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읍성 전경. 과거를 통째로 옮겨놓은 듯한 이곳은
아직도 2백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진짜 전통마을’이다. 아래는 낙안읍성 수문장 교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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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옷을 입고 사진 포즈를 취한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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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초가지붕의
둥근 박이 꿈꾸는 마을.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은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민속마을이 아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현재
속의 과거 마을’이다. 이곳에 가면 시계추를 거꾸로 되돌려 옛날로 돌아간 듯 대장간에서는 대장장이의 망치질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시장에서는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가 요란하다. 옥사에 갇힌 이들은 꺼내 달라 아우성이고, 동헌에서는 매질 소리가 퍼렇다. 활기 가득했던 낮이 가고 밤이 오면
낙안읍성은 고요 속에 빠져든다. 시끄러운 도심의 소음과 불빛, 모든 전자기기로부터 해방되어 그 자유를 한껏 누리고 싶다면 초가집에서의 하룻밤
체험을 꼭 해보자.
낙안읍성 민속마을에는 지금도 1백여 채의 초가와 동헌 객사 등
서너 채의 기와 건물들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모든 건물에 사람이 사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도 85세대 2백20여 명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아마도 성벽이 세상 풍파로부터 굳건히 마을을 지켜주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높이 4~5m, 폭 2~3m의 성곽이 총 길이 1천4백10m에
걸쳐 읍성을 둘러싸고 있으며 동서남북으로 4개의 성문이 나 있다. 그 중 북문은 호환이 잦아 폐쇄해 현재는 세 개의 문만 출입이
가능하다.
읍성에 들어서면 과거의 문을 열어젖힌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집들이 정겹고, 그 속에 사람들이
‘진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여행객들의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주민들은 제 할 일을 한다. 곧 있을 지붕갈이를 대비해 이엉을 이는가 하면,
소에게 죽을 쒀 여물을 먹이고, 고샅의 감을 따서 곶감을 만든다. 그 자연스러운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체험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보는 것 말고도 직접 해볼 수 있는 체험거리들이 많다. 객사 옆 공터에 마련된 그네를 타 본다든가 연날리기, 투호 등
민속놀이도 직접 해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짚물공예, 염색, 복식체험 등 문화체험도 가능하다. 곳곳에 ‘체험공방’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월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요일에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시연하고 함께 체험한다.
그 중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의 버려진 볏짚으로 만드는 짚물공예는 단연
인기. 새끼를 꼬아 짚신을 짜고 맷방석을 짜는 시연자의 솜씨에 취해 따라해 보지만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단단하게 꼬여야 할 새끼가 엉성하니
부푼 머리카락 같다. ‘낄낄’ 거리며 서로의 못난 작품을 품평하는 가족들. 지켜보는 이들이 더 즐겁다.
황토,
감귤, 대나무숯 등 각종 천연 도료를 이용한 염색체험도 인기다. 그러나 가족들이 더 즐거워하는 것은 복식체험. 수문장 교대식이 열리는 읍성
정문에서 복식체험이 이뤄지는데 아이들만 입혀볼 수 있다. 공방 사람들이 아이들 옷고름까지 정성스레 메어주고 부모는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을 평생
간직하고자 사진기에 담느라 바쁘다.
오후 5시를
넘기면서 사람들은 썰물처럼 성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이때쯤 성곽을 따라 호젓이 낙안읍성을 둘러보라. 황금색으로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성곽을 따라 걷는 맛이 일품이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면 초가집에서 민박을 청해보자. 민박을 놓는 집이 10여 곳 있는데 성곽 산책
중 마음에 드는 곳을 정했다가 민박을 하면 된다. 민박은 당일 예약이 가능하다. 초가집에서의 하룻밤은 분명 색다른
체험이다.
도시와는 달리 시골, 특히 읍성마을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 다만 밤길에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가로등이 불을 밝힐 뿐
대부분의 집들은 9시면 잠자리에 들어 동네는 쥐죽은 듯하다. 간혹 동네 개들이 마을의 고요를 깨는데 이는 마을의 밤 정취를 맛보고자 산책하는
낯선 나그네의 발자국소리 때문이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주민들과 함께 살아온 개들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발자국 소리까지도 다
기억한다고.
‘새로운 세상을 만날 때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모 CF의 카피처럼 이곳에서는 모든 전자기기를 끄라. 단출한
방안에 TV 하나가 있지만 이마저도 끄고 모처럼만에 찾아온 고요와 평화를 누리길 권한다. 벌어진 창호지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과
풀벌레의 소리를 들으며 깊은 잠에 빠져보라.
[여행안내]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승주
IC→벌교 방향 857번
지방도→낙안읍성
★숙박: 읍성 내에 민박을 하는 초가집들이 10여 채 넘게 있다. 어느 곳이든 당일 예약 가능하다.
읍성을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초가집에 묵으면 된다. 민박 비용 3만원.
★먹거리: 읍성 안팎으로 토속 음식점이
즐비하다. 대부분 비슷한 메뉴. 그 중 놓치면 후회할 낙안의 맛은 ‘낙안사삼주’와 ‘팔진미’. 낙안사삼주는 5천원에서 2만원까지 4종류.
팔진미는 1인분에 1만원.
★문의: 낙안읍성 민속마을(http://www.nagan.or.kr)
061-749-3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