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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천사
삼천사를 처음 찾았을 때 “이렇게
험한 골짜기에 어떻게 이런 절을 지었을까?”하고 놀랐습니다. 북한산 진관외동의 험하고 좁은 골짜기 이곳 저곳 축대를 쌓아 지은 법당과 요사채는
힘들게 지은 티가 배어있습니다.
삼천사에는 본래 집도 절도 없이 마애불 한 분만 계셨습니다. 통일신라 문무왕(660년)때 창건된
암자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오랜 동안 혼자 사셨답니다..
마애불은 조각의 깊이가 낮아 선묘인 듯 보이지만 얼굴은 도톰하게 볼륨을
주어서 햇빛의 움직임과 보는 위치에 따라 표정이 달라집니다. 사람의 마음에 맞추어 여러 가지 표정으로 법문을 전하고 계시는가 봅니다. 몸 전체의
비례가 좋고 조형미가 뛰어난 불상입니다. 보물 제657호인데 머리 위로 물길을 돌린 홈이 있고, 보호각을 세우려고 암벽에 기둥을 박았던 자리가
있습니다.
북한산의 강한 기운이 넘쳐나는 곳에 있어서 절을 새로 지을 때 어려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큰 크레인에도 들리지 않던
바위를 제를 지내고 나서야 들어낼 수 있었다는 등 공사 때 의 비화가 많답니다. 그래서 산령각의 기도가 효험이 있다하여 많은 분들이
찾아옵니다. 삼천사에서는 노인을 위한 요양원, 네 곳의 어린이집, 노숙자 쉼터 등을 직접 경영하며 시립 노인 복지관, 청소년 독서실을
운영하는 등 베푸는 일이 많습니다. 많은 신도들이 그 점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펜화가 김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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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극락암 1천m가 넘는 장대한 연봉이 날개를 펼친 독수리와
닮았다는 영축산 기슭에 자리잡은 극락암의 대나무 밭과 소나무 숲이 영축산과 이룬 조화는 보는 이에게 감탄을 자아냅니다.
극락영지
위에 놓인 무지개다리와 영월루의 조화는 극락선원의 선풍을 크게 일으킨 경봉스님의 안목을 짐작케 합니다. 영월루 좌측 여여문의 편액글자는
경봉스님의 소문난 서예솜씨를 보여줍니다.
스님이 조실로 계실 때 초하루 법회 때면 늘어선 차량 행렬이 통도사 산문까지 십여리를
넘었다고 합니다. 스님이 세운 호국선원의 선풍은 국내 여러 선원의 모범으로 손꼽습니다.
경남 양산 통도사의 암자인 극락암은 뛰어난
명당터로서 큰 스님 세 명이 나온다고 하는데 경봉스님 이후 남은 두 자리 때문에 하안거나 동안거 때가 되면 많은 스님들이 한소식 하려고
몰려든답니다.
알아주는 선방답게 참선수행에만 전념을 하여서인지 다리 위쪽 나무들이 마구 자라 누각과 법당이 보이지 않기에 적당히
줄여서 그렸습니다. 펜화가 이래서 재미있습니다. 펜화가 김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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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불총림
백양사의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밖을 내다보니 묘하게 생긴 소나무가 보였습니다. 중간 부분이 꺾이어 내려오다가 다시 위로 자라서 ‘Z’자 모양이
되었습니다. 범종각과 어울려 특이한 구도가 잡히기에 화폭에 옮기어 스님들이 그리는 선화(禪畵)를 흉내 내어 보았는데 비슷이나 한지
모르겠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번개표 소나무’라는 분도 있으니 애시당초 선화로 인정 받기는 글렀나 봅니다.
재미있는 것은
백양사 스님 중에서도 이 그림을 보고 “우리절에 이런 소나무가 있나요?“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백양사 범종각은 2층 누각이어서
‘범종루’라 불러야 할텐데 단층 건물이었던 옛 이름을 그대로 쓰는가 봅니다.
백암산 학바위에 낙조가 걸리고 범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백암산 골짜기는 사바세계와 불국토의 구분이 없어지고 부처와 내가 따로 없는 불이(不二)의 세계가 됩니다. 펜화가 김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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