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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점보 조종실에서
지구일주 - 2천의 계기(計器)속에 갇힌 고독 세계 최강, 최신의 대한항공 747 SUD 조종실에 동승, 태평양·미국대륙·대서양·북극을 횡단한 10일간의 지구일주. 3만 7천㎞의 천상(天上) 여정에서 지도와 레이더와 맨눈으로 입체 관광한, 좁아진 세상. 숨막히는 이착륙과 조종실의 24시를 소개한다. 막장 같은 조종실 기름과 화물과 승객 무게를 합쳐 3백55t인 보잉 747SUD는 괴조(怪鳥)처럼 김포공항에 앉아 있었다. 기수(機首)부분은 새 주둥이와 흡사하다. 새의 눈에 해당하는 곳에 안경 모양의 창이 나 있다. 그곳이 조종실이다. 나는 조종실에 들어섰을 때 탄광의 막장을 연상했다. 동굴의 끝과 비슷한 밀폐공간의 벽면과 천장엔 수천 개나 될 것 같은 계기판, 표시등, 스위치, 손잡이, 숫자판 따위가 빽빽히 박혀 있었다. 차가운 기계의 눈망울들이 나를 질리게 했다. 조종실은 좁다. 두 평 남짓할까. 앞에 두 개의 조종간이 있고 그 정면엔 좌우 대칭으로 계기판, 스위치가 똑같이 배열되어 있다. 왼쪽이 기장, 오른쪽이 부기장 자리다. 자리를 바꿔 앉을 필요 없이 어느 쪽에서도 조종을 할 수 있다. 부기장 뒷자리가 항공기관사 차지. 그의 앞, 즉 오른쪽 벽면을 따라 엔진, 전기계통의 계기판이 뒤덮고 있었다. 기장 뒤로 두 의자가 비어 있었다. 나는 기장 바로 뒤편 의자에 앉았다. 맹동섭(孟東燮)기장과 부기장, 항공기관사는 「기계적으로」 분주했다. 컴퓨터 비행계획서와 대조하며 관성항법장치(INS)에 항로상의 여러 통과 위치를 입력하고, 입력된 숫자를 서로 체크하는 것이 기장과 부기장의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입력된 항로전보대로 INS는 3백여 명이 탄 점보를 허공으로 끌고 갈 것이다. 숫자판을 두드리는 조종사의 손가락 끝은 건물도면을 그리는 설계사의 손이다. 이 점보는 그렇게 설계된 항로를 따라 로스앤젤레스까지 자동으로 날아간다. 점보 가운데서도 최신형인 747SUD는 가장 개량된 INS를 달고 있었다. ANS라고 불리는 이 관성 항법장치엔 일일이 통과점을 입력하지 않고, 통과점들이 미리 찍혀 있는 항로정보 디스크를 집어넣으면 된다. 숫자의 입력 착오에 의한 사고를 막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세 승무원은 계기 점검에 들어갔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서로 「콜 아웃」을 하고 복창하면서 계기작동상태를 체크해 갔다. 그 사이 손님을 태우고 있는 객실 쪽에서 뻔질나게 걸려오는 전화가 뿌우뿌우 소리를 내고, 계기등이 점멸하며, 계기의 신호음이 뚜루룩, 빵, 뿌우 다양하게 울었다. 출발 직전의 기장 브리핑은 승무원들이 수백 번 들어온 것으로 이륙 절차와 계기 작동 및 점검에 대한 똑같은 말의 되풀이다. 그래도 분위기는 엄숙했다. 孟기장은 하대하는 말로써 차분하면서도 권위 있게 부기장과 기관사에게 이륙 절차를 설명한 뒤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내가 혹시 잘못 지시할지 모르니, 그때는 주저하지 말고 지적해 주게』 기장의 권위에 눌려, 부기장이나 기관사가 기장이 잘못하는 걸 뻔히 보면서도 가만히 있는 바람에 대 참사가 난 경우는 세계 항공기 사고의 원인분석에서 숱하게 발견되고 있다. 그래서 조종실 내의 민주적 분위기와 원활한 대화가 사고 예방의 바탕이라 한다. 3백55t의 이륙 안경을 쓰고 늘 잔잔한 미소를 띠어 교수 같은 맹(孟)기장은, 점보를 32번 쪽 활주로의 출발선에 갖다 대어놓고 활주 전의 마지막 브리핑을 하는 자리에서도 『이륙포기를 해야 할 사태가 생기면 속도가 붙기 전에 즉각 알려 달라』고 당부했다. 3천m가 넘는 활주로가 우리 앞으로 쭉 뻗어 있었다. 85년 10월23일 오후 5시26분. 활주로의 중앙선에 기수를 일치시킨 점보기 조종실 안엔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활주로의 저쪽 끝은 흐린 날씨에 부옇게 가려져 있었다. 이윽고 기장은 엔진 4개의 파워를 올리기 시작했다. 쇠에하는 엔진소리가 급격하게 높아져 갔다. 孟기장은 밟고 있던 브레이크를 놓았다. 점보는 활주를 시작했다. 기관사는 큰 소리로 읽어 갔다. 『40, 50, 80…』 활주개시 31초 뒤 기관사는 『브이 원(V1)!』이라고 소리쳤다. 속도가 1백55노트, 즉 시속 2백87km에 달했다는 신호였다. 이 V1 속도가 나기 이전엔 이륙을 포기할 수 있다. 브레이크를 밟고 또 엔진을 전속 후진시켜서 비행기를 활주로 상에서 멈추게 할 수 있다. V1속도 이후엔 엔진이 한두 개 마비되더라도 일단 떴다가 도로 내려야 한다. 비상사태 때 이륙을 포기하느냐, 강행하느냐의 순간적 판단은 권투선수가 펀치를 내밀 듯 조건 반사적으로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조종사들은 피나는 반복훈련을 받는다. V1 9초 뒤 기관사는 『로테이트(Rotate)!』라고 고함쳤다. 孟기장은 거의 동시에 조종간을 잡아당겼다. 3백55t의 기체는 스르르 땅을 떠나갔다. 이륙속도는 시속 3백km. 점보는 하늘에 정비례 선을 그리듯 비스듬히 상승해 갔다. 구름이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다가 스쳐지나갔다. 이륙 2분 뒤 점보는 벌써 구름 층을 뚫고 새파란 창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이륙 4분쯤 뒤 고도가 6천 피트(약 1천9백m)에 이르자 기장은 항법스위치를 수동에서 INS로 돌렸다. 비행기의 조종을 INS에 인계한 것이었다. 핸드백 만한 3대의 INS는 이제부터 점보를 강릉→나고야→일본 동해안→태평양→로스앤젤레스 코스로 끌고 갈 것이다. 제주도…백두산을 다섯 번 왕복하는 거리다. 점보가 순항자세에 들어가자 비로소 조종실의 긴장도 약간 풀렸다. 孟기장은 나에게 설명을 해 주는 여유를 보였다. 이륙 후 3분, 착륙 전 8분대에 사고가 가장 많다고 해서 「마의 11분」으로 불린다. 이 시간대를 벗어난 안도감에서 나는 꽉 쥔 손바닥의 땀을 바지에 문질렀다. 초속 3백m로 달리는 세계최강 불가능이란 없어 보이는 현대기계 문명 속에서 「사람이 개를 무는」류의 비정상만 쫓아다니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 온 나에게도 점보의 이륙만은 언제나 경이(驚異)다. 둔중한 쇳덩어리가 사뿐히 활주로를 떠나가는 장면을 보면 숨이 막힌다. 내가 탄 747SUD(Stretched Upper Deck)는 객실 2층을 뒤로 확장하여 객실면적을 10%쯤 늘린 점보다. 대한항공이 3년 전에 1억 달러를 주고 보잉사로부터 사들였다. 이 SUD형은 85년 10월 현재 세계에서 29대가 운항 중일뿐인 최신형이다. 지난여름까지만 해도 747SUD는 민간, 군용기를 불문하고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무겁고, 가장 힘센 비행기였다. 지난여름 파리의 에어 쇼에 소련의 군용 화물기 An124가 선을 보였다. An124는 최대이륙중량이 SUD보다도 28t이 더 무거운 4백5t으로써 SUD를 누르고 세계최대의 비행기가 됐다. 엔진추진력에선 SUD가 An124보다 1만2천4백 파운드가 더 센 21만9천 파운드이기 때문에 여전히 세계최강이다. 내가 탄 SUD는 기체만의 무게가 약 1백73t이다. 여기에 기름 1백40t과 화물, 승객을 더해 뜰 때 무게는 그 두 배나 됐다. 자기 몸무게와 같은 짐을 지고 허공으로 비약, 음속에 육박하는 속도로 달리려면 대단한 추진력이 필요하다. 점보는 이륙할 때 최대추진력을 낸다. 이때는 약 10만 마력이 생긴다. 20만t 유조선의 추진력이 3만 마력 정도다. 힘든 물체의 질량에 정비례하고, 속도에 대해선 그 제곱에 비례한다. 그래서 SUD는 덩치는 탱커보다 작아도 힘은 더 센 것이다. SUD는 이륙 17분쯤 지나 강릉 상공을 통과, 동해로 들어갔다. 얼마 뒤 기장석 발 밑에 있는 손바닥만한 기상 레이다에는 일본의 서해안이 새하얀 선으로 나타났다. 부기장은 통과 점을 지날 때마다 지상관제소에 보고하느라고 바빴다. 나고야 상공을 지날 땐 완전한 어둠이었다. 도시계획이 잘 된 이 도시의 바둑판 같은 구획이 전등의 배열로 일목요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김포를 떠난 지 1시간만에 점보는 어선들이 불야성을 이룬 일본의 동해, 즉 태평양 상으로 진출했다. 점보는 당분간 고도 약 9천5백m를 유지하며 날아갈 것이다. 점보의 속도는 계기상으로는 5백 노트였다(항공에선 항해 때처럼 거리의 단위를 해리로 표시한다). 1백20…1백30노트의 등 바람이 밀어 주는 바람에 실제의 대지(對地)속도는 마하 0.9인 6백20노트(시속 1천1백50km)를 왔다갔다했다. 초속 70m라는 무지무지한 바람 대에 얹혀 날아가는 점보였지만, 정지한 것으로 착각할 만큼 요동이 적다. 孟기장은 「비행기처럼 섬세하면서도 굳센 물체도 없을 것이다』고 했다. 육상에선 별 볼일 없어 보이지만 일단 공중에 뜨면 그렇게 완강하게 보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1분도 연착 없는 INS의 기적 태평양상에 들어오니 스치는 비행기도 안 보이고, 어선의 불빛도 곧 사라졌다. 3면이 트인 조종실에서 쳐다보이는 별빛만이 유난히 가깝게 당겨져 있었다. 대양상의 절대고독을 깨는 것은 잡음에 섞여 들려오는 다른 비행기와 관제소 사이의 교신뿐이었다. 자연히 조종실에서도 여유가 생겼다. 孟기장은 자상하게 이것저것을 설명해 주었다. 나에겐 최고급의 비행 해설가였다. 무엇을 설명할 때 그는 꼭 자료를 보여 주었다. 애매한 것은 편람에서 확인하고 답했다. 무엇이든지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도록 훈련받은 조종사의 습관인 것 같았다. 조종사만큼 행동이 기계적이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되도록 반복 훈련을 많이 받는 직종은 우주비행사를 제외하고는 달리 없을 것이다. 몸놀림 하나하나 까지 규정에 따라 해야 하는 조종사의 직업행동은 일상생활이나 대화에도 영향을 준다. 원칙대로 하고, 거짓말 할 줄 모르는 이가 조종사들이다. 기장, 부기장, 항공기관사의 조종실 3인조는 일정기간의 승무 때마다 새로 조직된다. 6백 명도 넘는 대한항공의 조종실 승무원 가운데 이 자리의 3인이 다시 만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친면이 깊지 않은 사람끼리의 1회성 조(組)짜기는 서로가 규정대로, 사무적으로 일을 처리하도록 만드는 장점이 있다. 김포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가는 데는 모두 27개의 통과점을 지난다. 물론 좌표로만 표시되는, 안 보이는 통과점이다. 747SUD는 비행계획서의 시간표와 비교해서 단 1분도 틀리지 않고 정확히 이 통과점들을 지나고 있었다. 관성항법장치가 바람, 온도, 엔진추진력, 기체의 경사 등을 종합적으로 자동 조정하여 속도를 내게 함으로써 이런 기적을 창출하고 있었다. 조종사는 직접 조종은 INS에 맡기고, 그 INS의 작동상황을 지켜보는 감독관 역할을 하고 있었다. 10일간의 지구일주 초속 3백m로 날고 있는 점보 안에서 나는 속도와 시간의 의미를 되씹어 보았다. SUD가 10시간만에 가로지르는 이 태평양을 마젤란은 1520년에 약 1백일간의 항해로 횡단할 수 있었다. 거의 2백40분의 1로 축시(縮時)가 된 시간 속을 점보는 날고 있었다. 지구가 좁아졌다고 하는 것은 이런 축시법에 의한 축지(縮地)를 뜻한다. 시간의 단축과 공간의 단축은 같은 개념이다. 상징적으로 이야기하면 SUD를 탄 나는 마젤란 시대 사람보다도 2백40배나 되는 넓은 활동무대를 갖고 2백40배나 되는 많은 견문을 하고 있다. 그들의 2백40년 분을 나는 1년으로 살고 있다. 나는 엄청난 장수자인 것이다. 19세기말까지 서양의 연(年)평균 경제성장률은 0.2%였다. 지난 20여 년 간 한국은 그 40배나 되는 8% 이상의 연(年)평균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근대화의 길을 치달아왔다. 지난 20년을 산 한국인은 중, 근세 사람들이 8백년을 산 것과 맞먹는 변화를 경험한 셈이다. 그런 급변의 속도감을 나는 SUD의 조종실 안에서 실감하고 있었다. 마젤란의 선단이 세계를 일주하고 3년만에 스페인으로 돌아왔을 때 생존자는 출발 당시의 2백70명 가운데 18명 뿐 이었다. 마젤란도 필리핀에서 죽었다. 탐험가들의 이런 주검이 쌓이면서 지리상의 지식도 축적돼갔다. 그 덕분에 나는 지금 안락하게 태평양 위를 날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번 취재의 목적을 「지구가 좁아진 것을 실감해 보는 것」에 두었다. 그런 실감을 가장 진지하게 할 수 있는 곳은 항공여행의 대중화를 선도한 점보의 조종실일 것이다. 대한항공 측과 취재 코스를 협의할 때 나는 까다로운 조건들을 달았다. 즉, 최신형 점보를 타고, 세계 최장급의 항로를 날며, 열 손가락에 꼽히는 세계적 대공항을 경유하고, 여러 항공사의 비행기를 두루 경험하며, 빡빡한 시간표를 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확정된 코스는 김포공항→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뉴욕의 케네디 공항→스위스 취리히 공항→런던의 히드루 공항→파리의 드골 공항→알래스카의 앵커리지 공항→김포공항이었다. 로스앤젤레스, 케네디, 히드루 공항은 세계 10대 공항 안에 낀다. 9박10일간의 일정에 총 비행시간은 약 42시간, 비행거리는 약 3만7천km로 잡혔다. 적도를 따라 지구를 한 바퀴 돌면 약 4만km다. 1924년 미국육군 항공대의 비행기가 57회의 기착을 해가며 1백10일만에 지구를 처음으로 일주했다. 지난 57년엔 미국전략폭격기 B-52가 공중에서 재급유를 받으면서 45시간19분만에 무 착륙 지구일주를 했다. 지금까지도 이것이 가장 빠른 무 착륙 지구 일주로 기네스 북에 올라 있다. 2층은 식당, 침실, 도박장으로도 저녁 7시30분쯤(한국시간 기준) 스튜어디스가 식사쟁반을 갖고 조종실로 들어왔다. 孟기장은 날 보고 객실에 가서 대접 잘 받는 식사를 하라고 권했다. 우주공간의 야경을 눈앞에 둔 조종실의 식사만큼 분위기가 좋을 곳이 달리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세 승무원은 앉은 채로, 이어폰을 쓴 채 안스럽게 식사를 했다. 워낙 좁아서 따로 식탁이 있을 수도 없다. 조종실 의자는 레일에 얹혀 있어 약간씩 움직일 수는 있지만 의자를 돌릴 수는 없다. 조종실에서 포커를 한다는 것은 무리겠다. 우리 비행기로부터 2분쯤 뒤에 따라 오던 에어 프랑스가 우리한테 『언제 고도를 높이느냐』고 물어왔다. 에어 프랑스는 대한항공기보다 6백m가 낮은 고도 9천4백50m로 날고 있었다. SUD가 고도를 높이면 에어 프랑스는 SUD가 지금 날고 있는 1만50m로 올라설 생각이었다. 그러나 대한항공 점보는 아직 그럴 입장이 아니었다. 고도를 높이면 공기저항이 약해져 연료소모량이 줄어든다. 항공사의 원가 가운데 연료비는 약 3분의 1을 차지, 가장 비중이 높다. 그래서 조종사들은 최적 고도를 유지, 연료를 절약하려고 애쓴다. 우리 점보는 시간당 약 11t의 기름을 태우며 날고 있었다. 즉 시간당 11t씩 가벼워지고 있었다. 점보가 고도를 1만6백60m로 높인 것은 몸무게가 약 60t이나 줄어든 밤 11시께였다. 저녁 8시쯤 나는 잠시 1등석 내 자리로 돌아왔다. 교체기장 김의경(金義經)씨(52)의 옆자리에 앉았다. 김포…로스앤젤레스 구간은 10시간 이상 걸리므로 2개조의 조종사들이 중간에서 교대한다. 조종사는 10시간 이상 계속 근무할 수 없게끔 법으로 규정돼 있다. 공군전투 조종사 출신인 金씨는 비행시간 1만3천5백의 베테랑이다. 자신은 쥬스 류만 마시며 스튜어디스를 시켜 나에게 계속 술을 권하게 했다. 조종사들은 근무 시작 24시간 이내에는 술과 약물을 절대로 먹어선 안되게끔 규제되고 있다. 스튜어디스는 숨돌릴 틈도 없이 계속 먹을 것, 마실 것을 가져다주었다. 대한항공 서비스의 장기는 이런 풍성한 선심인 모양이었다. 1등석은 새마을호(기차)보다도 훨씬 넓어 앞뒤로 여유가 있다. 의자를 눕히고 담요를 뒤집어 쓴 채 발을 뻗었다. 잠을 청했으나 올 리가 없었다. 다른 점보는 1등 석이 2층에 있다. 2층을 확장한 SUD만은 2층을 「이그제큐티브 클라스」로 쓰고 1층에 앞에서부터 1등석, 플레스티지, 이코노미 클라스를 배치하고 있다. 점보의 특징인 2층은 항공사마다 용도가 다르다. 팬암은 한때 2층을 식당 칸으로 이용했었다. 필리핀 항공은 「스카이베드」로 불리는 침대 칸으로 쓰고 있다. 이착륙 때도 계속 누워 있을 수 있도록 벨트 장치가 붙어 있다. 런던 익스프레스 항공사는 올해부터 2층을 카지노 도박장으로 쓸 계획이란다. 태평양상 한 가운데의 불안 어떤 비행기의 등장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거나 인간생활의 양상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B29, B52, F86, F4등 유명한 전투기나 폭격기들은 큰 전쟁의 방향을 바꿨다. DC3, 보잉707, 보잉747 등 여객기들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켰다. 지난 70년 팬암이 처음으로 점보를 운항한 이후 이 거대한 여객기의 여행, 관광 분야나 인간의 활동범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5백 명까지 태울 수 있는 점보의 등장으로 항공요금은 오히려 싸졌고 해외여행의 수요를 폭발시켰다. 여행객이 많아지면서 호텔 등 관광 사업도 번창하게 됐다. 국제간의 사람 이동이 잦아짐으로써 문화의 전파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지구 가족」이란 말도 실감을 갖게 됐다. 지난 64년 전세계(소련제외)의 여객기 이용객 수는 약1억5천만 명이었으나 20년 뒤에는 그 6배로 늘어났다. 이런 대중화는 객실의 분위기도 바꿔놓았다. 흔들리는 좁은 기체 안에서 불안스럽게 바깥 구경을 하면서 가슴을 설레던 옛날의 비행문화는 사라졌다. 야간 비행·영화·스테레오 음악·호화판 음식 등으로 상징되는 점보문화가 보편화되면서 하늘을 난다는 느낌도 약해지고 있다. 객실 서비스의 원칙은 비행한다는 것을 승객들이 잊어먹도록 하는 데 있는 것 같다. 김포∼로스앤젤레스 구간의 중간지점(ETP=Equal Time Point)을 넘었을 때, 조종실 근무자들이 교대했다. EPT는 돌아갈 수 없는 점(The Point of No Return)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위치 이전에 고장이 생기면 김포로 돌아가야 하지만, 이 점을 지나서 문제가 발생하면 로스앤젤레스까지 강행군해야 한다. 북태평양 한가운데에 와 있는 점보의 기상 레이다는 그냥 맑기만 했다. 몇 시간을 달려도 섬 하나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유도전파를 발사하는 해상 또는 지상관제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점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대조해 볼 무선표지 시설도 없다. INS의 무오류성을 믿는 도리밖에. 수백 명의 생명과 1천억 원이 넘는 재산이 오로지 매달려 있는 관성항법장치(INS)의 상자 표시판은 스톱워치처럼 좌표 숫자를 끊임없이 바꿔 놓고 있었다. 비행기가 날아간다는 증거는 그것뿐인 듯했다. 미사일을 표적물로, 로키트를 달나라로 유도하는 것도 이 관성항법장치다. 20세기에 인간이 발명한 최고 걸작품의 하나일 것이다. 더구나 항공기에 부착된 INS는 아직 한번도 고장을 일으켰다는 보고가 없다. 인간의 입력실수는 있었지만. 그러나 무슨 일로 여기서 INS 3대가 몽땅 움직이지 않게 된다면? 그러면 찰스 린드버그 시대로 돌아가 나침반 비행을 해야 한다. 죽기 아니면 살기의 진땀나는 비행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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