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만취한 나는 파출소에서 약간의 난동을 피운다. 찾아온 친구 놈 덕분에 집으로 가는 길, 오늘은 딸의 생일이다. 예쁜 천사의 날개, 생일 선물도 샀다. 그런데...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하고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돌연 사라졌다.
독방에 멜로디가 울리면 가스가 나온다. 체첸 인질들에게 쓰던 윌리엄 가스인가... 잠이 온다. 그리곤 누군가가 머리를 깎아주고 옷도 갈아 입혀 논다. 내 이름 오대수는 <오늘만 대충 수습하자>의 약자이다. 마침 티비에서는 20대 가장 주부의 피살 소식과 그의 살인 용의자로 남편 오대수가 떠오른다. 익숙한 흔적이 거기 남아있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은 배달된 군만두. 3년이 지나자 주름도 친근해지는 얼굴이 되었다. 혈관을 돌아다니다 피부를 뚫고 나오는 개미, 개미가 피부 위를 기어다니는 환각은 외로운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이라도 겪는 일이란다. 事必歸正이라는 스프링 노트에 낱낱이 써본다. 기록은 누군가를 괴롭히고 상처 입힌 일을 적어두는 악행의 자서전이다.
고독한 사람에게 역시 <티비는 시계이자 달력이고 학교이자 집이다. 교회이며 친구이자 애인이다.> 허지만 우리 애인의 노래 민혜경의 <보고싶은 얼굴>은 너무 짧다. 티비 속에서 성수대교가 붕괴되고...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도록 14년이 흐른다.
<누가 나를 가두었는가?> 그보다 나의 탈출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젓가락으로 조금씩 파낸 시멘트 구멍으로? 아니 소디움 바비튜레이트라는 최면유도제 덕분에? 아무튼 새로운 생활에서 만난 미도 일식의 사시미 공주와 그의 채팅 파트너 에버그린, 나는 어느새 괴물 몬스터, 아니 저 보물섬의 몬테크리스티 백작이 되어있다.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잠언 6:5 > 감금자를 찾아서, 아니 그의 하수인을 찾아서 벤치로 치아를 하나씩 뽑는 테러를 감행한다. 그러나 더 넓은 감옥에서의 생활도 행복하지는 않다. 나를 15년이나 가둔 자가 누구냐? 왜냐? 복수심만큼 심심하고 외로운데 잘 드는 처방도 없다.
<명심하라, 모래알이든 바윗덩이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다.> 작은 죄라고 그저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뜻밖에 커다란 댓가를 치르고도 사면되지 못할 수도 있다. 비발디의 사계가 흐르는 처절한 테러의 장면. 사람은 상상력으로 비겁해지는 거야. 상상하지마, 그럼 좇나 용감해질 수 있어.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는 다 죽여 줄테야.> 그렇다면 지금 사랑하는 여자 미도의 목숨은? 복수심만큼 건강에 좋은 것은 없어. 맞아, 15년간의 상실감도, 처자식을 잃은 고통도 복수심으로 다 잊을 수 있다. 그러나 복수가 다 이루어지면 고통이 다시 찾아올걸...
<잠도 안 와요, 고독해서...> 부모를 잃고 미국으로 입양되어 간 적도 있던 미도. 양부모가 모두 의사였다는 오대수의 딸, 엄청난 부자였던 상록고등학교 동창생 이우진. 그리고 그의 누이 이수아. 빨간 자전거의 차임이 낭랑하게 울리는 시골 고등학교 교정에서 모든 線들은 만나고 헤어진다.
<앞날을 걱정하지 말라, 상상하지도 말라> 미도는 벌써 오대수를 사랑하게 된 걸까? 이유를 알아내었으니 다 끝난 것일까? 단지 말 한마디 때문에 당한 형벌이라기엔 너무 무겁다. 아니 복수심은 이제 성격이 되었어. 세상 어디에도 흔적이 없도록 너를 씹어 먹어버릴 꺼야.
<문제를 풀면 찾아와요. 채점해 줄게.> 그가 사는 곳은 어디지? 팬트 하우스, 높은 곳이라 했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는 유리의 성에서 그는 심장박동기를 가진 가슴으로 살고 있다. 리모컨으로 죽을 수도 있는 목숨이라고? 그는 이미 중요 장기는 모두 사라진 인공 인간이었다. 단지 복수의 계략만이 가득한 뇌로 살았을 뿐, 그래서 권총이 필요하다.
<내가 당신의 개, 똥개가 되겠어. 뭐든지 핥고...무슨 짓이든 하겠어.> 나는 개가 되었다. 그도 부족해서 죄를 지은 혀를 잘랐다. 만약 네 손이 죄를 범하거든 잘라 버리라. 네 눈이 범죄하거든 뽑아 버리라. 네 손과 눈이 없이 천국에 드는 것이 다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당신 안의 괴물 몬스터는 죽어버립니다. 한 걸음마다 일년씩 소멸되도록...> 아무리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라도 살 권리는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최면상태에서 암시를 걸어두고 각성상태에서 실행하는 것, 겨울 산 눈밭에서 괴물은 죽었다. 한 부분의 비밀을 끌어안고... 그러나 우리가 다 알다시피 언제나 비밀은 불완전하다.
2004.5.26
'사진과 映像房'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풀꽃 이야기 (0) | 2005.08.27 |
---|---|
[스크랩] 운현궁 (0) | 2005.08.27 |
[스크랩] Before Sunset - 2 <네가 만지면 난... (0) | 2005.08.27 |
[스크랩] <Before Sunset> - 열망을 감춘 몸짓 속의... (0) | 2005.08.27 |
[스크랩] c01 지금 DAUM 칼럼에서는 2 (0) | 2005.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