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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 Hymn

[스크랩] 세상에 사는 의미

鶴山 徐 仁 2006. 1. 19. 23:00
세상에 사는 의미

 

    마태복음 22장 37 - 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우리는 나의 의사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내가 세상에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세상에 사는 의미를 잘 알고 세상에 왔으니 이 세상을 보람 있게 뜻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밤낮 일에 쫓겨서 먹고 마시고 자고 변소 가는 일 만하다가 인생에게 주어진 날수인 29,200날을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생 70을 사는 사람은 25,500날을 사는 것이고 80을 사는 사람이 29,200날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철모르는 시절인 7,300날을 빼고 정정하게 활동을 하지 못하는 3,600날을 빼면 14,600날을 세상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14,500 날은 결코 많은 날수는 아닙니다.

  이제 남은 나의 생애의 날 동안이나마 우리는 보람 있게 의의 있게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1. 사랑하기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내가 세상에 사는 날 동안의 날수를 사랑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서 사랑하여야 보람 있는 인생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37 -39절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을 남편이나 아내보다 더 사랑하여야 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삶을 살면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증거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 1서 4장 7 - 8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나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고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준비하는 삶입니다.

요한 복음 14장 2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우리 주님도 우리가 장차 있을 곳을 준비하시고 계시듯 우리도 장래의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실제로 장래를 준비하기 위하여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도 역시 장차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준비를 12년 이상을 준비시키고 대학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한 준비이고 또 좋은 직장에 다니면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한 준비이고 가정을 이루면서 열심히 저축하면서 성실하게 아끼면서 살아가는 것은 좋은 집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이고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버는 것은 장래를 위한 준비로 경제적인 넉넉함을 살기 위한 준비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도 사후의 세계를 준비하는 하나의 준비 과정인 것입니다.

필자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1977년 5월에 이민을 갈 때 이민을 가기 위한 준비를 5년 이상 하다가 마침내 미국에 왔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에 충성하고 헌금을 많이 하는 것도 역시 하늘나라에서 상급을 받을 준비 과정인 것입니다.

  인생은 준비를 하기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3.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살고 있습니다.

  요한 복음 15장 11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처럼 가련한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인생은 순간의 기쁨을 위하여 일생을 투자하고들 있습니다. 십여 년을 열심히 공부한 후 좋은 대학에 입학했을 때 그 기쁨을 위하여 몇 년간 대학 입시를 위하여 밤잠을 안 자면서 수많은 역경을 뚫고 공부한 결과 입학의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인간이 노력하여 얻는 기쁨은 그 길이가 아주 짧습니다. 잠시의 기쁨이 지나면 또 다른 기쁨을 얻기 위하여 몇백 배의 노력을 또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이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으로는 세상의 어떤 일의 결과로 누리는 기쁨은 잠시 잠깐 뿐이지만 성령을 받았을 때의 기쁨은 오래오래 지속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영원한 기쁨을 주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고 우리도 이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달프고 괴롭고 힘이든 세상살이, 슬픈 세상살이이지만 성령을 받음으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주님이 주실 기쁨을 맛보게 하십니다.

  우리는 영원한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기쁨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노력하여 기쁨을 찾아 와야 하는 것입니다.


4. 창조하기 위하여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17절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하나님은 창조의 일을 하고 우리 인간들도 창조를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창조의 종교입니다. 기독교가 가는 곳마다 문화가 창조 발달하고 창조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로 새롭게 모든 것이 창조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를 믿기 전에는 옛 사람이었지만 예수를 믿은 후에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나라도 예수를 믿기 전에는 창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들어온 후에 창조력이 뛰어나서 이제는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 선 것입니다. 창조를 하는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창조력이 없는 사람은 실패자가 됩니다. 신앙도 창조하고 문화도 창조하고 과학도 연구하여 새로운 창조를 하고 장사, 무역도 창조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내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이라는 확실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따라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제라도 내 삶의 목표를 확실히 정해 두고 그 목표대로 살아가서 삶의 의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덧없는 세상이고 덧없는 세월이라고 탓하지 말고 보람 있는 삶을 살고 후회함이 없이 세상을 마쳐야 하겠습니다.

  사랑함으로 살아갑시다. 준비하면서 살아갑시다. 기뻐하면서 살아갑시다. 창조하면서 살아가십시다.

  나이 탓을 하지 말고 배운 것이 없다고 탓하지 말고 보람 있게 살아가십시다.

에디슨은 소학교 2학년밖에 안 다녔지만 많은 것을 창조한 발명가가 되었습니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나를 바꾸고 할 수 있다 하는 신념으로 남은 인생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
 
세계 최고의 부자 빌게이츠의 집 구경
 
수족관이 아니라 벽에 그린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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