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외국작가 畵壇

[스크랩] 샤갈의 그림과 설명

鶴山 徐 仁 2006. 1. 2. 03:02
샤갈 Marc Chagall(1887~1985)
혼(魂)의 고향(故鄕)을 찾는 색채(色彩)의 대교향곡
1924년부터 샤갈은 서커스를 통하여 많은 그의 심중을 이야기하려는데 열중해 왔다. 그는 그 주제를 때로는 많은 팟슈로, 혹은 아크와틴트의 판 형식으로, 또 유화로 많은 경험을 했고, 또한 서커스는 그의 화면 공간을 그만큼 자유롭게 설정하는데 성공적인 주제이기도 했다. 그의 화면에는 <초록 눈의 집> 이후 자주 선량하고 우수에 찬 눈이 등장하고, 또 물고기가 등장한다. 투명도가 높은 푸른색 속에 그가 항상 그려오던, 이미 그에겐 일상성을 지닌 여러 형상들이 물 속에 잠기듯 깔려 있다. 그리고 그 표면에는 빨강과 노랑, 초록들이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푸른색과 대화를 하고 있다. 그는 이후, 이 몽상적이며 환상적인 랍소디 인블루에 의하여 연인들의 로맨스를 물들일 것이다.
6년 후 샤갈의 아내가 될 벨라 로젠펠드를 그린 초상 화이다. 이 해에 처음으로 벨라를 그때까지의 여자친구 테아의 소개에 의하여 알게 되어, 그의 영원한 반려자로의 한 여성상을 이 유태 여성으로부터 찾게 되고, 그 선택의 순간을 기념하기 한 초상화로 그려졌다. "돌연 나는 느꼈다. 내가 살아나갈 길은 테아와 함께 라는 것을! 벨라만이 내 아내라는 것을." 샤갈은 바로 전년에 테아를 모델로 한 <빨간 나무>를 거친 표현주의적 묘법에 의하여 그린 것이 있었으나, 그것을 청산하고 이 작품에서는 엄격하고 부드러운 감정이 서로 융화하듯 한, 샤갈의 독자적인 여성미 표현에 있어 최초의 기념할 만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까만 배경 앞에 하얀 의상, 그리고 까만 장갑의 대조에서 기품 있는 화면을 느끼게 된다.
<나와 마을>을 앙데팡당전에 출품한 샤갈은 아폴리네르 와 친교를 맺게 되어, 아마 이 작품은 아리네를 그린 것이 틀림 없을 것이다. 차츰 큐비즘의 영향에 깊이 들어간 작품으로, 특히 드로네나드 라 프레네 등과 같은 공통의 쾌적하고 간결한 포에지가 여기 흐르고 있다. 그러나, 화면을 단지 기하학적으로 통일된 분할만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입체파적인 분할은, 화면의 긴장과 운동감을 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응했을 뿐이라는 것을 분활 되지 않은 나머지 화면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가운데 자리잡은 시인의 상념을 위하여, 비스듬히 넘어지는 술병과 테이블 아래로 흘러내리는 듯한 과일, 칼, 그리고 왼쪽에 앉은 고양이 등이 중앙을 향해 집중되어 있는 구도이다. 초록의 얼굴을 거꾸로 놓는 그 비극적 세계관은 정착되지 않은 곡예의 방랑하는 슬픔 같은 것일 게다.
이 작품은 1910년 샤갈이 파리에 도착하여 그 다음에 그린 작품이다. 이 무렵 그의 화제가 된 것은 거의가 향수에 젖은 그의 고향 이야기나 풍습 또는 사람들의 일상 생들이었다. 이렇게 상상력이나 기억력에 의존하여 제작을 했기 때문에 대상을 묘사적으로 표현하기보다 극단적인 데포 르마숑에 의한 환성적인 화면을 구축할 수 있었고, 독특한 그의 풍을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파리에 서 그린 그러한 작품들 중에는 병사가 여자를 희롱하는 장면들이 더러 있는데,이 작품도 그 중 하나이다. 고향의 추상을 파고 들음으로써 화면의 공간을 하나의 추상공간으로 심리적 깊이를 더해 가려는 의도를 알아볼 수 있다. 전경의 인물이 취하고 있는 손의 모양과 함께 우스운 포즈의 무언극이라도 하는 모양, 뒤쪽에 뛰고 있는 인물과 함께 유머러스 한 화면을 만들고 있다.
이 작품 샤갈의 작품 중에서 면을 가장 세분화한 작품 일 것이다. 당시 그는 벽에 세잔의 복제화를 몇 장이나 붙여 놓을 정도 세잔의 만년의 입체파의 모체가 된 조형 이념을 동경하였고 "우리들은 모두 세잔에서 출발했다."고 고백한 레제, 브라크에 가장 심취해 있었다. 일찍이 제작을 통해서 다양한 형태의 기하학적인 해체를 철저히 파고들려고 결의하고 있었던 것을 이 작품을 통해서 추측할 수가 있다. 이 작품은 형태가 그렇게 세분화되어도 유동적이고, 음상이 또렷 또렷한, 마치 바하의 토카타를 듣는 것처럼 장엄하다. 이러한 수법은 후일 렝스 성당이나 메쓰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제작에 되살아난다. 샤갈의 다른 작품에도 그러하지만, 인물의 표정에 있어서 음산한 면은 금단의 열매를 딴 악의 주 제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 작품의 부분적으로나마 처음으로 파리에 자신이 살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작품이다. 왼쪽 창밖에 거리와 에펠탑이 그려진 현실로의 파리와, 오른쪽 벽에는 회상으로서의 비테부스크를 나타내어 그의 내면과 외면 그리고 현재와 과거를 결합시키고 있다. 그가 그린 얼굴은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괴신(怪神)의 것으로, 그 현실성은 일곱 개의 손가락과 함께 조화되고 있다. "나무가 뜻밖에 엉뚱한 것으로 하고, 별안간 자신의 오른손은 다섯 손가락인데 왼 손이 일곱 손가락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세계를 나는 극히 의적으로 구성하고 싶습니다."(E. Roditi와의 대화) 하지만 이 일곱 손가락은 누르고 있는 화포(畵布)속에 그려진 그림의 세계와 조화되며 다시 배경의 벽에 그려진 헤브라이 문자에 속하는 신기한 문명의 비밀과 조화되고 있다.
파리에 나온 샤갈이 처음엔 고갱의 원시적인 생명력에 감화를 받기도 하고, 고호의 정적인 표현 특성에 영향 받기도 했으나, 곧 입체파적인 화면 분할기가 시작되어 이 작품을 그린 해부터 3년간 그런 작업 계속된다. 이 작품도 그의 마음 속에 깊이 꿈 비틀거리고 있은 추상의 이미지를 원과 삼각, 사각형의 기하학적 구성을 통해서 평면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점은 그러한 화면 분할의 수법과, 나와 마을의 거리를 이렇게 친밀화시켜 보여주는 심정에 의한 또 다른 질서의 힘이다. 그 힘은 소와 나를 같은 원 속에 접근시켜 과거와 현의 나를 일체화시키며, 나의 얼굴빛을 푸른색으로 한 것은 후의 <일곱 손가락의 자화상>과 같이 물리적 중심과 다른 중심을 가진 별세계에 상응하게 하기 위한 필연의 변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샤갈은 노인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작품 테마로 많이 다루고 있다. 그것은 그 유년기에 흔히 마을에서 대하던 친척이나 이웃 노인들을 통하여 뭔가 인생을 이야기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빨간 하늘과 검은 거리를 배경으로, 신문을 팔아서 사는 한 노인을 정면으로 응시하여, 내일이 없는 산 숙명적인 삶을 살고 있는 듯한 한 노인의 상을 화면에 영원화한 듯한 작품이다. 이 노인을 강조하는 것은 가슴에 늘어뜨린 신문의 뭉치로서, 이것이 강조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증거는 뭉치의 표면에 나타나고 있는 문자 "여기에 유일의 팬터지가 있다."라는 말로써 대신되고 있는 점에서 명백해진다. 그것들은 시간의 추적이며, 오른쪽 멀리 교회가 상징하는 영원과 서로 맞서고 있다.
피카소와 더불어 입체파 화가들이 서커스에 흥미 갖고, 그런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긴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샤갈도 서커스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것은 이 그림을 그린 전년경 부터 인데, 그는 후일 마술적인 세계, 고도의 포에지의 형(形)으로서 서커스에 자신이 끌렸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나의 회화도, 언어도 결코 서커스의 정확함에는 미치지 못한 다."라고도 말하고 있듯이, 역시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매력의 정체는 정확함에 있다. 발레리가 말한 '댄스와 같은 정확함'은, 후일 원숙기에 전쟁, 혁명, 성서적 광경 등을 그린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묵시록 적인 혼돈과 거리가 멀다. 아크로바트의 정확도를 나타내기 위하여 화면에 대담하게 인물을 배치하고, 큐비즘 분석의 정도(精度)와 결합된 호사하고 장식적인 화면을 만들고 있다.
화면의 지평선을 아래로 내릴 수 있는 데까지 내리고, 넓은 하늘을 배경으로 아기 예수를 속에 가진 성모가 우뚝 섰다. 18세기까지 러시아에 전해 내려오는 이콘 (聖像)의 전통으로, 아기 예수를 원형이나 타원형의 테두리 속에 넣어 성모의 뱃속에 투시시켜 그리는 것은 넓게 알려진 일이지만, 샤갈은 이 작품 속에 그 전통을 현대적 성상으로 그렸다. 태아 주변에 그려진 타원 속의 소우주와 성모를 둘러싸고 있는 외계와의 교감이 샤갈의 분명하고 우아한 필법에 의하여 잘 표현 되어 있다. 입체파인 화면 분할법은 차츰 화면에서 오히려 내적으로 샤갈의 조형적 의도에 순화되어 공간을 더욱 깊게, 크게 설정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성모의 표정이나, 스카프, 치마 등에서 보여지는 세속성은 오히려 속(俗)과 성(聖)의 접근을 느끼게 한다.
샤갈은 그의 일생동안의 작품 속에 꽃다발, 말, 소, 닭,서커스, 바이올린이나, 첼로 등의 악기를 되풀이하여 등장시키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그가 고향에서 어릴 때부터 대하던 그의 생활 바로 그것이었다. 이 작품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도 그의 어린 시절에서 투르기는 해도, 담뿍 흥에 겨워 그리움과 회상에서 그린 것일 게다. 지붕 위에 선 인물은 초자연적인 크기로 그려져 지구를 딛고 선 남자 천사처럼 눈이 내린 지구 저쪽의 마을을 배경으로 흥겹게 선율을 자아내고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나무 위 아래에 몇 마리의 새들이 그 소리를 즐기고 있고, 왼편에는 화환을 들고 세 사람의 남매가 소리나는 곳을 찾아 모여 들고 있다. 명확한 흑백 대조의 화면 속에 그 의 유년기의 회상을 듣는 듯하다.
1917년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러시아는 대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1914년에 세계 제1차 대전이 발발하여 그때 샤갈은 베를린에서 개인전을 끝내고 조국으로 돌아갔다. 1917년 페트로 그라드의 미하이로스키 극장에 집결한 시인, 화가, 배우들이 미래의 문화성의 초석을 위하여 샤갈을 미술국장에 추대하였으나, 그는 정치적 위험을 피하여 비테부스크의 벨라 집으로 돌아와 화업에 전심, 사태를 관망했다. 이때 그린 작품 <술잔을 높이 쳐든 이중 초상>이나 <산책>은 이 시기의 사랑에의 찬가이다. 드디어 약탈과 파괴에 멍든 고향의 산하에서 첫딸을 얻은 아내를 넓은 우주 공간에 휘돌리는 이 작품은 매우 대범하게 처리 한 그의 동화적 표현에 의하여 매혹적이다. 그리고 빨강과 초록의 두 계통의 색채로써 그 농담의 변화를 주면서 맑고 커다란 화면을 이루고 있다
비테부스크의 처가에서 명의 추이를 관망하면서 그린 작품들에서 가장 대표할 수 있는 그의 사랑의 찬가가 바로 이 <술잔을 높이 쳐든 이중 초상>이다. 샤갈은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스타일에 있어 명확한 하나의 전기를 가져왔다. 화면 전체에 명쾌한 빛이 넘치게 되고 더구나 억제된 약동감을 가지고 있어 보이는 까닭은, 배경 오른편에 두텁게 노란 마티에르가 왼쪽의 청색과 효과적 불협화음을 이루면서 세 인물을 일체화하는 요소에 의하여 심정의 흐름이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딸 이다가 천사처럼 아버지의 머리위 에서 날개치고 있고, 그 주변에서 부부의 몸 쪽으로 붙어서 흐르는 짙은 파랑색은 윤곽이 아니고 피와 살의 결합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선은 처음 나타난 것으로 후일의 서정적 작품에서 더러 나오게 된다.
아늑한 녹색 정원을 창밖에 둔 신혼의 보금자리다. 선명한 초록 화면의 한 중간에 하얀 간이 커튼이 걷어 올려져 있다. 밤에는 커다란 창을 반만 가릴 수 있도록 된 커튼의 백색이, 깨끗한 그들의 신혼의 감정처럼 청결하다. 사랑이 넘쳐 만물을 모두 같은 아름다움으로 찬미하려는 심정의 행복함이 숨김 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 심정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창의 오른편에 쌓아 올려놓은 듯 두개의 옆 얼굴로 샤갈과 부인 벨라가 그려져 있다. 창 밖의 무성한 자작나무의 풍경은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새로운 세계로서 보는 감동을 갈색의 항아리와 빨간 과일을 자연에 바치는 물건으로 창을 통해서 생명이 일고 그 생명 다하도록 온갖 곳에 사랑의 중심이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이 이 화면을 꽉 메운다.
1924년 이후 샤갈은 완전히 서커스를 파고 드는데 사로잡혀 있었다. 확실히 이 세계를 주제로 하는 작품을 통하여 유태 예술계와의 협력 시대에 몸에 익힌 새로운, 경쾌하고 대범한 필법을 충분히 소화시켜 나간 것 같다. 이 작품은 같은 해에 그린 <꿈>이란 작품과 함께 <창가의 이다> 이후 또 한 단계 그의 원숙기에 한 발자국 다가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꿈>과 함께 곡예사를 그리는 작업을 통하여 그 형(形)의 데생적인 묘사가 아니라 해방된 호방한 필법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 속에서 그의 새로운 발견은 형은 데생으로부터 자유이고 색채는 형에서 자유라는 것, 평면적으로 색을 칠하는 가치가 얼룩으로 바 뀌고, 새로운 기호(말의 배면에 있는 기수의 손과 같은)의 발 등... 그는 속박되는 틀에서 한 겹 탈피하는 것이다.
"나는 다른 어떤 사람들처럼도 되고 싶지 않다. 새로운 세계를 보고 싶다.... 고향이여, 너는 에크스(세잔이 태난 고장)의 일을, 귀를 자른 화가의 일을, 큐빅(立體), 4각, 파리의 일을 들었느냐? 비테부스크여, 나는 너를 두고 간다." 자서전 '나의 생애'에 결별사를 놓고 파리에 다시 온 샤갈 이었으나, 프랑스의 자연미를 알게 됨에 따라 다시 살아나는 것은 고향의 산하였다. 이 작품은 1925년의 여름을 몽쇼베에서 지내면서 아름다운 그 풍광에 자신도 모르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 것이리라. 말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농부와 말의 정다운 관계, 그리고 멀리 보이는 주막, 그 주막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담소하는 사람들, 마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 춤을 추는 남녀 등, 꿈결 같은 그리움이 맑게 흐르는 기억의 샘물같이 그려져 있다.
1923년 샤갈은 두 번째로 파리에 나오게 되고, 다음 해인 24년에 바르바상쥬 오베르 화랑에서 처음으로 회고전을 갖고, 여름을 브르타뉴에서 보냈다. 이 작품은 파리에 나와서부터 시작되는 제2 체불 기간의 새로운 그의 양식이 보여주는, 색채와 형을 사랑으로 융화시키는 수법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그림 이다. 브르뉴 해안의 경승지 브레아섬의 여름이 주는 풍치가 그가 사랑하는 딸 이다와 함께 융화되어 있다. 여기에는 그가 첫 번째 파리 시절에 입체파의 영향으로 그렸던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화면의 분할과 어두운 그림자도 없이, 인물은 외계에 대하여 알맞게 균형 잡혀 안정되고 조용하게 앉아 있다. 전체의 색조와 마티에르는 안개가 스며든 것처럼 부드럽게 어울려 데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색채의 뉘앙스에 의하여 화면을 처리한 듯 부드러운 정감이 가득하다.
1937년에 샤갈이 유태인 박해의 현상을 보고, 또 독일과 이태리의 파시스트 대두, 조국 러시아에서는 스탈린에 의한 숙청이 정점에 달했을 때, 그의 젊은 피를 끓어 오르게 했던 10월 혁명을 상기시키는 대작을 계획, <혁명>이란 제목의 에스키스를 남기고 있는데, 그로부터 10년간 그것이 세 개로 쪼개어져 가필되어 완성한 것이 이 <레지스탕스>와 <부활>, <개방>의 삼부작이다. 이 작품에서는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려는 의도는 없고, 제목과는 달리 공방하는 적대 관계도 없다. 단지 위대한 수난자의 둘레를 부유(浮遊)하는 민중의 각고가 있을 뿐이다. <레지스탕스>는 여기서 항독 (抗獨) 운동이 아니라, 운명에 항거하는, 유동하는 영혼을 의미하는 것 같다. 비테부스크의 광장에 누운 화가 자신에게 향하여 조그만 초록색 벽시계가 흘러내리고 있다.
예감되어 왔던 비극은 드디어 세계대전의 형태로 나타나고, 그 발발의 해에 몇 점의 대작을 그렸는데, 그 중 특히 이 작품이 대표적인 것으로서 새로운 그의 양식의 도래를 알려주는 그림이다. 그가 계속해 오던 주제 '사랑'은 마침내 불길한 것의 그늘에 부각되게 되었다. 여태껏 그가 표현하던 고향 비테부스크를 어슴푸레하게 위에서 내려보게 하는 구도로 뒤에 깔고, 강한 그리고 기묘한 물상의 앙상블을 이루어 놓았다. 커다란 추시계와 함께 날개에 피칠이 된 커다란 청어 는 바이올린을 가지고 사랑의 찬가 아닌 다른 슬픈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듯하다. 날아도 날아도 앉을 곳이 없는, 그래서 쉴 틈없이 날아야 하는 운명의 시간을 이야기하듯, 유태인으로서 당시 절박한, 올 것이 오고 만 비극을 나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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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샤갈은 이 작품을 통해서 또 한 번의 변용을 가져온다. 이 시기에 나타나는 샤갈의 작품 속의 연인들이 아주 몽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일관된 환상 속에 이제는 어떤 괴기적 요소가 섞이기 시작한 것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비테부스크는 첼로를 켜는 인물 뒤에서 황량한 눈이 덮인 고장으로 되고, 혹은 다른 작품 <초록 눈의 집>에서는 건물이 눈을 번쩍거리기도 한다. 인간은 동물로 동물은 어떤 괴물로 각각 변모한다. 이 작품에서는 첼로가 샤갈 자신이 되고, 바이올린을 켜는 벨라는 조그만 송아지로 변하여 있다. 그들 자신이 화면에서 곡예를 하며 또한 다음 곡예를 예고하기도 한다. 특히 하늘이나 길에 전율을 느끼게 하는 마티에르, 얼룩지듯 엮어간 화면의 질감은 앞서 제작한 판화집을 통한 기법에서 온 것이다.
벨라의 죽음은 샤갈에서 있어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그 불행과 고독을 이겨내는 9개월간 그는 붓을 들지 못했고 온갖 그림들을 벽을 향해 돌려놓았다. 드디어 화가(畵架) 앞에 앉을 기력을 회복하여 처음으로 그가 손에 잡은 그림이 12년 전 그가 사랑에 잠겨 살 때 그린 <아르르 캉> 이었다. 시집가는 신부를 거의 중앙에 그리고, 주위에는 여러 형상과 인물이 여기저기 그려져 있는 작품으로, 이 오른쪽 반쪽의 테마로서는 <화촉>이라는 이 작품을, 왼쪽 반으로서 앞에 소개한 <그녀의 주변>이라는 작품을 그렸다. 앞 쪽의 투명하고 짙은 푸른색에서, 밝게 멀리 배경의 위로 놓은 신부의 모습으로, 그 주위에는 선회하는 듯 여러 형상을 둘러 싸게 한 이 구도는 혼례를 주제로 한 샤갈의 전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샤걀의 초기의 작품들에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우울한 어두움이 그 동안의 전쟁과 고독의 부조리를 통하여 풀어지고, 세계의 그늘과 융화되어 갔다. 그에게 있어 가장 정다운 회상의 대상이며, 몇 번이나 거듭 화폭에 나타나는 비테부스크까지도 이제는 유령의 마을처럼 그리고 있다. 낮을 비추는지 밤을 비추는지 구별이 되지 않은 초승달이 화면 광경에 초월적으로 무엇인가를 강조하고, 주막의 현현한 거안은 젖어 동공이 흐려 있다. 이 무렵에 그린 그의 작품 속에 보여주는 그의 낙원의 동물들은 대부분 이빨을 드러내고, 물고기는 선혈을 벌겋게 흘리는 날개를 갖는다. 이 작품을 그린 해에 사랑하는 벨라를 잃었고, 그래서 외로움에 떨고 있는 집들, 고독하게 혼자 젖을 짜는 여인을 지켜보는 수호의 눈으로서 자기 자신의 눈을 동공이 없는 채 부드럽게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 샤갈의 애처 벨라가 세상을 떠난 다음 해에 그려졌다. 파리 해방과 더불어 파리개방의 소식을 듣고 뛸 듯이 좋아하던 벨라가 갑자기 돌아오지 않은 사람으로 그의 곁을 떠나고, 샤갈은 그 슬픔을 통하여 그녀와의 삶을 이 작품에서, 마치 스테인 글라스의 작품처럼 투명하고 심오한 색으로 표현했다. 푸른 밤의 중앙에는 초승달 빛을 받은 비테부스크의 또 다른 밤이 둥글게 따로 박혀 있고, 이 둥근 조그만 지구를 아크 로바트로 변한 딸 이다가 붙들고 있다. 전경에는 피안의 사람들을 봄으로써 그것을 상기하고 있는 듯한 벨라의 표정과, 그피안의 하늘에 시선을 지는 자기 자신의 역전한 얼굴이 그려져 있다. 중앙의 원은 초승달과 함께 해와 달을 상징하고, 이후 많은 작품에 음양(陰陽)의 의미를 가지고 나타나는 기호의 발단이라고 할 수 있다.
순교자는 십자가가 아니라 커다란 일자 막대기에 매달려 있다. 순교자의 집은 불타 하늘에 시커멓게 연기로 채워지고 있다. 결혼 이후 25년간 행복하고 안락한 그 의 가정에 피어나던 사랑의 이야기를 환희와 더불어 그려오던 그의 작업은, 정세의 변화와 함께 전해 내려 오는 전설 신화에 그 자신의 현실을 일체화시키는 총합적인 작업으로 변하여 간다. 이 작품에 있어 순교자란 예수가 아니라, 나찌에 의하여 학살되어 간 이름 없는 무수한 유태인들 중의 하나이다. 죽은 자를 한 여인의 눈물, 명복을 비는 아직 살아남은 사람의 기도, 바이올린으로 진혼 음악을 연주하는 녹색 옷을 입은 악사, 그런 것에 의하여 죽음을 보상받는 순교는 유난히 화면 중앙에 강렬한 인상를 주고 있다.

1947년 6세의 샤갈은 프랑스로 돌아간다. 파리, 암스테르담, 런던등지에서 미국의 뉴욕, 시카고에 이어 회고전이 열리고, 6년 만에 새로 대하는 프랑스의 자연을 대하며 새로운 감회에 젖는다. 특히 생 잰 카프 페라에 머무르면서 남프랑스의 매력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남프랑스의 밝은 색채에서 다시 광명을 찾은 것이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후일 봔스나 생 포 르에 결정적으로 새 삶의 터전을 이루게 된다. 이 작품은 별명으로 <초록의 풍경>이라고도 제목이 붙어 있다. 또 이것과 관련된 연작으로 <브루의 풍경>있다. 이 작품의 태양은 샤갈 특유의 새빨간 색으로 바다 위에 해바라기와도 같은 가장자리를 이루고 선명히 떠 있다. 한 여신이 남자의 얼굴을 받들고, 한 손으로는 태양을 붙들고 있다. 새로운 광명을 가져다 주는 여신이리라.
벨라가 죽고 난 이후 몇 점의 작품에서 샤갈의 색채가 얼마나 투명하며 깊이 있고, 아름답게 발색하고 있는가를 우리는 깨닫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은 그의 내면 속에 깊이 깔린 슬픔을 그가 얼마나 알뜰하게 소화하며, 정화시키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이 작품에 있어서도 화면의 부분을 메운 투명한 푸른색 속에 몇 가지 드러낸 강렬한 대비색이 너무나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샤갈이 돌연 화면에 매를 그리게 된 것은 어느 친구의 '천야일야(千夜一夜)'의 삽화를 경험에서라 한다. 어쨌든 그의 즐겨 쓰는 나선구에 의하여 두 갈래로 갈라진 모자의 하강과 썰매와 말의 상승운동을 통하여 어떤 리얼리티와 결합한 점에서, 이 작품은 깊은 의미를 지닌다. 썰매를 타고 가던 마돈나는 상승하는 썰매에서 떨어져 땅에 떨어지고 있다.
후에 <성서에의 메시지>로서 통괄되는 작품의 중핵이 되는 3점의 회화가 바로 이 <다윗왕>과 <홍해 횡단>, 그리고 <십계판을 부수는 모세>이다. 1951년 이 작품을 그린 해에 이스라엘을 재차 방문한 것을 계기로, 샤갈은 20년만에 판화집 성서의 못다 한 부분을 완성하고, 그 여세로 조각과 스테인드 글라스에 이르는 대하(大河)와도 같은 광범위한 제작에 들어간다. 그러나, 음악을 연주하는 <다윗왕>의 작품은 예루살렘의 언덕을 앞에 하고 탄식하는 교부의 모습을 빼고는 종교적 요소는 전혀 없다. 샤갈의 종교화는 협의의 종교 성을 나타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전 작품에도 공통적으로 인간의 비극성과 결합하여, 그의 독특한 조형세계를 펼치는데 성공하고 있다. 샤갈 나름의 엄격성, 샤갈 나름의 비극성을, 샤갈 나름의 포에지와 팬터지를 통해서 엮고 있다.
이 작품을 앞에 소개한 <홍해 횡단>, <다윗왕>과 더불어 대작 3폭의 기념적인 작품 중의 하나이다. 산에 올라 주(主)의 손으로부터 증표가 되는 십계판을 받고 있는 사이, 아론의 선동에 의하여 황금의 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숭배의 대상으로 한 민중이 화면 우측에 보인다. 이에 너무 화가 나서 십계판을 던져 깨어 버린 모세의 모습을 화면 중앙에 세워 화면을 좌우로 갈라 놓았다. 이 작품은 이중으로 어떤 뜻을 시사하고 있다. 왼편 아래쪽에서는 거룩한 분노의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 오른쪽 쪽에는 모세가 주(主)로부터 십계판을 받는 장면이, 다음 왼편 위쪽에는 십계에 따라 살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 그려져 있어, 마치 헤브라이적인 의미의 천의의 달성의 시간을 펼치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샤갈은 차츰 악몽에서 깨어나 1952년 제 2의 벨라라고 할 수 있는 발렌티나 브로스키와 재혼을 하고 광명의 세계를 얻는다. 그의 색채는 도기(陶器)와 스테인드 글라스의 제작에 발을 들려 놓으면서 그의 화면에 그런 기법을 효과적으로 적용시켜 독자적인 색채감을 개척 해 나갔다. 이 작품은 재혼을 한 다음 해 시작한 <파리 >연작 중의 하나로서, 역시 3년 전에 그렸던 <푸른 서커스>와 함께 투명한 도자기의 유약을 통해 빚어져 나오는 광택의 마티에르를 느낄 수가 있다. 에펠탑은 강철로 구성되어 하늘 위를 향하여 힘차게 뻗어 있는데도, 온갖 것을 꺾어 휘어서 그리는 만곡증 (彎曲症)의 샤갈에게 그려지는 에펠탑은 역학적(力學的)인 강철(鋼鐵)의 결구(結構)가 아니라 그 화면에 나타나는 말이나 닭과 같은 성질로 휘어진 달 모양에 대응하여 곡선으로 휘여 거꾸로 서 있게 된다.
모세에 의하여 홍해(紅海)를 가르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는 그라나파를 위시하여 몇 몇 종교 화가들의 영감을 고취하기도 했고, 또한 영화까지 만들어져 우리의 흥미를 돋군 적이 있다. 이 이야기를 샤갈은 그 나름의 대단한 구성법에 의하여 작품 화하고 있다. 하나님에 의하여 직접 모세의 힘으로 바다를 두 쪽으로 갈라, 해안과 해안 사이에 길을 이루어 피난민을 건너게 하고, 신의 사자인 모세는 다시 되돌아와 그들을 뒤따라 절박하게 추격하여 온 파라오의 군세(軍勢)위쪽에 서서 구름과 어둠을 내려 그 진격을 저지한다. 날이 밝아 모세가 그의 지팡이를 휘둘러, 주의 힘은 좌우로 갈라졌던 바닷물을 일시에 되덮게 한 광경을 그리고 있다. 강렬한색 대비의 화면이 아니라, 아주 부드러운 하모니를 이루는, 그의 원숙기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최만년(最晩年)의 샤갈 예술의 스타일은 무엇보다도 이 한 점의 작품에 집약되어 있다. 그는 많은 서커스 작품을 남겼고, 또한 그의 독특한 환상을 서커스에 결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한 서커스에서 얻은 경험의 형태나 색을 다시 그의 다른 작품에 소화시켰다고 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흰색, 회색, 검정의 무채색 (無彩色)을 주조(主調)로 하고 그 속에 군데 군데 유채색(有彩色)의 채도(彩度) 높은 투명색(透明色)을 놓았다. 그리고, 화면의 여러 형상도 여태껏 보아오던 기호(記號) 상호(相互)의 결합이 전적으로 새로운 불가지(不可知)의 의미를 느끼게 해 준다. 새는 땅에서, 말은 하늘에서 서로 성체 배수(聖體 拜受)의 관계에 들고, 말은 천사와 결합되어 천사는 거룩한 손 위에 있다. 성속(聖俗)을 하나로 묶어 보는 이 양식은 서커스의 광경을 하 나의 종교화로서, 그리고 긴장이 가득 찬 굵은 선은 그의 에칭의 인열선(引裂線)을 응용한 것으로, 그의 온갖 서커스 작품의 총합체라 할 수 있다.
"마티스 이후 샤갈만이 색이 무엇인가를 아는 유일한 화가가 될 것이다." 이것은 피카소가 한 말이다. 샤갈은 물감의 순결이 심정의 순수와 일체화하려고 했고, 작품을 성실히 제작하는 것은 최선을 다하여 성실을 가지고 자기 표백을 하는 것을 염원으로 했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은 색채의 폭력에 있다고 그는 생각하며, 그런 색을 "코에 역겹게 다가온다."고 했다. 이작품은 극히 억제된 색으로 별세계(別世界)의 깊이를 강조하고 있다. 부활제의 헤브라이어의 원의(原意)인 '통과', 초월자(超越者)의 놀라운 통과를 이 천사는 나타내고 있는 것인지? 오른손을 올려 희생된 어린 새끼 양을 부르고, 가난한 에스파냐 사람들은 이를 환송한다. 모든 것이 여기서는 희생에의 축성(祝聖)을 낮은 소리로 읊조리고 있는 것이다. 부조리의 초극(超克)은 이리하여 최고의 축성(consecration)의 의의와 합치된다.


 

 

 

참사랑 (ing89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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