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창업, 꿈과 열정이 최고의 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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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게임 전문업체 블루빈소프트의 김준모 사장
“학생이 무슨 창업이냐고요? 젊으니까 창업하죠. 실패해도 재기할 시간이 충분하잖아요.” 모바일게임 전문업체 블루빈소프트의 김준모(25) 사장은 건국대학교 3학년(경영학)에 재학 중이던 2003년 초 자본금 1000만원으로 창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사업 경험과 자본이 모두 부족해 결국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그러나 김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6개월간 실패 원인을 철저히 분석한 뒤 재도전했다. 2005년 대학 졸업장을 받아든 김씨는 직원 16명을 거느린 어엿한 벤처 기업인이 됐다. 이 회사의 2005년 매출액은 약 14억원, 순이익은 5억원에 이른다. 2006년에는 24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김씨는 2002년 군대를 마치고 대학 2학년에 복학하면서부터 창업의 꿈을 키웠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기는 싫었어요.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야 실패하더라도 이를 딛고 30대에는 기반을 잡을 수 있을 테니까요.”
김씨는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나름대로 시장조사를 한 뒤 휴대폰으로 즐기는 모바일게임 개발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모바일게임은 시장이 막 형성되는 초창기였다. 휴대폰은 PC에 비해 화면이 작고 연산장치(CPU)의 속도가 느려 가볍고 단순한 게임들이 주종을 이뤘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소규모 개발인력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반면 PC용 온라인게임 시장은 이미 엔씨소프트·넥슨 등 대형 게임업체들이 선점한 상태였다. 막대한 개발비를 투입한 대작 게임이 수없이 쏟아지는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소자본 벤처가 성공하기는 어려웠다.
김씨는 자본금 1000만원으로 건국대 벤처창업지원센터에 둥지를 틀었다. 자본금은 부모님 몰래 학교에서 대출받은 등록금을 모아 마련했다. 부모님께는 창업 사실을 숨겼다. 김씨는 사무실에서 밤늦게까지 게임 개발에 몰두했다. 독학으로 배운 컴퓨터 프로그래밍 실력은 나날이 향상됐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매출이 좀처럼 발생하지 않았다. 게임은 열심히 만들었지만 판로 확보가 쉽지 않았던 것. 자본금은 너무 부족했다. 학생 신분에 돈을 구할 곳도 마땅치 않아 용돈을 운영자금으로 털어넣는 바람에 점심을 굶기도 했다. 거의 1년 간 자본금만 까먹은 뒤 김씨는 결국 사업을 접어야 했다. 부모에게는 이 사실을 뒤늦게 고백했다. 김씨는 크게 꾸중을 들을 것이라고 걱정했지만, 김씨의 아버지는 오히려 “젊은 시절에는 실패도 보약”이라며 격려를 해줬다.
용기를 얻은 김씨는 이후 6개월간 NHN 등 선발 게임업체에 취직한 선배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회사 운영 노하우와 시장 트렌드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학교의 벤처지원센터에도 여러 번 찾아가 자금 문제 등을 상담했다. 김씨는 “모바일게임이라는 사업 분야는 잘 골랐지만, 마케팅에 대한 고려없이 무작정 게임만 만든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고 결론내렸다. 그리고 사업계획서를 처음부터 다시 작성했다.
새 사업계획서는 게임을 만들기 전 이 게임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팔지를 먼저 정하는 ‘사전 마케팅’ 개념을 도입했다. 또 하나의 게임을 휴대폰과 차량용 내비게이션, 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PMP) 등 다양한 모바일 기기에서 동시에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등 범용성을 높이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휴대폰 전용 게임만 개발하는 경쟁 업체와 차별화를 할 수 있고, 한번 개발한 게임을 다양한 틈새 시장에 팔 수 있어 수익 기반이 넓어진다.
김씨는 새 사업계획서와 학교 벤처지원센터의 도움으로 정부의 벤처지원 자금 5000만원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이 자금으로 2004년 말 설립된 블루빈소프트는 창업 1년 만에 KTF와 LG텔레콤 등 국내 이동통신사와 삼성전자 등 휴대폰 제조업체에 ‘테레아오브전기’ 등 15종의 모바일게임을 공급하는 유망 벤처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사의 게임은 중국과 일본, 인도 등에도 수출돼 1억여원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인도 시장을 겨냥해 개발한 크리켓(영연방에서 인기 있는 경기로 야구와 비슷하며 넓적한 배트로 공을 치고 달린다) 게임 등 ‘사전 마케팅’ 개념을 수출용 게임에 적용한 것이 효과를 본 것. 김씨는 “창업은 경험이나 자본이 없어도 치밀하게 준비하면 기회가 의외로 많이 있다”며 “창업을 지원하는 정부의 제도나 지원을 적극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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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게임 음악 창조하는 ‘백재성 스튜디오’사장
대구시 남구 대명3동 계명대 대명동캠퍼스에 자리한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별관 616호. 컴퓨터게임 타이틀의 음악과 음향을 창조하는 곳으로 뜨고 있는 ‘백재성 스튜디오’다. 그 주인공은 사운드 디자이너 또는 사운드 프로듀서 백재성(28) 사장.
2004년 8월 창업해 국내에서 유명한 컴퓨터게임인 ‘그랜드 체이스’나 ‘테일즈 런너’의 배경음악을 작곡해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됐다. 배경음악은 게임타이틀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 창업으로 떴지만 이미 그전부터 이 바닥에서는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었다. 지금까지 25개 게임 타이틀의 배경음악을 작곡한 것을 미뤄 그 성가를 알 수 있다. 그외에 다른 소소한 CF나 멀티미디어 성격을 가진 제품의 사운드에도 참여한 것은 부지기수.
그런 박 사장에게는 대학 졸업장이 없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사람은 더욱 아니다. 어릴 적부터 음악에 대해 관심은 많았지만 고등학교 때 악대부에 지원해 색소폰을 연주한 것이 음악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였다. 대학 전공은 컴퓨터였다. 그러나 “적성에 그다지 맞지 않다”는 이유로 학교를 관뒀다. 병역특례의 길도 있었지만 이마저도 마다했다.
대신 마음 한구석에 꿈꾸고 있던 음악을 향한 갈망을 이루기 위해 공군 군악대에 지원, 편곡을 담당했다. 곧 국방부의 군악대원으로 옮겨갔다. 거기서 그는 서울대 음대 작곡과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선후배들을 만나 음악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
제대 후 음대에 진학하려고 마음을 먹은 일이 있었지만 현장에서 음악을 하는 것이 더 가슴에 닿았다. 2001년부터 3년 동안 대구의 한 멀티미디어 회사 제작부의 이사로 취직해 영상과 게임의 음악 등을 작곡하기 시작하면서 창업 꿈을 다졌다. 그러다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게 돼 의외로 꿈에 대한 도전은 빨리 찾아왔다. 그래도 창업 이후 한동안은 만만치 않았다.
“처음에는 컴퓨터 게임의 음악을 작곡해 놓으면 개발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작곡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군말 없이 개발자의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작곡했어요.” 그는 “최초의 음악 소비자인 게임 개발자와 끊임없이 의사소통을 해서 서로 마음에 들도록 해야 하는 것이 저의 임무”라고 말했다.
그러자면 게임에 대한 이해는 필수. 그러나 하루종일 음악만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음악에 너무 몰입하다 보면 다양성이나 독창성을 잃어 버릴 염려가 있기 때문에 쉬는 동안에는 재충전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하거나 휴식을 취합니다.”
그는 게임 음악은 “캐주얼하면서도 밝은 느낌이 들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게임 한 편당 보통 10개에서 15개 정도의 음악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음악들은 모두 개별로 완성된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강조한다. 작곡에서부터 컴퓨터로 사운드를 입히는 일까지 모두 그의 몫이다.
현재 국내에는 게임 개발업체가 2000여곳 이상이 되므로 수요도 많은 편. 이런 분야에 종사하려는 젊은이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 부합하는 실력을 갖춘 이는 많지 않으므로 실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이 분야의 장점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는 영화음악이나 대중음악의 작곡에 관심이 많다. “외국의 영화음악 작곡가 중 한스 짐머의 음악이 특히 좋아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사람들이 기억하는 좋은 영화음악을 작곡하는 것이 꿈입니다.” 그러나 그 동안에는 컴퓨터 게임 음악으로 자신의 실력을 더 닦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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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횟집 운영하는 이현종 사장
“직장생활할 때부터 창업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직장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다른 도전적인 삶을 살고 싶어서요.” 20대에 카페식 프랜차이즈 횟집 ‘취하는 건 바다’ 안산한대점을 연 이현종(28) 사장은 요즘 창업을 행동으로 옮긴 자신의 결정에 만족하고 있다. 자기 사업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는데다 장사가 생각 이상으로 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가 창업한 횟집은 깔끔한 카페식 분위기에 일반 횟집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가령 광어회 한 접시에 4000원에 불과해 한 사람이 적은 비용으로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다.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횟감을 배달받아 칼로 썰어서 내기만 하면 됩니다. 요리사 인건비와 어항유지비 등을 줄일 수 있어 가격파괴가 가능한 거죠. 매일 9개 테이블이 꽉 차서 빈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손님이 있을 정도입니다.”
지난해 10월에 얻은 15평짜리 가게에 쏟아부은 돈은 총 8000만원. 5년간의 직장생활과 프리랜서 생활로 모은 쌈짓돈이다. 서울보건전문대에서 의료공학을 전공한 이씨는 반도체장비 회사에서 장비기술자로 근무한 뒤 일본에서는 1년간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투자비는 가게 임대보증금 2500만원, 시설비 2000만원, 인테리어 1900만원, 프랜차이즈 가맹비 500만원 등으로 쓰였다. 요즘 한 달 매출은 1800만원. 재료비, 인건비 등 비용 1000만원을 빼도 월 800만원의 순수입을 올리고 있다. 또래의 월급쟁이에 비해 훨씬 많은 벌이다.
“젊은이가 창업 목표를 정했을 때는 무엇보다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창업한 뒤에도 여러가지 어려움에 부딪치면 초심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때 처음 설정한 목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역시 가게 운영의 어려움을 직접 겪어보니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을 겨냥한 횟집이어서 밤장사를 해야 한다. “오후 4시에 가게 문을 연 뒤 다음날 새벽 6시까지 가게를 열어야 하기 때문에 처음엔 적응하느라 무척 힘들었어요.” 휴일도 없이 매일 밤 늦게 일할 땐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따랐다. 직장생활하는 아내도 저녁엔 가게에서 일손을 도왔다. “다음 목표를 생각하면서 어려움을 이겨나갔습니다.” 이씨의 다음 목표는 가게 규모를 키우는 것. 먼 훗날엔 서비스를 가르치는 학원을 운영하는 교육사업가가 되는 꿈을 갖고 있다.
이씨는 창업을 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덜컥 해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그 역시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거친 뒤에 창업을 했다고 말했다. 횟집을 선택한 것은 요즘의 ‘웰빙’ 트렌드와 관련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고려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입지 선정. 서울 강남권이 가장 좋지만 워낙 임대료가 비싸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대신 수도권을 목표로 정한 뒤 두 달 동안 수도권의 도시들을 샅샅이 뒤졌다. 엄청난 발품을 판 덕분에 마침 가게가 비어 있어 권리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현재의 가게를 찾을 수 있었다.
“새해엔 월드컵 대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국팀 경기는 물론 축구 강국들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가게는 미어터질 거예요. 가게 앞에 파라솔을 놓고 함께 응원해야죠.” 월드컵을 향한 꿈과 함께 이씨의 꿈도 영글고 있었다.
대구=박원수 조선일보 전국뉴스부 차장대우 wspark@chosun.com
이거산 주간조선 차장 bigm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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