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천년이 시작된지도 이제 벌써 4년이 지났다. 지난 20세기는 과학기술에 있어서도 비약적인 발전과 커다란 변화가 진행되었던 시기였다. 이제 21세기의 과학은 우리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과거와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발전하리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몇 가지 새로운 모습을 보이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첫째, 자연의 궁극을 밝히려는 환원주의적 경향의 과학 연구보다는, 실용적인 응용과 관련된 분야가 더욱 활기를 띌 전망이다. 1993년 미국 의회가 우주와 물질의 근원을 밝혀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초전도 슈퍼입자가속기(SSC)' 건설계획은 중도폐기 결정을 내린 반면, 생명과학, 의학 등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것으로 보이는 인간게놈프로젝트는 계속 진행되어 2001년 초에 인간게놈 초안의 완성을 본 것은 미래 과학의 발전 방향에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로 인하여, 20세기가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으로 대표되는 ‘환원주의적 물리학’이 대세를 이룬 시대였다면, 이러한 조류는 갈수록 쇠퇴하고 21세기는 생명과학의 시대가 되지 않겠느냐는 예측이 나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물리학 중에서도 실제적인 응용에 더욱 가까운 신소재, 초전도체, 카오스이론 등의 분야는 더욱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정보통신(ET), 생명과학(BT), 나노과학기술(NT) 등 몇 개의 중점육성분야를 결정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기초과학과 응용공학, 기술의 경계가 갈수록 엷어지고 구분이 어려워질 뿐 아니라, 여러 분야가 융합되는 ‘학문 분야간 연구(Interdisciplinary Study)'가 일상적인 연구의 형태로서 자리를 잡을 것이다.
학문 분야간 연구는 과거의 역사적 사례들을 보더라도, 오토 한-리제 마이트너-슈트라스만 팀의 핵분열 원리의 발견, DNA의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 등에서 이미 커다란 위력을 발휘하였지만, 앞으로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거의 필수적으로 요청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각광받는 미래의 과학기술로 떠오르는 몇 가지 분야를 살펴 보더라도 더욱 그러하다. 나노과학기술은 물리학, 화학, 생물학, 전자공학 등 거의 모든 과학기술분야에서 공통적으로 크게 주목을 받고있으며, 장차 활용 가능성이 크게 기대되는 뇌과학은 자연과학과 공학 뿐 아니라 심리학, 언어학, 철학 등의 인문사회과학분야까지도 포괄하는 공동연구가 필요하다. 새롭게 떠오르는 생물정보학 역시 과거에는 크게 관련을 맺기 힘들었던 생물학과 수학, 컴퓨터공학의 만남으로 탄생하였다.
셋째, 남달리 탁월한 과학기술자들의 뛰어난 활약은 여전히 지속되겠지만, 과거 뉴턴이나 아인슈타인과 같은 몇몇 천재적인 ‘슈퍼스타’들에 의해 과학전체가 좌우되는 모습은 아마도 보기 힘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와 관련해서 어떤 사람들은 이미 “과학계에서 영웅시대의 종언”을 예측하기도 한다.
따라서, 국가나 민간자본 등의 지원 및 수십, 수 백명의 과학기술자들이 참여하는 대규모의 연구개발 형태가 이미 빈번하게된 이상, 과학기술자 개개인의 능력 못지 않게 전체적인 팀웍과 시너지효과가 앞으로도 크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아울러, 과학기술 내부의 모습 뿐 아니라 과학기술과 사회가 관련을 맺는 형태 역시 상당한 변화를 보이게 될 것이다. 사회 전체에서 과학기술이 지니는 비중이 대단한 만큼 이미 많은 나라들이 과학기술을 국가의 발전과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핵심적 요소로 인식하고 지원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적절한 과학기술정책과 아울러 과학기술과 법률제도, 과학과 윤리, 과학과 문화 등의 바람직한 관계 정립에 대해서도 큰 관심과 노력을 쏟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사회의 여러 분야에 걸쳐서 이미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고, 생명과학의 발달에 의한 인간 복제의 우려 등, 여러 윤리적 문제들이 제기된 것을 보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과학기술자들 역시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역량을 쌓고 능력을 크게 발휘하는 것과 아울러, 새로운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아가는 자세 또한 요구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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