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세종로 격인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가는 중앙 녹색 분리대를 포함해 왕복
32차선이나 된다. 가장 넓은 도로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주변은 유럽풍의 건물들이 아름답게 늘어서 ‘남미의 파리’라는 유명세를 실감케 한다.
코리엔테스 대로와 오벨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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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
지하철 1914년 건설
그
거리 아래를 달리는 지하철은 지금부터 81년 전인 1914년 건설됐다. 세계에서 2번째였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채무국이었던 영국으로부터 빚을
탕감해주는 조건으로 기술자들을 파견 받아 건설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바지저고리 차림에 3.1 독립 만세(1919년)를 부르기도 전인 일제
강점기에 그들은 이미 화려한 지하 대중교통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동화
'엄마 찾아 삼 만리'의 주인공인 이탈리아 소년의 엄마가 가정부로 일하러 떠난 곳이 아르헨티나였다. 19세기 후반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 여성이
3D업종의 외국인 노동자로 취업할 정도로 잘사는 나라였다.
이렇듯
아르헨티나는 1900년대 초반에만 해도 세계 5대 부국으로 잘 나가던 나라였다. 그러나 1946년 노동자 세력을 등에 업고 등장한 페론 대통령의
무모한 분배정책으로 아르헨티나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더
많은 임금’‘더 많은 휴식’‘더 많은 사회보장’이라는 ‘노동자 천국 정책’은 경제피폐를 가져왔다. 경제파탄은 민심이반을 가져왔다. 그러면 그
틈을 타 군부가 나와 정권을 잡았다. 그들 역시 민심을 얻기 위해 더 선심을 써야했고 필연적으로 경제는 더 나빠졌다. 또 민심이 떠나면 다시
민정이 들어섰다.
페론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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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과
군정의 악순환 속 경제 피폐
민정과
군정의 악순환 속에 경제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페론 이후 43년 동안 정권이 무려 19번이나 바뀌었다.
그런
악순환은 국민에게 경제적 희생만을 강요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특히 군정은 좌익척결이라는 명분 아래 수많은 지식인과 학생 등 반체제 인사들을
무자비하게 투옥, 고문, 살해 했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뒤 영영 소식이 끊겼다. 정권은 그들은 죽이는 것도 귀찮아 수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비행기로 실어다 먼 바다에
수장해버리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것이
바로 ‘추악한 전쟁’이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 군정의 폭거였다. 그 기간 동안 희생자는 무려 만2천 여명(인권단체 집계: 3만명)이나
됐다.
"책임자 처단하라!" 절규하는 어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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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체제인사
학살, 한 맺힌 어머니들
대통령궁
앞 ‘5월의 광장’엔 매주 목요일이면 수많은 여인들이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나와 광장을 돌면서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인다. 벌써
25년 동안이나 계속되는 시위다.
서울
일본 대사관 앞에서 매주 열리던 한국 종군여성 피해자들의 ‘수요집회’는 바로 아르헨티나의 목요집회를 본뜬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할머니들이 흰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있는 것도 똑같다.
나는
지난 89년 10월 남미 경제특집 취재를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머물다 우연히 그 장면을 보게 됐다. 사연을 취재해 본 결과 그것이 인기주의에
영합한 정권의 악순환 과정에서 빚어진 피비린내 나는 만행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웃
나라인 칠레에서도 70년대 중반 아옌다 정권을 쿠데타로 붕괴시킨 악명 높은 피노체트 정권 시절 수많은 반체제 인사들이 학살됐다.
이는
수 년 전 ‘산티아고엔 비가 내린다’라는 영화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데 ‘산티아고엔...’이라는 말은 당시 아옌다 대통령이 쿠데타
군의 총격으로 사망했던 날 한 라디오 방송이 쿠데타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렸던 ‘멘트’였다.
학살
주도 군부 책임자 처벌 길 열려
최근
외신은 아르헨티나 어머니들의 피맺힌 한이 마침내 풀릴 수 있게 됐다고 전한다. 아르헨티나 대법원이 당시 군정 책임자들의 처벌을 가로막고 있던
법(국민통합과 화해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려 무효화시켰기 때문이다. 이 법은 80년 대 중반 집권한 알폰신 정부가 학살 책임자들을 처벌할
경우 군부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이를 아예 불가능하게 하게 위해 만들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2003년 5월 취임한 네스트로 키르치네르 대통령 정부가 과거사 청산 작업을 추진했고 이는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경우도
5.18 특별법 제정으로 전직 대통령을 두 명이나 감옥에 보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들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감이 든다.
아르헨 대 브라질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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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르헨티나의 축구선수들을 보면 어김없이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떠오른다. 흰 바탕에 하늘색 줄무늬가 내리 그어진 유니폼이 강적인 이웃 브라질의 노란색
유니폼의 강렬한 느낌과는 다르게 어쩐지 한 많고 서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아르헨티나의 영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는 나만의
느낌이다.
아!
아르헨티나여!
(*)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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