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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는 오는 10월 22일이면 1,359번째 생일을 맞이합니다. 신라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 큰스님이 창건하였습니다. 당시 신라의 서라벌에는 한집 건너 절이라고 할만큼 절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불교가 크게
발전하기도 하였지만 아무 절에서나 수계를 하여 스님들의 계율이 지켜지지 않았답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한 신라 조정에서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자장스님을 국통으로 삼아 승려들의 규범을 주관하도록 하였습니다. 자장스님은 통도사를 창건하고 당나라에서 가져 온 부처님의
사리를 금강계단에 모신 후 수계장소로 삼았습니다. 또한 겨울과 봄에는 시험을 실시하였고, 지방 사찰을 조사하여 승려의 잘못을 징계하였습니다.
통도사가 나라안에서 으뜸가는 불보사찰이 된 것은 자장 큰 스님의 계율 정신이 살아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통도사 금강계단 옆에는 자장스님의 영정을 모신 해장보각이 있고 그 앞 솟을 삼문에 개산조당이란 편액이 있습니다.
해장보각은 본래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나 담장은 없어지고 대문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통도사 개산조사인 자장스님을 상징하는 개산조당은 단순한
문이 아닌 통도사의 상징이며 한국불교 계율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펜화가 김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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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가 주민등록번호가
있고 세금도 낸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흰눈 덮인 절벽 위의 푸른 소나무에는 강인함과 고고한 기품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이런 소나무를 정신적인 상징으로 삼았으니 애국가 2절 가사가 그것을 말해 줍니다.
이런 이유로 마을의 당산목으로 매년 제를 받는
소나무가 많습니다.
청도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는 1년에 한번 12말의 막걸리를 대접받으며, 경북 예천군 감천면의 ‘석송령’은
375000-0000248이라는 주민등록 번호가 있고 상속받은 토지에 재산 소득이 있어 매년 종합토지세를 내고 장학금까지
지급한답니다.
양산 통도사를 방문했던 분들은 입구 보행로의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길에서 깊은 인상을 간직하게 됩니다. 이 보행로
중간쯤에 몸을 숙여 절하는 모습의 소나무가 너무 예뻐 그려 보았습니다. 본래의 아름다움을 다 담지 못하였으니 불보사찰인 통도사도 볼 겸 직접
찾아가 만나 보십시오.
이 소나무와 통도사 설법전 옆 계곡의 누운 소나무를 그린 후 주지스님께 통도사 경내의 소나무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여 줄 것을 부탁을 드렸습니다.
요즈음 조경수로 소나무 한 그루라도 사 본 분이라면 소나무 값이 얼마나 비싼지 아실 것입니다.
세속적으로 따지는 것이 좀 그렇습니다만 통도사 경내의 소나무를 조경수로 환산한다면 엄청난 금액이 될 것입니다. 사실 엄청난 재산임에는 틀림이
없지요.
지금 이 그림의 소나무는 치료를 받아서 등줄기 패인 자리가 채워졌고 쇠파이프 기둥을 받쳐주었습니다. 앞으로 건강하게 잘
자랄 것입니다. 주지스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펜화가 김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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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일주문
통도사에 처음 오시는 분들은 문이 워낙 많아서 어떤 문이
일주문인지 헷갈리게 됩니다.
입구에서 제일 처음 만나는 큰문은 산문이고, 다음 부도전 앞에 있는 문은 총림문이라고 합니다.
성보박물관 앞을 지나자마자 만나는 문이 일주문이지요. 그 다음이 천왕문이고 절 중심부에 있는 것이 불이문입니다. 일주문과 천왕문, 불이문은
대웅전과 일직선상에 있습니다.
통도사 일주문은 불보사찰답게 기둥 4개를 세운 큰문입니다. 고려 충렬왕 31년(1305)에
건립하였는데 중건연대는 기록이 없습니다.
‘영축산 통도사’라는 편액은 대원군의 글씨로 획이 굵고 힘이 넘칩니다. ‘국지대찰’
‘불지종가’라고 쓴 기둥의 주련은 해강 김규진이 쓴 글씨로 화려하여 편액과 잘 어울립니다.
일주문 앞 오른쪽에 큼직한 고사목이
있습니다. 잘생긴 고목이었는데 늙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 바람에 주변의 고목들이 치료를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펜화가 김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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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불이문
통도사 불이문은 대웅전과 함께 잘 생긴 건물로
손꼽힙니다. 초창은 고려 충렬왕 31년(1305)이나 현 건물은 언제 중건 되었는지 기록이 없습니다.
세부 수법으로 보아 조선
중기 이후에 중건된 것으로 보입니다. 중앙의 대들보를 코끼리와 호랑이가 이마로 떠받치고 있으며, 대들보 위에 두터운 솟을 합장재를 삼각형으로
짜서 그 위에 장혀를 걸치고 도리를 얹어 서까래를 받치도록 하였습니다. 보기 드문 건축양식입니다. ‘불이문’ 편액은 송나라 미불의
글씨이며 ‘원종제일대가람’은 일주문에 걸렸던 것입니다.
불이문은 통도사 중심 통로 중 가장 경사가 심한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불이문 기단을 기막히게 조정하여 경사가 적게 보이게 하였습니다. 그대로 지었다면 현재 건물보다 50cm는 더 높았을 것입니다. 먼저 대웅전
쪽으로 수로를 내면서 30cm 정도 경사를 완화 시켰고, 비탈에 맞추어 동쪽기단을 북쪽보다 20cm쯤 낮게 하여 층계의 높이를 낮추었습니다.
물론 기둥의 길이를 조정하여 지붕은 수평을 맞추었습니다. 주춧돌도 수평이 맞지를 않습니다.
이런 건축방식은 통도사의 대웅전,
대광명전, 원통방 등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통도사가 서에서 동으로 경사진 터에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경사진 지형에서 건물의 기단을 완전한
수평으로 만들면 기단이 모두 한쪽으로 오뚝오뚝해 보이는 것을 완화시켜주는 고급건축기법입니다. 서양건축에서는 찾아볼 수 없답니다.
자연친화적인 조선 건축의 특성이지요.
펜화가 김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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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돌산도를 지나 향일암으로 가는 해안도로는 남해 갯마을의 정취가
담겨있는 좋은 드라이브 코스입니다. 바다를 끼고 도는 길가에는 갈대와 해송이 무리를 지어 길손을 반기고, 푸른 바다에는 홍합과 미역을 기르는
양식장의 흰 부표들이 바둑돌처럼 줄을 맞추어 점점이 떠 있습니다.
임포마을에서 향일암으로 오르는 길은 자동차 도로와 보행로 두
가지가 있는데 보행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암벽 사이 길을 지날 때 이르게 핀 붉은 동백꽃을
보며 바닷가 절벽 길을 올라가는 재미가 이만 저만이 아니거든요. 향일암에는 고목으로 자란 동백이 많은데 시도 때도 없이 꽃을 피워 방문객을
즐겁게 합니다.
향일암은 신라 선덕여왕 8년(659) 원효 대사가 창건하여 원통암으로 불렀으나 고려 제4대 광종 9년(958)
윤필대사가 금오암으로 바꾸었답니다. 한때는 영구암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해돋이로 유명한 향일암은 남해 일출의 명소로 1월 1일
새벽이 되면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향일암 관음전에 아름다운 자태의 해수관세음보살상이 눈길을 끕니다. 향일암은
관음도량으로도 손꼽아 줍니다. 펜화가/여수향일암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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