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軍事 資料 綜合

임진왜란과 한일합방에서의 교훈

鶴山 徐 仁 2006. 1. 11. 10:57
임진왜란과 한일합방에서의 교훈

임진왜란에서 우리가 일본을 물리칠수 있었던 이유

당시 우리국민은 조선이 일본보다 선진문화국으로서 일본보다는 우월하다는 자긍심이 있었다.
일본인은 미개하여 조선의 가족을 헤치고 납치한다는 해적으로 보아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의무감이 있었다.

또한 당시는 농경사회로서 고향을 뺏기면 살아갈 방법이 없어 고향을 지키고자하는 향토애가 있었다
이러한 국민들에게는 이들을 이끌수 있는 식자와 지도자들이 있었다. (이순신 곽재우 서산대사 등)
조총을 제외하고는 조선의 과학이 일본의 그것보다 앞섰다.

조선개국이후로 나라에 공을 세우면 상을 받을수 있었다 ( 개국공신 , 반정공신등)
따라서 천민들도 나라에 공을 세우면 천민에서 벗어날수 있을것이라는 기대감에 싸울수 있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전국 각지에서 의병들이 일어나서 일본군에 대하여 유격전을 펼칠수 있었고
이순신의 덕택으로 일본의 보급과 전력이 쇠퇴하여 일본군은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위와 같은 전력요소가 있어 전쟁터가 된 전국토는 피폐해지고 백성들이 유랑하는 등 피해는 엄청
났지만 조선은 일본을 물리칠수 있었던것이다.

그러나 선조의 조정은 신상필벌을 하지않고 아첨하는 대신과 패장들에게 공로상을 주었다
생명을 잃고 가족을 잃으면서 전쟁에서 나라를 구한 백성과 하급군인들은 실망하고 나라를
위해 싸우면 무엇하나. 나는 여전히 천민이고 내 아내는 겁탈당하여 목숨을 잃었는데....하는
자괴감에 빠졌다

이때부터 우리국민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사그러들기 시작하고
지배층에 대하여 냉소적이 되었으며, 이것은 다시 국력의 약화를 가져왔다
그래도 가렴주구는 계속되었으며 이것은 또다시 조선의 기층이 무너지는 원인이 되었다.

이때 조선의 주변은 일본도 전후재정비를 필요로하고, 중국대륙도 명청이 교체되었으며
청국은 나라를 세운후 내치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에서 조선이 청국에 조공하는
정도로 만족하여 조선은 아직 나라를 유지 하였다.

그러나 조선은 기층이 무너진 나라를 재정비 할 생각 않고 변함없이 당쟁을 하고 가렴주구를
하였다

한일합방전후
그러던 중 세월이 흘러 서구 열강이 밀려오고 일찍 개항하여 서구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과학에 있어서 우리보다 앞서게 되었다

기층이 무너진 조선은 국민 정신면에서도 피폐해지고 ,
적에게 나라를 위해죽어도 나라는 내 아내와 자식을 보호해주지 않으니까
나는 도망하여 살아서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하였다.

지도층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나라와 국민을 버리고 국민이 믿고 따를만한 정신적 지주도 없었다.
국고는 비었으며 나라를 지킬 만한 국방력은 보잘것 없었다
나라를 잃을수 밖에 없었다.

위와 같은 교훈에서 현재의 대한민국이 해야 할일

국민이 충성할 수 있도록 국가는 국민에게 동기를 부여
( 국군포로를 데려와야 하고, 서해교전 영웅들을 위해 가족을 섭섭치 않게 돌보아 주어야 한다)

과학 발달을 위해 이공계 출신 대우를 높이고 이공계출신들이 실업이 없도록 효율적자원 배분
( 박정희 대통령때는 공고를 가고 싶어하고 공과대학을 가고 싶었는데)

주변국 ( 일본 중국 러시아 북한등)에 비하여 뒤떨어지지 않도록 국방예산을 증액 국방력 증강

경제력은 기업을 통하여 이루어지니 기업이 마음놓고 일 할수 있도록 여건 조성
( 행정규제 완화 , 투자여건 조성 등)

누구나가 이러한것들이 국가에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이러한 기본적인 요구사항을
자신의 정치관과 소신 또는 이념때문에 소홀히 하거나 방해를 한다.
이러한 사람이 있다면 자기가 원하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