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화마에 녹아내린 낙산사 동종 중 제작 내력 등을 기록한 명문(銘文) 부문. 조선 제8대 예종(睿宗)이 그의 아버지 세조(世祖)를 위해 보시(布施)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글은 김수온(金守溫)이 짓고 글씨는 정난종(鄭蘭宗)이 썼다.
공교롭게도 식목일에 강원도 양양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강풍을 타고 낙산사로 번졌다.
이불 급기야 산사의 종각을 불태우기도 했다. 원래 낙산사는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도량 중
하나로 신라 문무왕 11년(671년) 의상대사가 건립했다고 한다.
낙산사(洛山寺)
강원 양양군 오봉산(五峯山)에 있는 절. 3대 관음기도도량 중의 하나이며, 또한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유명하다. 671년(신라 문무왕 11) 의상(義湘)이 세웠다고 하며, 858년(헌안왕 2) 범일(梵日)의 중건(重建)을 비롯하여 몇 차례 중건을 거듭하였으나 6·25전쟁으로 소실되고 말았으며, 지금의 건물은 1953년에 다시 창건한 것이다.
이 절에는 조선 세조(世祖) 때 다시 세운 7층석탑을 비롯하여 원통보전(圓通寶殿)과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원장(垣墻) 및 홍예문(虹霓門) 등이 있다. 낙산사에 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의상이 관음보살을 만나보기 위하여 낙산사 동쪽 벼랑에서 27일 동안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바다에 투신하려 하였다.
이때 바닷가 굴속에서 희미하게 관음보살이 나타나 여의주(如意珠)와 수정염주(水晶念珠)를 건네주면서, “나의 전신(前身)은 볼 수 없으나 산 위로 수백 걸음 올라가면 두 그루의 대나무가 있을 터이니 그곳으로 가보라”는 말만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원통보전의 자리이다. 원통보전 내부에는 관음상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 관음상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량을
복구하고 이곳으로부터 약 8km 떨어진 설악산 관모봉 영혈사(靈穴寺)에서 옮겨 왔다는 관세음보살상이다. 제작 시기는 12세기 초로 추측되는데,
고려시대 문화의 극성기 양식을 나타낸 매우다운 관음상이다.
(인용처:동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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