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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떤 사랑의 실루엣

鶴山 徐 仁 2005. 8. 27. 18:15
06/05 어떤 사랑의 실루엣 2000



며칠 전 지하철에서 중학생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엿들었습니다. '야, 그 애는 너무 착해, 난 도저히 용서가 안돼' 나는 일순 의아했지만 내게도 그토록 착한 얼굴이 기억나기에 곧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착해서 용서가 안 되는 사람, 경제에 대한 대책이 없이 일생을 타의에 의지해서 살아버린 넝쿨식물같은 사람이 나의 여러 이모님 중의 한 분이었습니다.



그 이모님의 삶은 부농의 맏딸로 태어나 순탄하게 시작되었고, 도시에서 자수성가한 재력 있는 남자에게 혼인 들었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시골에 있던 동생들을 모두 도시로 불러 중,고교에 진학시키고 취업에 결혼시키고 분가되기까지 맡아주는 일을 할 수 있었던 살림이기에 항상 식솔들이 들끓는 집의 안방마님으로서 살아갔습니다. 그 분의 속내가 어찌 한지를 잘은 모르는 조카이지만 겉으로는 몹시 행복한 여인이었습니다.

 


아무튼 이모부가 계시던 동안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울기 시작한 가세를 酌量없는 이모는 한 구더기에 말아 없애버렸습니다. 집도 절도 없는 민달팽이의 운명이 되어버린 이모님께 남은 유일한 벗은 바로 돌아가신 이모부님의 친구 분이셨습니다. 세 분의 관계는 이모님이 결혼하실 때부터이니 사, 오십 년은 족히 되는 시간입니다. 이모부와 그 친구분은 월남하신 이북 분들이었습니다. 평양 근처 순천이 고향인 두 분은 우연히 남쪽의 한 도시에서 만나게 되어 형제처럼 서로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모와 이모부님이 결혼하실 때는 들러리의 역할도 하실 정도로 가깝게 지네셨습니다.


그 분- 임장노님은 이남에서는 시계포를 운영하며 생활을 꾸려나갔습니다. 큰 잡화상을 하시는 이모부님의 가게 가까운 곳이었지요. 임장노님의 부인은 말 수 적고 병약한 분이었습니다. 심장이 약한 분이라 가정은 웃음소리도 없이 조용하였고 단지 두 아들만이 공부를 잘하여 그 분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우리 이모님은 정말 얌전하시고 솜씨있는 분이며 항상 식객이 많은 집이라 음식이 넘쳐났습니다. 곶감, 평강, 산자같은 옛날 음식만이 아니라 당시로는 귀한 개화 음식인 가루 우유나 쌍화차, 혹은 돈육 간스메, 씨 레이션 박스에서 나오는 음식들도 심심잖게 풍성하였습니다.



두 가족의 친밀함은 삼 박자로 진행되는 음악이라고나 할까요. 항상 조용한 임장노님 댁에 이모님이 일방적으로 음식을 보내는, 그리고 임장노님은 이모님의 맏딸 곧 나와 동갑인 사촌에게 중학교에 들어 갈 때는 엄지손톱만큼 작은 타원형의 에니카 손목시계를 선물하였고, 사촌이 피아노를 배우며 찬송가 반주를 연습할 때는 빨간색의 아리아 올갠을 사주기도 하였습니다. 가뜩이나 부모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는 사촌에게 배가 아픈 나는 지금도 뚜렷이 기억나는 일들이었습니다.



이모부님이 돌아가시고 임장노님의 부인이 돌아가신 후, 두 분은 우연치않게 서로 연락하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경제력 없는 이모님이 도움을 받으시게 되었겠지요. 때로는 두 분 사이에 편지도 오고 간 모양입니다. 한 편지의 단 한 구절이 단초가 되어 소동이 일어난 것은 이모님이 예순 다섯 살 때입니다. "외로운 권사님의 마음을 손 부뜰고 위로해 드리고 싶은..." 라는 한 구절이 벌집을 들쑤신 듯 시끄러운 소용돌이를 일으켰습니다. 이모님의 두 며느리는 이번에 아예 이모님을 시집 보내자고 동맹을 맺었고, 딸들은 모두 당황한 눈빛을 나누며 이모님을 말없이 압박했습니다. 어머니의 부정을 본 듯한 차가움으로...


지금 그 상황을 돌이켜 보니 나 자신도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사촌들과 함께 죄인처럼 웅크린 이모님을 더 옥죄던 일이. 그래서 아마도 이모님은 모질게 그 분의 도움을 거절하셨던 것 같습니다. '모래밭에 혀를 박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라는 표현은 그 유순하고 자존심 강한 이모님이 피를 토하듯 폐부에서 터트린 한마디 절규였습니다. 그리고 이모님의 마지막 날들은 주어진 운명에 고개를 디밀고 순치되는 과정을 겪는 가축처럼, 침묵과 묵상 속에 한마디로 그저 죽음까지를 기다리며 걸어가는 순례자와 같았습니다.


나는 얼마 전 휴일을 숙부님의 칠순 잔치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마침, 내 사촌과 아직도 살아 계시던 임장노님의 해후를 목도하였습니다. 여든이 다 된 그분은 아직도 멋진 책크 상의와 모자로 깔끔하게 단장하여 더욱 정정하여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내 사촌의 모습은 그 옛날 전성기의 이모님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한복이 어울리는 둥그스름한 어깨와 지적인 눈빛 그리고 빨아당기듯 부드러운 목소리 모두가 이모님을 꼭 닮아 있었습니다. 그 분의 시중을 들어드리는 사촌의 손길과 마음은 정성과 안쓰러움이 넘쳤습니다.


알리사가 사라진 후, 제롬이 겪은 고통과 한 인간의 가슴에 새겨진 사무치는 그리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종교적인 계율과 도덕적 행위를 지켜야되는 사람들의 옷깃을 묶어주는 가죽끈의 존재를 이제는 나도 알게 되었습니다. -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8:23-24> - 삶이 곧 죽음이며, 죽음이 도리어 삶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이 악물고 지킨 사람의 거세된 사랑과 죽음은, 그제야 순교자라는 이름으로 보상될까요?



나는 때로 이모부님이 거닐었다던 대동강가를 따라 걸어보는 환상을 갖습니다. 언젠가 들었던 평양 여자들의 지조와 화통함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합니다. 어디선가 '배따라기' 한 구절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형의 오해 속에 속절없는 회한의 세월을 보내버린 아우의 노래, 아아, 그 속에 잠겨있는 삭이지 못할 뉘우침, 과거에 대한 애처러운 그리움. 노래를 끝낸 다음에 벌떡 일어서서 시뻘건 저녁 해를 잔뜩 등으로 받고, 을밀대로 향하여 혹은 모란봉을 향하여서 더벅더벅 걸어갔다는 사람을 나는 찾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모부님과 임장노님이 오해없이 함께 걷는 뒷모습을 찾아 헤매는 꿈을 꾸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토요일 내가 다른 일로 분주할 때 임장노님의 장례식이 끝났다합니다. 한 여인을 향한 향방없는 사랑의 순절한 모습을 그는 고스란히 안고 떠났습니다. 그 편지의 행간에 남은 마음의 경사를 서로 외면하고 살아버린 시간은 정말 고행이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맛을 말갛게 표백시키고 떨쳐입은 하얀 모시 두루마기의 뒷자락을 바라보며 나는 또 처절하도록 담담했던 한 여인의 모습을 가슴 아리게 그려봅니다.


                       '00.6.5
                       망종에 철없는 農婦 푸른샘 씀


ps 1 : 안문숙님 답신이 늦었습니다. 님의 격려에 감사 드립니다. 허지만 나는 이미 나의 한계를 알고 있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저 眞兒를 찾아가는 방법으로 글을 이용해 껍질을 벗겨내고 있는 참이지요. 아무튼 자주 지적해 주시고 도움말 주세요.

ps 2 : 돌김님, 항상 진보적 사고에 놀랍니다. 어쩌면 나는 여성의 식민지적 사고 방식에 얽매여 있는데...  통치자로서의 남성의 아량이 그 정도라면 굳이 페미니즘이 설 곳이 없지요. 돌김님의 냉수라면 얼마든지 맞고싶습니다.

나는 감히 남녀의 동등한 권리는 경제의 자립에서 오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나의 오해인지 모르지만 여성이 돈을 이유로 사랑을 접수하는 경우도 흔히 보니까요. 오래 전 서민 아파트에 살 때 날마다 매맞는 윗집 여인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들은 바로는 그 때리는 남자는 한 달에 쌀 두말을 주기로 하고 만나는 남자라는 것이었습니다. 매질은 보너스라는 말일까요?우연히도 경제력 없는 여인들의 수동적 사랑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도 내 마음의 저면에는 깔려 있지요. 아량 있는 남성에 대한 고마움도 함께요.

돌김님, 아주 잠시라도 부인의 외로움을 나누어 준 사람이 있다면, 상상대로의 대접은 하셔도 된다고 생각됩니다.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은 결국 그 주위의 모든 관계 속까지 포괄하여 사랑하는 아버지같은 모습이 아닐까요?  한 남자에 대한 사랑을 위해 그 주변의 모두를 안아들이는 여인들을 보시지 않나요? 파문처럼 번져나가면 다시 감싸안아지는 사랑이 성숙해 보입니다.

만약에 내게 다른 사랑이 있고 또 그의 아들을 돌보고싶어진다면 나는 한 백 명분의 사랑을 준비하겠습니다. 물론 남편이 도와 주겠지요. 그 안에 담아서 넉넉하게 주는 사랑, 매 학기의 장학금과 매일의 기도를 벅차게 기쁜 마음으로 마련하는 그런 할머니가 되고싶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가져온 곳: [푸른샘의 홈스쿨]  글쓴이: 푸른샘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