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들을 배석시킨 황우석 교수의 12일 기자회견을
보셨습니까. 막판까지 여론을 볼모로 잡아 국민을 설득하려는 시도 말입니다. 고려대 최장집 교수가 최근 어떤 포럼에서 황 교수 사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고 합니다.
'한국을 세계 생명공학의 중심으로 내세우고자 했던 과학정책은 무언가 업적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노무현 정부의 강박관념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으며, 이를 위한 정책 지원과 민족주의ㆍ애국주의적 열정의 동원이 결합하면서 진실과 비판이 억압되는
일종의 '총화 단결', 즉 유사 파시즘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파시즘적 분위기 연출에 볼모 잡힌 여론
여론조사에서
하나의 응답이 90% 이상 나오는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까. 가끔 그런 보도를 접할 때가 있는데, 대개 ‘유사 파시즘적’ 분위기를 잡기 위한
조사로 보면 됩니다. YS 이래 역대 대통령 초기 지지도가 90% 가까이 나왔던 적이 있고, 최근엔 '노인수발보장제, 94.9%
찬성’(보건복지부/한길리서치), ‘국민 92.3%, 평창동계오륜 지지’(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코리아리서치)라는 조사결과가 있군요.
황 교수 사태의 초기 상황도 비슷했습니다. 당시엔 연구원의 난자 제공을 금지한 국제윤리규범 위반 여부가 논란거리였습니다. 지난해
11월 23일 SBS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한 조사결과에 의하면(506명,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36%p), “황 교수 거취와
관련, 생명윤리법 제정 이전의 일이므로 연구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응답에 대해 93.3%의 국민이 동의했습니다.
11월 29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TNS에 의뢰한 조사결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700명,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7%p). 당시 기자회견을 통해
‘부적절한 난자 제공 사실을 사전에 인지했음’을 시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황 교수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절대적이었습니다. “신뢰한다”
84.4%, “신뢰하지 않는다” 12.5%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황 교수 대 MBC PD수첩 여론을 알아보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워낙
일방적이기 때문이죠.
한 번 볼모로 잡힌 여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 10명 중 7명 가량이 황 교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화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는 지난해 12월 30-31일 전국민 1,003명을 대상으로
전화로 면접했고, 리서치앤리서치 조사는 1월 4-5일 전국민 800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한 것입니다.
<문화일보/한국리서치> 원천기술 보유를 입증할 기회 줘야 71.9% 모든 연구활동이 중단되어야 19.2%
<리서치앤리서치> 한 번 더 기회를 줘야 69.2% 더는 연구에 관여하지 말도록 해야 26.2%
제2, 제3의 황우석 출현 가능성
14일자 중앙일보 북섹션 ‘행복한 책읽기’에 서강대 서동욱 교수의 서평이
실렸습니다.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이란 책을 “우리 안에 있는 파시즘의 악마를 경계하기 위한 교본”으로 삼을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거짓말이 위기에 몰릴 때면, 민족이나 조국 등등의 단어를 환각제처럼 뿌려대며 잠자고 있는 파시즘에
의탁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없지 않으니 말이다.”
황우석 사태와 관련해 파시즘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파시즘의 악마를 경계해야 할 제반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봤기 때문이겠죠. 그런 점에서 조만간 제2, 제3의 ‘황우석’이 나타날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습니다. 그런 일에 여론조사가 동원되는 모습을 허망하게 지켜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론이 민심이자 천심이란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론을 교묘하게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에게까지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