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기 절반의 경제성적 키워드 ‘생활경제고통지수’
하여간 여러 가지 거시경제 지표는 바닥을 기고 있고, 여러 가지 대외여건도 긍정적인 것은 별로 없는데, 그 정도에 기가 죽을 정권은 아닌가 보다. 그래서 나름대로 과연 지난 절반의 임기동안 경제성적을 한마디로 표현하는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필자의 눈길을 끄는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지난 23일자 문화일보 보도에 따르면 가계가 실생활에서 직접 느끼는 경제적 고통의 크기를 나타내는 생활경제고통지수가 올해 2/4분기 중 같은 분기 기준으로 4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기사이다.
생활경제고통지수는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경제적 고통을 표현하는 수치로 활용되던 경제고통지수(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을 합한 것)가 실제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국내의 LG경제연구원이 ‘생활물가상승률’과 ‘체감실업률’로 항목을 구성하고 둘을 합산해 산출한 지수이다.
통계청과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 2/4분기 생활물가상승률은 4.5%, 체감실업률은 6.5%로 생활경제고통지수는 11.0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01년 2/4분기(12.9)이후 4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생활경제고통지수는 2/4분기 기준으로2002년과 2003년에는 각각 8.3, 9.2에 그쳤지만 내수부진이 심화된 2004년 10.9로 올라간 뒤 올해 들어서도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생활물가상승률은 일반 소비자와 직접 관련이 있는 항목으로 구성돼서 이른바 ‘장바구니 물가’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지난해 4.6%에서 올해는 4.5%로 상승세가 주춤했지만 불완전 고용자를 포함하는 체감실업률은 2003년 이후 다시 상승하고 있다. 결국 국민들이 느끼는 경제적 고통의 상당부분은 고용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하겠다. 아마 이 생활경제고통지수만큼 현 정부의 경제성적을 잘 보여주는 수치는 없을 듯 하다.
◆ 부동산, 잘못된 인식과 실패한 정책에 대한 ‘시장의 복수’
일반 국민들을 힘겹게 만든 또 하나의 요인은 부동산이다. 부동산가격 폭등은 아마 이 정부의 대표적인 경제실정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래서 ‘헌법보다 바꾸기 어려운’ 부동산대책을 만들겠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세금폭격을 가해 이득을 보는 계층을 만들어 이들로 하여금 파수꾼 노릇을 하게 만들겠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념이나 과거사 문제로 국민을 분열시키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부동산 가지고도 편가르기를 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의 폭등 과정을 반추해보면 현정부의 편협한 경제시각과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2003년 2월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오를 조짐을 보이자 많은 전문가들과 언론은 수요공급의 법칙에 맞춰 대책을 수립할 것을 조언했다. 그러나 ‘시장’이라고 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면서 단호히 거부하더니 수도이전이다, 무슨 무슨 프로젝트다 하면서 거꾸로 정부가 앞장서서 전 국토를 투기장화 해버렸다. 그러고서는 이제 와서 비싼 집을 갖고 있거나 두 채를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도둑놈 취급을 하고 있다.
물론 부동산 값이 오를 여건은 이전 정부때부터 조성되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을 다스리고 해결하는 것은 정권을 잡은 현정부의 책임 아닌가. 그렇게 본다면 정부 스스로 저지른 자기 잘못부터 시인하고 바로 잡는게 시급한데 “정책은 잘 했는데 말 뜻이 일부 잘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는 식의 생뚱맞은 소리나 하고 있다. 이런 잘못된 인식과 실패한 정책의 결과는 무엇일까? 상상을 초월한 부동산 가격 폭등이다. 시장원리를 따르지 않을 때 시장이 벌을 내리는 이른바 ‘시장의 복수’이다. 그런데 복수는 잘못한 사람한테 가야 되는데 엉뚱한 국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으니 이건 정말 비극이다. 결국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다는 참여정부의 슬로건과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면...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병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진단이 거꾸로 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경제의 양극화 현상이 지금의 경기침체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 반대이다. 경기침체와 실업이 양극화를 불러온 것이다. 인과관계에 대한 제대로 된 생각이 없이 어떻게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있을까.
이런 류의 잘못된 인식은 하나 둘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현정부의 실세들은 참여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에 효과적으로 대처해 왔으며” “경제 체질과 미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정공법으로 대처해 왔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경제에 드리워진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성장잠재력의 훼손과 미래 경쟁력 위기라는 사실을 그들만 빼고는 모두 다 안다. 국민들은 본능적으로 앞으로 내 직장이 사라질 것인지, 내가 내는 연금을 나중에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인지, 내 자식은 나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인지를 판단한다.
◆도대체 왜 그럴까?
본말이 전도된 이런 식의 사유체계를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들의 생각은 무엇일까 의문이 든다. 과연 이들이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것일까 라는 의문도 든다. 물론 국내에 아직도 사회주의를 꿈꾸는 반동좌파가 있기는 하지만 현재의 집권세력이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전면 부정하는 사람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면 도대체 왜 이런 식의 현실인식과 정책이 나오는 것일까. 아마도 그들의 인식이 70-80년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을 독재, 매판자본, 종속, 착취 이런 단어와 관념으로 재단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임기 절반동안 경제는 과연 괜찮아질까? 글쎄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겠지만 본격적인 경기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결국 국민들의 삶은 계속 고단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쩌랴. 취업 못하는 건 능력없는 본인 탓이고 복지가 확대되지 않는 건 멍청한 유권자 탓이니 더 이상 현 정부에 기대할 것은 없어 보인다.
오로지 기대할 것은 밥그릇이나 깨지 말라는 것이다. 하긴 카드로 빚내 장만한 전기밥솥을 코드를 잘못 끼워 태워 먹었으니 이미 밥그릇은 깨진 건가? 이 대목에서 1992년 미국 대통령선거전에서 민주당 클린턴 후보 진영이 현직 대통령이던 공화당 부시 후보측을 한방에 보내버린 말이 생각난다.
“문제는 경제야, 이 멍청아(It's the economy, stupid).”
※ 이 글은 ‘시사웹진 뉴라이트’(www.new-right.com)의 양해를 구해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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