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國際.經濟 關係

"그가 붙인 불꽃이 지금도 타고 있습니다"

鶴山 徐 仁 2006. 1. 4. 22:53
"그가 붙인 불꽃이 지금도 타고 있습니다"
네루의 간디 서거弔辭: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앞으로 수 세기 수천 년이 지난 다음에 사람들은
 이 땅에 이 聖人이 살았던 이 세대를 기억할 것이며…
 우리 모두 그분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이 됩시다”
번역: 李正浩   
 [연설의 배경] 마하트마 간디만큼 인도의 문화에 영향을 준 인물은 없다. 20세기 그의 이름은 인도뿐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식민지 국가에 하나의 희망이요 등불이었다. 깡마른 체구에 흰 천으로 몸의 중심부만 가리고 돋보기 안경에 지팡이를 든 보기에도 초췌한 그가 수백만 백성을 일깨워 민중운동으로 200여년에 가까운 영국 식민 통치를 종식시키고 독립을 쟁취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사실 간디의 인도 정치무대의 진입은 다소 특이하다. 1869년 구즈라트의 소도시에서 태어나 19세에 영국으로 건너가 법률을 공부하고 귀국하여 고향에서 변호사를 개업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있던 중, 1893년 남아프리카에 있는 인도 상인들의 법률 문제를 자문하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 남아프리카에서 그는 백인의 유색 인종에 대한 극한 차별을 몸소 체험하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사띠아그라하’(진리 추구)라는 비폭력 저항운동을 벌이게 된다. 그의 사띠아그라하 운동은 성공을 거두고 조국을 떠난 지 21년 만인 1915년, 그는 인도로 영구 귀국한다. 그의 나이 46세 때이다. 남아프리카에서의 활동으로 그의 이름이 인도에 알려지긴 하였지만 국내에서 정치적 역량은 전혀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남아프리카에서 사띠아그라하 운동의 성공을 체험한 그는 이것을 무기로 인도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귀국 후 인도 전국을 돌며 현실을 직시한 그는 농민, 노동자들의 문제해결에서 정치적 견습기를 거쳐 1919년부터 중앙 정치무대에 우뚝 서게 된다. 1920년부터 그는 전국적인 사띠아그라하 운동을 통한 反英 저항운동을 벌이며 민중을 일깨우고 사회, 경제, 정신적 개혁을 주창하였다. 이후 그는 인도가 독립하기까지 독립운동의 선봉장 역할을 하였으며 국부로 칭송받고 있다. 그의 사상은 한 마디로 사띠아그라하와 아힌사(비폭력)이다.
 1948년 1월30일 뉴델리의 힌두사원에서 한 힌두 광신자에 의해 피살된 그는 한평생 ‘사띠아그라하’(진리 추구)라는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현실사회의 부정, 불법, 불평등의 악을 제거하려는 그의 노력은 남아프리카에서나 인도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비폭력(사랑)으로 진리를 찾아나선 求道者인 그가 폭력에 의해 희생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47년 8월15일 200년 간의 영국 통치로부터 벗어난 인도는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되었으며, 일부 광적인 힌두교도들은 간디가 두 나라의 분리 독립에 기여했다는, 다시 말하여 파키스탄이란 무슬림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였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결국 그는 힌두와 무슬림, 두 종파 간의 희생물이 되었던 것이다.
 네루 수상의 이 弔辭(조사)는 1948년 2월2일에 나온 것으로 그는 작가답게 군데군데 詩的인 표현을 써서, 사고와 행동은 서로 달랐지만 정치적 동반자였던 간디의 죽음을 가슴 뭉클하게 애도하고 있다. 네루는 간디를 ‘성인’으로 표현하면서 그의 일생을 높이 평가하였다. 전반에서는 지금껏 인도와 인도인을 이끌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켜준 간디의 생전의 활동, 업적을 흠모하고 있다. 비록 그가 세상을 떠나긴 하였지만 그의 사상은 全인도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으로 칭송하고 있다. 지난 30여년 간 독립을 위해 그가 벌인 사띠아그라하 운동은 그만의 독특한 정치적 테크닉이었다. 간디는 反英 저항운동을 벌이면서 힌두와 무슬림의 화합과 단결을 특히 강조하였지만 당시 인도에서는 두 종파 간의 갈등과 충돌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국부로 추앙받던 그가 한 암살자의 손에 의해 죽음을 당하였는데 이것은 당시의 상황을 적고 있다.
 후반에서는 그의 죽음으로 인도와 인도인들은 암흑과 슬픔 속에 놓여 있으나, 그것은 잠시일 뿐 그가 우리의 가슴속에 지핀 불꽃은 영원히 타오르고 인도와 인도인을 밝혀주고 인도할 것으로 기대하며 슬픔을 달래고 있다. 나아가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극복하자며 굳은 결의도 다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 위대한 인물과 함께 살았다는 것과 그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이 땅에 사는 것을 자랑스러운 긍지로 여기자며 그의 유업을 길이 본받자고 호소하고 있다.
 ------------------------------------------------------------------
 한 위대한 인물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의 삶을 따뜻하게 해주고 밝혀주었던 태양은 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추위와 어둠 속에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를 그렇게 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그의 가르침을 받았고, 神聖의 불을 가진 그 위대한 인물은 우리를 변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그 神聖한 불로부터 조그마한 힘을 얻었으며, 그 힘은 우리를 강하게 하였으며 그가 제시한 길로 우리들을 인도하였습니다. 그를 칭송하려 해도 그에게 합당한 말을 찾을 수 없으며, 또 그를 칭송하는 일은 어느 정도 우리 자신을 칭찬하는 일이 됩니다. 위대한 인물과 유명한 사람들은 청동이나 대리석으로 자신들을 위한 기념물을 만들지만 神聖의 불을 가진 이 사람은 일생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새겨져 있으며, 비록 작은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우리 모두를 위대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궁궐이나 선택된 장소 혹은 의회가 아니라 인도의 모든 촌락, 그리고 고통받는 천민의 집 등 全인도에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그는 수천만의 가슴속에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것 외에 그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를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를 칭송할 자격이 없으며, 그의 이상을 올바르게 따를 수도 없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노동과 노력, 희생정신을 요구하였는데도 우리가 말만 하고 행동으로 따르지 않는다면 그분에게 누를 끼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는 지난 30여년 동안 이 나라에 희생정신을 크게 북돋아주었는데, 이런 일은 다른 지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분은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그는 부드러운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큰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교육시켰던 우리 세대의 잘못, 그리고 그가 제시한 길에서 우리가 벗어났기 때문에, 큰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결국 그분은 우리 모든 인도인이 그렇듯이 그분의 자식이나 다름없는 한 젊은이의 손에 의해 쓰러졌습니다 .
 세월이 지난 후 역사는 우리가 살았던 이 시대를 평가할 것입니다. 성공과 실패를 평가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확한 평가와 무엇이 일어났고 무엇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이해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영광을 가져다준 한 위대한 인물이 있었고, 지금은 없다는 것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우리가 지금은 암흑 속을 헤매고 있지만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우리의 가슴속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아직도 그곳에 그가 붙인 불꽃이 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그 불꽃이 존재하는 한 이 나라에 암흑은 없을 것이며, 그를 기억하고 그의 사상을 따르는 우리의 노력은 비록 작지만 다시 이 나라를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그 불을 다시 지필 것입니다.
 그는 분명 과거의 인도의 가장 위대한 상징이었으며, 그리고 (그가 살아 있었더라면) 우리가 맞이할 수도 있었던 미래의 인도의 가장 위대한 상징도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현재의 위험한 난간에 서 있으며 온갖 위험에 직면해 있습니다. 가장 큰 위험은 우리의 이상 추구가 극단으로 치닫고, 큰 일을 하겠다고 말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때, 그리고 우리의 삶이 다른 길로 빠질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신념의 결여, 좌절감 그리고 열정과 영혼의 쇠잔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시기는 곧 끝나리라고 믿습니다.
 그분은 가셨습니다. 全인도에 적막감과 절망감만 남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으며, 우리가 언제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감정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세대가 이 위대한 인물과 한때나마 함께 하였다는 자랑스럽고 감사한 마음도 또한 있습니다. 앞으로 수 세기 수천 년이 지난 다음에 사람들은 이 땅에 성인이 한 분 살았던 이 세대를 기억할 것이며,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그분의 길을 따르고, 그분의 발자취가 있는 성스러운 땅을 걸었던 우리들을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분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이 됩시다.
 
 
 Jawaharlal Nehru’s Eulogy for
 Gandhi (February 2, 1948)
 
 “In ages to come, centuries and maybe millennia after us, people will think of this generation when this man of God trod on earth… Let us be worthy of him.”
 
 A glory has departed and the sun that warmed and brightened our lives has set, and we shiver in the cold and dark. Yet he would not have us feel this way. After all, that glory that we saw for all these years, that man with the divine fire, changed us also―and such as we are, we have been molded by him during these years; and out of that divine fire many of us also took a small spark which strengthened and made us work to some extent on the lines that he fashioned. And so if we praise him, our words seem rather small, and if we praise him, to some extent we also praise ourselves. Great men and eminent men have monuments in bronze and marble set up for them, but this man of divine fire managed in his lifetime to become enshrined in millions and millions of hearts so that all of us became somewhat of the stuff that he was made of, though to an infinitely lesser degree. He spread out in this way all over India, not in palaces only, or in select places or in assemblies, but in every hamlet and hut of the lowly and those who suffer. He lives in the hearts of millions and he will live for immemorial ages.
 What, then, can we say about him except to feel humble on this occasion? To praise him we are not worthy―to praise him whom we could not follow adequately and sufficiently. It is almost doing him an injustice just to pass him by with words when he demanded work and labor and sacrifice from us; in a large measure he made this country, during the last thirty years or more, attain to heights of sacrifice which in that particular domain have never been equaled elsewhere. He succeeded in that. Yet ultimately things happened which no doubt made him suffer tremendously, though his tender face never lost its smile and he never spoke a harsh word to anyone. Yet, he must have suffered―suffered for the failing of this generation whom he had trained, suffered because we went away from the path that he had shown us. And ultimately the hand of a child of his―for he, after all, is as much a child of his as any other Indian―the hand of a child of his struck him down.
 Long ages afterwards history will judge of this period that we have passed through. It will judge of the successes and the failures―we are too near it to be proper judges and to understand what has happened and what has not happened. All we know is that there was a glory and that it is no more; all we know is that for the moment there is darkness, not so dark certainly, because when we look into our hearts we still find the living flame which he lighted there. And if those living flames exist, there will not be darkness in this land, and we shall be able, with our effort, remembering him and following his path, to illumine this land again, small as we are, but still with the fire that he instilled into us.
 He was perhaps the greatest symbol of the India of the past, and may I say, of the India of the future, that we could have had. We stand on this perilous edge of the present, between that past and the future to be, and we face all manner of perils. And the greatest peril is sometimes the lack of faith which comes to us, the sense of frustration that comes to us, the sinking of the heart and of the spirit that comes to us when we see ideals go overboard, when we see the great things that we talked about somehow pass into empty words, and life taking a different course. Yet, I do believe that perhaps this period will pass soon enough.
 He has gone, and all over India there is a feeling of having been left desolate and forlorn. All of us sense that feeling, and I do not know when we shall be able to get rid of it. And yet together with that feeling there is also a feeling of proud thankfulness that it has been given to us of this generation to be associated with this mighty person. In ages to come, centuries and maybe millennia after us, people will think of this generation when this man of God trod on earth, and will think of us who, however small, could also follow his path and tread the holy ground where his feet had been. Let us be worthy of him.
 
 * 번역·해설 李正浩 한국외국어대학 인도어과 교수·인도 미루터대학 문학박사
 
 
[ 2006-01-04, 08: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