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三國志]
진(晉)나라의 학자 진수(陳壽:233∼297)가 편찬한 것으로,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린다. 위서(魏書) 30권, 촉서(蜀書) 15권, 오서(吳書) 20권, 합계 65권으로 되어 있으나 표(表)나 지(志)는 포함되지 않았다.
위나라를 정통 왕조로 보고 위서에만 <제기(帝紀)>를 세우고, 촉서와 오서는 <열전(列傳)>의 체제를 취했으므로 후세의 사가(史家)들로부터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촉한(蜀漢)에서 벼슬을 하다가 촉한이 멸망한 뒤 위나라의 조(祚)를 이은 진나라로 가서 저작랑(著作郞)이 되었으므로 자연 위나라의 역사를 중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때문에 후에 촉한을 정통으로 한 사서(史書)도 나타났다. 그러나 찬술한 내용은 매우 근엄하고 간결하여 정사 중의 명저(名著)라 일컬어진다. 다만 기사(記事)가 간략하고 인용한 사료(史料)도 지나치게 절략(節略)하여 누락된 것이 많았으므로 남송(南宋) 429년에 문제(文帝)는 배송지(裵松之)에게 명하여 주(註)를 달게 하였다.
《삼국지》에 합각(合刻)되어 있는 배송지주(裵松之註:裵註)가 그것이다. 이 배송지의 주는 본문의 말뜻을 주해하기보다는 누락된 사실을 수록하는 데 힘을 기울여, 어환(魚)의 《위략(魏略)》을 비롯한 하후담(夏侯湛)의 《위서(魏書)》 이하 당시의 사서와 제가(諸家)의 계보(系譜) ·별전(別傳) ·문집(文集) 등 140여 종의 인용문이 기재되어 있다.
이 제서(諸書)는 그 후 태반이 산일(散逸)되었는데, 여기에 인용된 글들이 당시의 사실을 고증하는 데 귀중한 사료가 된다. 그 중에서도 어환의 《위략》은 특히 귀중한 사료가 많이 있어, 이것을 배송지가 인용한 주를 바탕으로 하고, 거기에 다른 일문(逸文)을 추가하여, 청(淸)나라 때 장붕일(張鵬一)이 《위략집본(魏略輯本)》 25권을 편찬하였다.
또한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는 부여(扶餘) ·고구려 ·동옥저(東沃沮) ·읍루(婁) ·예(濊)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왜인(倭人) 등의 전(傳)이 있어, 동방 민족에 관한 최고의 기록으로 동방의 고대사를 연구하는 데 유일한 사료가 된다.
《삼국지》에 관하여는 후세에 많은 참고서가 만들어졌으며, 그 중에서도 청나라 전대소(錢大昭)가 엮은 《삼국지변의(三國志辨疑)》 3권과 양장거(梁章鉅)의 《삼국지방증(三國志旁證)》 30권 및 항세준(杭世駿)의 《삼국지보주(三國志補注)》 등이 저명하다. 최근의 것으로 1957년 베이징[北京]의 고적출판사(古籍出版社)에서 발간된 노필(盧弼)의 《삼국지집해(三國志集解)》 65권, 보권(補卷) 2권이 《삼국지》의 해설서로는 가장 상세하고 완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용처: 동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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