계자들은 전한다. 먼저 송금된 시점이 이상하다. 권씨는 16대 총선은 앞둔 2000년 3~4월 총선 자금 명목으로 200억원을 받았다. 그런데 뒤늦게 확인된 3000만달러의 송금 시점은 2000년 2월 26일이었다. 권씨가 3000만달러를 챙긴 지 한 달만에 또 200억원이란 돈을 현대에 요구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권씨측 변호인도 “스위스계좌 주인은 (현대 비자금을 관리했던) 김영완씨”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3000만달러의 성격도 의문 투성이다. 정 전 회장은 검찰에서 “총선 자금용으로 현대상선 미주지사를 통해 3000만달러를 권씨의 스위스계좌에 보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탄(현금)으로 써야하는 총선 자금을 스위스계좌로 받았다는 것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실제 권씨는 200억원을 현금으로 받았다.
반면 당시 현대상선 사장이던 김충식씨는 “대북 통신사업 취득용”이라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도 “대북 사업과 관련돼 있다”고 했다. 그런데 당시 현대의 대북사업에 깊숙히 관여한 인물은 권씨가 아니라 박지원씨였다. 박씨가 받았다는 150억원(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도 대북사업 명목이었다. 김충식씨 주장대로 대북 사업용이라면 수취인이 권씨일 근거는 더욱 약해진다.
이 괴자금의 실체는 여전히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김충식씨는 2003년 7월31일 3000만달러의 ‘송금 영수증’을 검찰에 보내겠다며 미국으로 출국했다. 정 전 회장은 김씨의 귀국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변호사였던 조모 변호사를 동행시켰다. 김씨가 팩스로 영수증을 보내기로 약속한 시간은 8월 4일 오전 9시쯤(한국시각). 그러나 정 전 회장은 그 몇 시간 전에 주검으로 발견됐고, 김충식씨는 검찰에 전화를 걸어 울면서 “송금 영수증은 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뒤 김씨의 행적은 묘연한 상태다. 지난 2004년 11월 비밀리에 귀국해 검찰에서 3000만달러 부분을 조사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송금 영수증을 가져왔는지, 돈의 실제 주인을 밝혔는지 등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현재 그는 미국에 체류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수사팀은 송금 영수증을 받는 즉시 한·미 수사 공조를 통해 돈의 흐름 및 계좌 주인을 확인하려 했다”고 했다.
당시 수사 관계자들이 생각하는 3000만달러의 주인은 누굴까? 구체적인 이름을 언급하는 관계자는 거의 없었다. “국가 및 기업신인도과 관련된 문제라 확인이 안된 사실을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박지원씨 150억원, 권노갑씨 200억원, 그리고 3000만달러가 보내진 시점을 보라고 했다. 3000만달러가 2000년 2월 26일, 200억원이 3~4월, 150억원이 4~5월 무렵이다. 액수나 송금 시기 면에서 박씨나 권씨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또 계좌추적이 어려운 스위스연방은행 계좌를 이용했다는 것도 의혹을 증폭시키는 부분이다.
그러나 수사팀 관계자는 “3000만달러 주인이 아무리 거물이라도 그를 감추려는 이유만으로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특검 및 검찰 수사로 몰락 위기에 처한 대북사업과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부담과, 자신의 진술로 여러 사람이 구속되는 모습에 괴로워 했다는 것이다.
당시 대검 중수부는 대선자금을 수사했던 그 멤버였다. 안대희 중수부장과 문효남 수사기획관, 남기춘·유재만 중수 과장들은 모두 “나오면 무조건 수사한다”는 입장이었다. 특검 수사 때 꼬리가 잡힌 현대 비자금은 검찰에서 캐면 캘수록 나오는 ‘고구마 줄기’였다고 한다. 정 전 회장으로선 수사가 어디까지 번질 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대북사업과 회사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특히 대북사업은 정 전 회장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유업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정 전 회장은 유서에서도 측근인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에게 대북사업을 부탁했다. 김씨는 “회장님이 모든 걸 안고 갔다”며 통곡했다. 정 전 회장의 사망 이후, 검찰은 현대 비자금과 관련된 모든 수사를 사실상 접었고, 현대그룹과 대북사업은 기사회생했다.
정 전 회장이 마지막 검찰 조사(8월 2일)에서 천기를 누설했기 때문에 죽음으로 몰렸다는 의혹도 있었다. 이와 관련, 당시 수사팀은 “천기 운운할 정도의 진술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박지원씨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할 수 있는 진술을 했었다”고 했다. 그 진술을 조서로 남겼으면 박씨가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왜 안 남겼냐”는 질문에 검찰 관계자는 “정식 조사를 끝내고 귀가하기 전에 잠시 쉬면서 한 말이라 다음 소환 때 조서를 받으려 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누가 죽을 줄 상상이나 했겠느냐”고 되물었다.
정 전 회장은 박지원씨에 대해 상당히 고마워했다고 한다. 2000년 현대건설이 대북송금 등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을 때 정부가 ‘회사채 신속인수제’ 등으로 현대를 도운 배경에는 박씨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박씨가 자신의 진술 때문에 구속됐다는 사실이 정 전 회장을 괴롭혔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정 전 회장은 자살로 몰렸다고 본다”며 “그 이유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가지, 아니 수십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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