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추억
황령산
아랫마을
돌산마을에서
어쩌면 나는
어떤 거주자들의 오랜
추억들을 살해하는
저격수같다.
좁은 골목길과 낡은 처마
스레이트 지붕에 올려진
블럭들...
집앞 작은 공터에 공들여 만들어 놓은 채소밭.
오래된 외국영화 패널로 바람막이를 한 작은
구멍가게.
한켠에 방치된 채 녹이 쓸어가는 군고구마 만드는 통.
산동네 상징물처럼 집집마다 놓여진 푸른 간이
물탱크.
서둘러 아무렇게나 지어진 듯한 무허가 집들이라도
그 지붕들의 선에서
또 다른 조형의 선들이
조화를 이룬다.
어찌되었든,
내가 다가가 사진을 찍는 곳은
그 땅들, 집들, 골목들이 지니고 있던
추억들,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의
애닯거나, 슬프거나, 행복하거나 하는
그런 오랜 추억들이 곧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 땅에 새로운 추억을 심게 될
새로운 집들이 들어 서겠지만
어떤 사람들의
오랜 추억을 담고 있는 형상물들이
사라진다는 것이 아프다.
어쩌면 나는
어떤 거주자들의 오랜
추억들을 마지막으로 지켜보는
장의사같다.
그래서 나는
그 오랜 사연과 추억들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 형상들을 남기려 한다.
그 산등성이의 돌산 공원에서
시내를 내려다
보고
황령산에 걸린 푸른하늘을 올려다 보며 돌아설 때
쉬지 않고 날 따라 오는 형상이 있어 내려다
보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이중적인 잣대로 사는 나를 지켜보는
또 하나의 내가 거기에
있었다.
황령산 산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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