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무엇을 쓰든 제겐 상관없고 당신에게 쓰고있다는 사실만이 오직 제 맘에 드는군요. 그건 마치 당신에게 키스하는 것 같고 뭔가 육체적이며 당신에게 글을 쓰고 있는 제 손가락들 안에서 당신에 대한 사랑을 느끼고 있어요. 단지 머릿속에서뿐만 아니라 자기 몸의 살아있는 부분이면 어디서건 자신의 사랑을 느끼는 건 좋은 일이지요. 글을 쓰는 것은 분명 키스하는 것만큼이나 기분이 좋은 건 아니예요. 그것은 조금 메마르고 고독하며 슬프기까지 하지만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요. 저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그래서 당신도 알겠지만 저는 아무거나, 바보 같은 말을, 단지 '안녕'이라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쓰고 있어요.>
지난가을 내내 탐독하던 시몬 드 보부아르의 '연애 편지' 중 일부랍니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19년 동안이나 한결같은 톤으로 쓰던 이 뜨겁고 관능적(싫으세요? 싫다면 아마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일 꺼예요. 이미 상실한 사람은 이렇게 거리낌없이 추구할 수도 있답니다)인 편지를 받던 북미 작가 넬슨 올그런, 그는 이 여인에게 보내었던 자신의 많은 편지를 출판 금지시키고 욕을 퍼부으며 발로 차버렸답니다. 그녀는 싸르뜨르의 惑星 같은 존재이면서도, 다른 애인을 중요하고 정열적인 대상이자 부차적인 대용품으로 이용한 까닭입니다.
우리는 때로 편지를 쓰기 위해 상대를 필요로 하고, 때로 사랑을 하기 위해 사람을 구하는 것은 아닐까요? 아마 그 편지나 사랑은 자신을 위한 애무의 언어, 그리고 손길인지 모르겠어요. 받고싶은 편지와 사랑에 대한 갈망이 쓰고싶고 주고싶게 하는 것은 아니냐구요. 자기 자신을 향한 끝없는 고백과 갈구의 몸짓이 사차원의 공간을 치고 흩어집니다.
사랑, 누군가에게 빼앗기지 않을 사랑은 어쩌면 이미 다른 이에게 소유된 사랑일까요? 오직 쟁취할 과정만이 남아있는, 아니 나의 뜨락에 들여 놀 수 없는 저 유리벽 너머의 사랑이기에 더 안타깝고 고귀하게 느껴지는 이. 상처 입은 영웅의 narcissism을 부축해 줄 흑기사. 닫힌 공간을 지나 소리 없이 돌아오며 오직 빛으로 비취 주는 거울 같은 사람. 세상에 없는 존재를 그리워함이 사랑이라면...
칠흑 같은 밤에 비행기를 타고 혹은 배를 타고 여행하며 느끼는 광활한 우주 속의 외로움, 내가 나에게 띄우는 글을 생각해보지 않는 사람은 없겠지요. 다행스레 나를 나보다 더 잘 알아줄 한 사람이 있다면 수첩에 조금 메모라도 남기겠지요. 띄울 수 없는 것이라며 잘게 찢어 검은 바다에, 검은 허공에 뿌리고 싶겠지요. 검은 공간에 쏘는 인터넷 편지처럼...
작년 여름 북경에 가면서 나는 한 통의 편지를 준비했답니다. 소흘이 해서 멀어지기만 한 남편에게 남은 시간에 대한 약속과 다짐을 나누고, 20년 결혼 생활에 대한 자책과 평가를 담아 사과하는 글이었습니다. 왜 떠나면서 주지 않고 그 비싼 호텔 펙스를 이용했느냐면 좀 그러고 싶어서였답니다. 십 년 전에 그가 북경에서 사다준 비취로 만든 반지를 고향 구경 시킨다고 끼고 가서 말이죠. 펄 벅의 '북경에서 온 편지'를 좀 차용하면서 말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장치를 한 셈이지요. 그가 얼마만큼 감동했는지는 말 안 하렵니다.
지난 주 수요일 밤 서울역 역사 내에서 두어 시간 동안 탈 밤 기차를 기다리며 배회해봤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쁘고 고단한 표정으로 오가는 곳, 쉴 의자를 차지하려는 욕심과 구경되며 구경하는 무관심으로 위장된 표정의 두께가 지켜지는 곳, 밝은 조명인데도 군상들의 움직임은 무겁고 지쳐있었습니다. 그들의 가슴마다 표현 못할 사연이 무겁게 담겨있는 것 같았지요. 어쩌면 내가 쓸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고, 쓸 말과 쓸 곳이 있다는 것은 더 큰 행복이기에, 한쪽 구석에 있는 인터넷에서 멜을 열어보려니 잘 안되더군요.
명애님, 나는 영화를 본 게 별로 없어서 정말 쓸 수가 없네요. 더한 죄책감은 내가 '책 읽어 주는 남자'조차 읽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 때 바로 도서관에 올라갔다가 못 찾고 아직도 못 구하고 있답니다. 그 대신 가져온 김화영 교수님의 산문집에 이런 이야기가 있더군요. 이 분이 군 시절 어쩌다 편지 대필과 대독의 일을 맡았답니다. 그 때 만난 잊혀지지 않는 편지 한 통, -백지 위에 손가락을 펴서 짚은 채 각 손가락의 윤곽을 따라 연필로 서투르게 줄을 그은 손의 그림과 그 곁의 "저의 손이어요, 만져주어요" 라고 삐뚤삐뚤 쓰여진 애틋한 글 한 줄의 사랑이었답니다.
<편지는 부재 속으로 찾아드는 침묵의 목소리다. 편지는 길어져도 수다스럽지 않아 좋다. 그리고 그리운 이의 손길이 스치고 지나간 그 肉筆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그리움을 더욱 간절하게 만든다. 재치, 혹은 순정이 가득히 고인 그 종이와 글씨들은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우리의 서랍 속에 귀중하게 간직되어 있다.> 고 김교수님은 쓰고 있습니다. 우리의 서랍, 혹은 뇌수에 적힌 편지글을 보낸 사람을 문득 생각나게 하는 글입니다.
'00.5.17
편지를 많이 쓰기로 다짐하는 푸른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