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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 文化參考

[스크랩] 이순신 장군의 전적

鶴山 徐 仁 2005. 9. 18. 11:19
이순신 장군의 전적은 23전 23승 무패입니다.
 
최근(2005년 4월 30일) 재보선 이후, 열린우리당 내부갈등이 다시 불거져 나오고 있다고 하죠, 당시 국회의원 6명 등 총 23명을 새로 뽑는 선거에서 단 한 곳도 이기지 못한 전패(全敗)의 책임과 관련해서요!
 
이중 열린우리당 홈페이지에는
"충무공은 23번 모두 이겼는데 우리당은 23곳에서 모두 졌다"라는 글이 있었다고
하는 군요! 요행이도 그 숫자가 똑 같았고 이를 누군가 인용한 것이죠!
 
충무공 이순신장군은 평생 동안 세운 전적은 23전 23승 무패입니다.
엄청난 기록이죠!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세계 여러나라의 해군사관학교에서는
생도들에게 역사적으로 유명한 세계 4대해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계 4대해전(世界四大海戰)의내용을 보면,
- B.C. 480년 그리스의 데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제독의 살라미스(Salamis)해전
- 1588년 영국 하워드(Howard) 제독의 칼레(Calais) 해전
- 1592년 거북선을 앞세워 승리를 거둔 이순신(李舜臣) 제독의 한산대첩(閑山大捷)
- 1805년 영국 넬슨(Nelson) 제독의 트라팔가(Trapalgar) 해전 등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법으로 유명한 한산도대첩이 물론 포함되어 있으며, 장군의 승리가 넷 중에서 가장 값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열세척의 배로 133척의 적선을 이긴 명량해전도
세계 해전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대첩으로 칭송받으며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거북선은 미국 워싱턴의 전쟁기념관,
영국 바다역사박물관을 비롯하여, 중국, 도이칠란트, 프랑스, 캐나다 등
세계 각지의 역사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는 그저 국내의 영웅의 아니라 세계적인 명장입니다.

다음은 이순신 장군의 대한 각국의 평가 및 기록들입니다.
 
<선조실록 권106, 선조 31년 11월, 무신>
이순신의 전사소식이 전해지자 호남의 백성들은 통곡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일편단심 충성스러운 마음을 나라 위해 바쳤고
한 몸을 아낌없이 의리 위해 바쳤으니 비록 옛날의 훌륭한 장수라 하더라도 그보다
훌륭하지는 못 할 것이다.
 
<정조대왕 어제상충정무지비(御製尙忠旌武之碑) 중 >
"내 선조께서 나라를 다시 일으킨 공로에 기초가 된 것은 오직 충무공 한 분의 힘,
바로 그것에 의함이라.
내 이제 충무공에게 특별한 비명을 짓지 않고 누구의 비명을 짓는다 하랴"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
"천지를 주무르는 재주와 해를 다시 손 본 공로다"
 
<일본 해군대좌 사토오 데츠다로>
옛부터 장군으로서 묘법을 다한 자는 한둘에 그치지 않는다.
해군 장군으로서 이를 살펴보면 동양에서는 한국의 이순신,
서양에서는 영국의 NELSON(1758-1805)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불행히도 이순신은 조선에 태어났기 때문에 서양에 전하지 못하고 있지만
임진왜란의 문헌을 보면 실로 훌륭한 해군장군이다.
서양에서 이에 필적할 자를 찾는 다면
네덜란드의 Ruyter Michiel(1607-1678) 이상이 되어야 한다.
넬슨과 같은 사람은 그 인격에 있어서도 도저히 어깨를 견줄 수가 없다.
 
<일본 토-고-헤이하찌로>
그의 승전 축하연 답사에서
"나를 넬슨에 비하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에게 비하는 것은 감당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 석학 토쿠토미테이이찌로>
그의 저서 "朝鮮役"에서
"이순신의 죽음은 마치 넬슨의 죽음과 같다. 그는 이기고 죽었으며 죽고 이기었다"
 
<일본 해군준장 사토-데쯔라로>
1926년 "조선지방행정" 제6권 2월호 "절세의 명장 이순신"에서
"장군의 위대한 인격, 뛰어난 전략, 천제적인 창의력, 외교적인 수완등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절세의 명장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다.
해군장군인 나로서는 평생을 두고 경모하는 바다의 장수로
네덜란드의 Ruyter Michiel과 조선의 이순신이 있다.
그 중에서 갑과 을을 정하라 한다면 서슴치 않고 이순신을 갑으로 추천하는 바이다.
영국의 넬슨이 세계적인 명장으로 명성이 높은 것은 누구나 잘 아는 바이지만
그 인격에 있어서나 청의성에 있어서는 도저히 이순신의 짝이 될 수 없다.
 
프랑스의 장군 "스후란", 미국의 장군 "아랏카트"와 같은 세계적인 명장들도
존경할 만하다 하지만 넬슨 이하의 인물이다.
로이테르는 인격과 역량, 경력도 이 장군과 비슷하지만 장군으로서 필요로 하는
창의성에 있어서는 한 수 꺾이는 것같이 보인다.
이순신 장군은 풍신수길의 목적을 좌절케 하였으며 바다를 제압하는 것이
국방상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사실적으로 증명한 명장이었는데 중도에서 모함을 당하여
백의종군 하였으나 어떠한 원망도 하지 않고 고통을 달게 받았으니
이 한가지 사실만 보더라도 장군의 인격의 고매함을 알 수 있다.
장군은 군기에 엄하고 위엄이 있으며 부하 사랑하기를 친자식같이 하였으며
기분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매사에 정성으로 임하는 모범적인 장군이었다.
장군은 평소 그의 뜻을 전하기를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서 나라에 쓰이게 되면 죽음으로 충성을 다 할 것이오,
만약 쓰이지 못하면 들에서 밭갈이 하는 것으로 족하다.
사람에게 아부하여 영화를 도모하는 것은 나의 큰 수치다"라고 하였으니
이 한마디로 그의 인격을 알아보기 충분하다.
 
<영국 해군준장 G. A. Ballard >
이순신은 서양 사학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순신은 전략적 상황을 널리 파악하고 해군전술의 비상한 기술을 가지고
전쟁의 유일한 참 정신인 불굴의 공격원칙에 의하여 항상 고무된
통솔원칙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의 맹렬한 공격은 절대로 맹목적인 모험이 아니었다.
영국인에게 Nelson,과 견줄 수 있는 해군제독이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기는 힘든 일이지만 이순신이 동양의 위대한
해군사령관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다음은 이순신장군의 주요전투에 대한 요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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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임진왜란관련 흥미로운 자료들 입니다. 참고해보세요!
 
임진왜란은 오직 명군과 의병의 활약으로 이긴 것으로 기억되고 있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통계를 보고 그런 생각이 바로잡혔으면 좋겠습니다.
임진왜란 기간 중 벌어진 크고 작은 전투는 약 105회로 집계됩니다.
이 중  조선군이 공격전을 벌인 게 68회, 방어전을 벌인게 37회로
조선군이 훨씬 공격적 이었습니다.
(물론 당초의 공격은 왜이지만요!)
 
조선군의 승리가 65회, 패배가 40회로 조선군의 우세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승전 65회의 전투 중 조선 관군의 단독전이 38회로 압도적이었으며
의병의 참전 아래 관군이 주도한 전투가 11회,
그리고 의병 단독전은 10회,
관군의 참전 아래 의병이 주도한 전투는 6회였습니다.
이 통계로 보아 관군이 전투를 주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연도별로는 개전 첫해인 1592년 9개월동안 70회가
집중적으로 벌어졌는데 이 가운데 조선군의 공격전이 43회,
방어전이 27회, 승리 40회,
패배30회로 평양까지 몰린 개전 초기를 제외하고는
첫 해부터 승세를 잡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해부터는 조선이 일방적인 공격을 가했으며
명군 참전은 105회의 전투 중 8회에 그쳤습니다.
 
이상입니다.
 
 
 
참고출처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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