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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본부 제작 이순신 장군 동영상 >
우리가 충무공을 이야기 할때 가장 궁금하고 경의롭게 생각하는게, 바로 23전 23승 이라는 불패의 신화 입니다. 불패라 하여도 우리측의 피해가 많으면 그 또한 의의가 줄겠지요. 하지만 한번 볼까요?
- 이하 '펌' -
"임진년 5월 4일, 제 1차 출전 이래 총 4차에 걸쳐 17회의 크고 작은 해전을 전개하여 적선의 격침, 나포가 207척이었고 수리 불가능할 정도로 대파한 적선은 152척이었다. 또 왜병 33,780명을 격살하였다. 이에 비해 조선 해군은 단 한 척의 전선 손실도 없었고, 인명 손실은 전상, 전사자를 모두 합하여 243명에 그쳤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세계의 어떤 전쟁에서도 특히 해전에서는 이런 기록이 없었다.
23전 23승 불패
적선 격침 및 대파 : 359 대 0
사상자 : 33,780 대 243
아마도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조선 해군의 대제독 이순신의 이 불멸의 기록은 세계 해전사에 영원히 신화로 남을 것이다. 그는 36번의 크고 작은 해전에서 단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이순신 장군 영정>
- 독자 인터뷰 -
“장군님의 카리스마, 불굴의 의지, 군사와 백성을 사랑하는 따뜻한 인간미,
장군님 때문에 매일 밤잠을 설친답니다.” - 이승엽 -
“리더십을 어떻게 발휘해야 하는지에 대해 장군님에게서 큰 가르침을 얻고 있습니다.” - 이철희 -
“나라 살림을 하는 분들이 이순신 장군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으면 합니다.” - 박미야 -
이서행(59)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행정철학)는 “사람들은 정신적인 사표를 구하고 싶어하는데 실제 그런 인물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그런 인물을 찾다가 ‘이순신’ 이라는 괜찮은 인물을 만나게 된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남는 의문이 있다. 이 교수의 글이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홈페이지 어디를 둘러봐도 이순신에 대한 비판적인 얘기는 거의 없다. 원래 어떤 인물이 영웅으로 뜨면 안티(Anti) 세력의 비판이 나오는 법인데, 이순신은 ‘지고지순한 영웅’일 뿐이다. 이순신에 대해 딴죽을 걸어보려는 사람들도
“그렇게 훌륭한 점만 갖춘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역사에선 ‘영웅’이라고 하는데 믿어도 되는건가”
“군사정권이 미화시킨 인물 아닌가”
라는 식으로 혐의점을 못잡은 채 단순비판에 머무르고 있다.
이순신에게서 ‘옥의 티’를 찾는 것도 ‘이순신 열풍’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는 아닐까?
다음은 이 교수가 이순신의 리더십을 분석해 놓은 글을 요약한 것입니다.
1. 엄격함과 인자함을 겸비한 지휘관의 리더십
경상도 동래와 양산에서 전투가 벌어졌으나 곧 패전했다. 이때 경상 좌수사인 박홍이 싸워보지도 않고 철수했으며 순천의 영군병방은 근처에 있었으면서도 출병하지 않고 패전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므로 이순신은 관계자들을 무참하게 처벌했다.
이순신은 장수이므로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나 피난민들의 생계를 염려하여 그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강구했다. 왕에게 ‘피난민들이 돌산도로 들어가 살면서 농사를 짓도록 해 달라’는 상소문을 올리기도 했다. 이순신은 노여움이나 즐거움을 나타낼 때 지나침이 없었다. 벌과 상을 줄 때 중도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부하들은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사랑했다.
2. 불의의 관행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공직자의 리더십
이순신은 피난민들이 소와 재물을 도둑질하기 위해 적군이 쳐들어온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렸을 때 그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했다. 좌의정 김응남이 개인적인 우정에 따라 김억추를 국방책임자로 임명하자 이순신은 이를 탄식하며 울분을 참지 못했다.
3. 효과 극대화의 행정력과 전술을 이용한 리더십
효과 극대화의 리더십이란 구성원들의 각기 다른 욕구와 생각을 잘 조화시켜 조직을 성공적으로 운용하는 덕목.
이순신은 군비확충과 조달, 전투준비와 장병들의 사기진작, 부족한 전투 병력의 보충 등을 위해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승려와 농민들을 접촉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총사령관격인 삼도 수군통제사로서 직접 모든 부하들을 관리하기는 힘들다고 판단해, 중간 관리자들한테 책임감을 심어주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줬다고 한다.
1598년 7월 이순신과 함께 조·명 연합함대를 지휘한 명나라 장수 진린은 이순신에 대해 “천지를 주무르는 재주와 나라를 바로잡은 공이 있는 분”이라고 극찬했다.
4. 선견지명 있는 상황판단과 철저한 준비를 통한 솔선수범의 리더십
1578년 두만강 어귀에 있는 녹둔도의 둔전관으로 근무할 때 오랑캐의 기습공격을 받은 이순신은 적의 화살에 왼쪽 다리를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병사들이 사기를 잃을까봐 몰래 돌아서서 화살을 뽑아버리고 태연히 부대를 지휘했다.
일본 수군이 우리 해상을 장악했을 때 이순신은 일본 수군의 대함대가 전라도 쪽으로 몰려올 것을 예상하고 어떻게 싸울 것인지 고민했다. 얼마 뒤 조정에서 수군 전폐 지시를 내렸으나 이순신은 거절하고 명량해전에서 유례없는 대승을 거뒀다.
이 두 사례는 각각 한 조직의 리더가 자기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솔선수범하는 것과 지휘관이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도록 평소에 자신을 닦아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5. 엄격한 신상필벌로 부하들의 사기와 복지문제를 해결하는 리더십
전쟁에서 승리할 때마다 전과를 개인적으로 명시해 수훈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했고, 군령을 어긴 사람은 엄하게 처벌했다. 전쟁이 끝난 뒤 겨울의 농한기를 이용해 교대휴가를 보내 농사일을 준비하게 했고, 노획품 가운데 의복과 무명, 베 등을 군사들에게 나눠줬다. 이순신은 신상필벌을 엄격히 하기 위해 부하들의 신상과 특기들을 자세히 기록했다고 한다. 이런 자세 덕분에 임진란 7년 동안의 일이 고스란히 담긴 <난중일기>가 탄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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