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oul Dufy (1877.6.3~1953.3.23) 라울
뒤피 프랑스 화가. 디자이너. 1877년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의 르 아브르에서 태어났다. 러시 아와 터어키의 전쟁이 일어나던해 1877년
라울뒤피는 프랑스의 작은 금속회사의 경리직원 으로, 휴일에는 교회 성가대를 지휘하던 아버지 리용 마리우스 뒤피와 어머니 마리우제니이 다 모르니
사이에서 4남5녀 9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집안이 무척 궁핍했던 까닭에 중 학교를 중퇴하게 된다. 가난하지만 음악을 즐기는 우아한 분위기의
가정에서 아버지는 뒤피 가 화가를 지원했을 때 반대하지 않았다. 그의 동생들도 두 사람은 음악가로 한사람은 화가 가 되었다. 무렵에 커피
수입상사에 취직하지만 이듬해부터 화가의 길을 걷기 위해 시립미 술학교 야간부에 입학했다. 병역을 마친 1900년 시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파리의
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 에 입학하여 L.보나르 문하에서 본격적인 미술공부를 하였다. 여기에서 앵 그르를 숭앙하는 뤼이리예 밑에서 아카데믹한
수채화를 배우면서 오통 프리에스와도 교분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인상파풍의 그림을 그리다가 1905년 H.마티스의 강한 자
푸른색을 자주 사용했던 뒤피.
장난 처럼 그려진 약간의 유아틱한 느낌이지만,
신선하고 꾀나 유쾌한 기분이다^^
라울 뒤피.
내가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이유는?
즐겁다.
뒤피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즐거워진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소리가
바이올린 줄을 튕기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바다 냄새도 난다.
소금기 실은 오후의 바닷바람이 얼마나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인지. 그렇지만 달콤하고 나른하다.
작년에 베네치아에 갔을 때 끝을 알 수 없이 이어진 운하의 미로와
배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보이는 탁 트인 바다에 마냥 즐거워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보다는 덜하지만 적당히 습기찬 바닷 바람.
바포레또를 타고 무라노 섬을 가는데 얼굴 가득히 불어오는 바람이 마구 몸에 엉겨붙었다.
한번도 마약을 해본적은 없지만 마치 마약같다고 느꼈다.
그 따뜻하고 나른한 바람에 취해서 정신없이 잠이 들어버렸다.
뒤피의 그림은 그렇다.
뒤피도 알고 보니 프랑스 남부 해안의 노르망디 출신이었다.
그는 분명히 이런 바람을 잘 알고 있었을 거다.
내가 뒤피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때 미술을 배울 때였다.
우리집이 부자는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나는 미술을 전부다 개인 교습으로 받았다.
그 때 우리 앞집에 화가 선생님이 사셨는데 그 집으로 미술을 배우러 다녔다.
덥고 끈적끈적한 여름이었다.
그 집은 다른 집들처럼 벽돌로 지은 집이 아니라 형형색색의 돌로 지은 다소 특이한 집이었는데
내가 그림을 그리는 곳은 그 집 2층의 넓게 트인 베란다였다.
선생님의 아틀리에 겸 애들이 그림그리는 곳이었다.
베란다에는 흔히 집 베란다에 있는 샤시가 없고 그냥 불어오는 바람을 맞도록 아무 창도 없었다.
더워서 선생님 방을 들락거리면서 그림을 그렸다.
선생님 방에는 그림책이 많았다.
주로 화가의 화집들이었다.
그 때 선생님이 보여주신 책 한권이 바로 뒤피의 화집이었다.
엽서보다 조금 큰 크기에 하드보드지로 양장이 된 굉장히 예쁜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안에 있는 그림은 더 예뻤다.
색을 칠한 아래로 선들이 보이고
그 선들도 뚜렷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분방하게 이리저리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림에서 느껴지는 경쾌함.
즐거웠다.
그 날 유난히 파란색 물감을 많이 썼던 기억이 난다. 초록색과 물도 섞어서 투명하게.
즐겁고 경쾌하고 아름답다.
낭만주의 작곡가 드뷔시는 그의 그림에 잘 어울린다.
생은 즐기면서 사는 거다. 순간순간 기쁘게.
그 즐거운 순간을 포착하여 영원으로 만드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어떤 어두운 구석도 없이 오로지 밝기만한 뒤피의 그림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