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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會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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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28일 목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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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장래와 동북아 안보 |
(번역본) 한반도의 장래와 동북아 안보
李會昌(스탠포드 大學
후버연구소 발표)
머리말
국제관계에서 “地理는 宿命”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의 역사가 이 점을 잘
말해준다. 지난 한 세기를 되돌아보면 동북아 강대국들의 이해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 한반도는 이들 국가들의 세력다툼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場이었다. 이 기간동안 한반도의 주도권을 놓고 세 차례의 “熱戰”(1984~95의 중일전쟁 1904~05의 노일전쟁 그리고 1950~53의
6·25전쟁)과 한 차례의 “冷戰”이 치러졌다. 동북아 강대국들의 흥망성쇠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도 중국의 세력권에 속한 王朝에서 일본의
植民地로, 그리고 전 세계적인 냉전의 최첨단에 위치한 分斷國으로 또한 변천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굴욕을 겪어야 했던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로 自嘲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 동안 한반도 안팎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 한반도는 더 이상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좇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약소하고 고립된 곳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이룩한 한국은
동북아 지역의 주요한 행위자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동서냉전의 종식과 시장경제의 확산에 따라 동북아의 전략 환경도 그 어느 때보다 개선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동북아 강대국과 한반도 사이의 역학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근대 이후 처음으로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는
주변국들의 국익에 직접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새롭게 태동되는 동북아 질서의 성격과 방향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 글은
동북아의 안보환경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반도의 주요 현안들을 점검하고 이에 과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헤아려 보기 위한 것이다.
지역안보에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는 이슈는 다양하지만 다음 세 가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첫째는 당면한 북한 핵문제이며, 둘째는 북한의
불확실한 장래이며, 마지막으로 한미동맹의 지속가능성과 방향의 문제다.
북한 핵문제
지금 한반도는 10년 만에 다시 맞는
核危機의 한 가운데로 빠져들고 있다. 현재의 핵위기는 지난 1993~94년의 상황에 비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훨씬 심각하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핵개발이 10년 전에 비해 훨씬 진전되었다. 최근 북한은 자신들이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으며, 폐연료봉을 무기화 수준의 플루토늄으로
재처리하였다고 거듭 밝힌 바 있다. 이런 주장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북한의 핵보유는 이제 점차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반면
북한 핵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데 가장 중요한 한미공조는 과거에 비해 흔들리고 있다. 한미양국은 북한위협의 본질이나 이에 대처하는 방식에 관해
적지 않은 차이를 露呈(노정)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가 핵문제에 대한 양국의 대처능력을 저하시킴은 물론이다. 이러한 차이를 좁히기위한 노력이
있긴하나 아직은 修辭的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 10년 전과 다른 또 하나의 차이점은 핵문제를 다루는 북한정권의 의도 및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북한의 핵개발이 체제유지를 위한 협상수단으로서인지 아니면 핵보유 자체가 그 궁극적 목표인지에 관해서는 견해가 갈려있다. 하지만 북한
핵개발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든 핵무장국이 되겠다는 북한의 집념은 확고해 보인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해 볼 때, 지금 한반도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음이 분명하다. 북한의 핵 보유는 한반도의 군사적 균형을 파괴하고, 동북아의 안정을 근원적으로 위협할 뿐 아니라 전 세계적 핵
非擴散체제를 뒤흔들게 된다. 북한의 핵개발로 동북아에는 핵군비 경쟁이 뒤따를 가능성이 높고, 테러 집단에 핵물질이 넘어갈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이는 어느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문제이다. 북한의 핵 무장은 한반도나 동북아, 그리고 국제 안보의 관점에서 결코 容納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문제는 과연 어떻게 북한의 핵개발을 沮止(저지)할 것인가에 있다. 협상을 통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非核化를 달성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길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핵문제에 관해 북한이 보여온 행적은 협상의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또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요구할 철저한 現地검증을 북한이 받아들일 가능성도 희박하다. 한편 미국은 보상을 통해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무력사용이 代案이 되기는 어렵다. 이 경우 한반도나 동북아에 초래될 엄청난
파급효과를 감안하면 이는 결코 바람직한 선택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당분간 停滯(정체)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 북핵 6자회담만해도 1년이상 끌고 있지만 아직까지 별진전이 없다. 이와 같이 정체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이를 북한이 핵개발에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핵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加重시킬 것이다. 지금 한반도는 50년 전 한국전쟁이 끝난 이래로 가장 위험한 轉換期에
와 있다. 미국은 소위 불량국가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미국과 세계의 안보에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반면 북한정권은 핵무기야말로
자신들의 체제와 국제적 입지를 보장해주는 방편이라고 믿고 있다. 이렇게 상반된 두 시각에 不信과 誤判이 더해질 경우,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이가.
한국은 무엇보다도 먼저 북한의 핵 위협의 본질과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상당수의 한국민들이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걱정스럽다. 우리의 대북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핵문제의 해결에 두어야 한다. 더 나아가 북한 핵문제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를 보고 국제사회는 非核化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판단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둘째, 한국은 미국과 긴밀히 협의, 조율, 협력하여,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공동의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공동전략 없이는 현재의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미국은 대북협상에 있어 보다 신축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는 반면, 한국은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한미양국을 분열시키려는 북한의 집요한 전술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미 양국이 철저히 공조를 유지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정부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非核化 요구를 계속 거부할 경우 어떤 결과가 발생할 것인지에 대해 평양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불가피한 상황이 오면 단호하게 채찍을 들 준비도 해야 한다.
북한의 불확실한 미래와 한반도 통일
한반도가
당면하는 또 하나의 挑戰은 북한정권의 불확실한 미래에서 파생된다. 현재 한반도의 분단은 한국의 성공과 북한의 실패라는 대조적 상황이 심화됨에
따라 점차 지탱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한반도의 분단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분단의 종식은 한반도를 뛰어넘어 동북아
전체에 걸쳐 큰 파급효과를 초래할 것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미래의 충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對備와 주면국들과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북한의 장래에 관해서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지만, 대표적으로 다음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북한정권의 체제나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 없이 그럭저럭 버텨나가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한반도와 동북아의 긴장은 계속되는 등, 現狀에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는 북한의 현정권이 근본적 개혁을 단행하고 외부세계와도 본격적으로 교류하는 등, 소위 “軟着陸(soft
landing)”을 하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보환경은 크게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 번째는 북한체제의
崩壞(붕괴) 시나리오다. 이 경우, 군사적 충돌, 경제기반 瓦解, 대규모 난민 발생, 인도적 위기상황 대두 등, 정치·경제·사회 등 제반분야에서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붕괴 시나리오와 관련하여 한국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주변국들의 개입 가능성이다. 특히 북한에 자신들에 비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서거나 혼란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는 중국의 개입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의 개입은 여타 국가들의 반발을 초래하여 한 세기 전
한반도를 둘러싼 列强의 각축이 再演될 수도 있다. 또한 주변 강대국들이 60년 전 한반도 전체에 대해서 고려했듯이 북한에 대한 집단적 관리를
계획할 수도 있다(8·15 해방 후 연합국은 한반도에 대한 信託統治를 고려한 일이 있으며 당시 한국민은 이를 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변국의 개입은 분단을 영구화할 뿐 아니라 한반도를 다시 한번 동북아 강대국의 角逐場(각축장)으로 만드는 것으로 우리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평소 동북아 4강과 관계를 돈독히 하고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미동맹관계를 튼튼히 하는 것이야말로 북한 붕괴 시 주변국의 개입을 차단하고 평화적 통일을 실현하는데 관건임을 유념해야 한다. 위 세가지
시나리오 중 가장 바람직한 것은 “연착륙”이지만, 바람직하다고 해서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시나리오는 지도자가 개혁적으로
탈바꿈하고, 軍備統制에도 나서야 하며, 외부로부터 대규모 지원도 받아들이는 등, 개혁과 개방의 과정에서 현체제의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어
실현가능성은 낮다. 다만 만약 북한의 현 정권이 핵개발을 고집하면서 완고하게 군사우선의 고립정책을 밀고 나가 체제난이 극심해 질 경우,
보다 개혁적 성향의 새로운 지도부가 대두하여 현지도부를 代替하는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북한이 공산주의 체제의 틀 속에서 자신들과 유사한
개혁노선을 택하기를 원하는 중국으로서는 이러한 지도부의 출현이 중국의 이익에도 부합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유념할 사항은 북한이
비록 중국식 개혁노선을 취한다 하더라도 남북한 관계는 여전히 대립적일 수 있다는 시실이다. 북한이 정치적 민주화는 외면하고 경제재건에만 집중하는
가운데 民主主義와 人權같은 핵심적 가치에 대해 한국과 대립한다면, 남북관계는 보다 복잡하고 미묘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연착륙”은
단순히 경제개혁 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의 존중 등 정치적 自由化도 포함되어야 한다. 북한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진정으로 변화해야만 남북관계도
질적으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이 문제를 단순히 남북한간의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 지역
전체에 대한 도전요인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반도 現狀의 타파는 남북한 뿐 아니라 주변국가들의 이익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반도의 통일은 동북아에 地殼變動(지각변동)을 초래할 대대적인 사건이 될 것이 분명하다. 한반도 통일의 과정과 결과는 동북아 지역 전체의
중대한 관심 사항이다. 통일이 어떤 방식과 과정을 거쳐 이루어질지 예상하기는 어렵다. 남북한이 대화와 합의를 통해 통일을 실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보다는 예기치 못한 급변사태의 결과로 통일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어떤 방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지든지, 그 과정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한반도의 통일이 동북아 경제적 動力을 위축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통일의 과정과 함께 그 결과도 주변국들의
우려 사항이다. 인구 7500만과 상당한 규모의 군사력을 지니게 될 통일한국의 路線과 정책은 동북아의 力學關係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주변국의 이러한 우려를 고려할 때, 한반도의 통일을 목표로 하는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첫째,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동북아 4강과 관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특히 한반도 통일에 열쇠를 쥔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를 더욱 긴밀히 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대한 스스로의 공약을 성실히 이행하여 주변국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신뢰란
약속을 지켜나갈 때 비로서 축적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셋째, 통일한국이 과연 어떤 나라가 될 것인지에 대해 천명해야 한다. 통일한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반하여,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非核, 평화 애호국이 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동북아 4강간
우호적이고 협력적 관계는 한반도 통일 실현에 필수적인 만큼 동북아 국가간 多者對話 메카니즘을 발전시키는 것 또한 우리의 이익에 부합한다. 이러한
메카니즘은 동북아 국가간 신뢰와 이해를 증진하고 상호협력을 촉진하여, 한반도 통일과정의 평화적 관리에 긍정적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미동맹의 장래
한반도가 당면하는 세 번째 挑戰은 한미동맹의 장기적 지속가능성과 방향의 문제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미동맹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여 한반도에서 전쟁의 再發을 방지함으로써 한국의 비약적 경제성장과 역동적인 민주화를
가능케 하였다. 건국 이후 오늘의 한국이 있게 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 한미동맹이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반세기에 걸친
동맹관계는 현재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남북화해가 진행되고 한국과 중국간 관계가 비약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한미관계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한미관계에 浮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북한이라는 공동의 위협 앞에서 양국은 갈등과 입장 차이를 적절히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한미양국은 더 이상 위협인식을 共有하지 않게 된 것 같다. 많은 한국인들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나 핵무기 개발,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해 미국인처럼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는다. 북한의 위협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 변화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인식 변화로
이어졌다. 놀랍게도 상당수 한국인들은 미국이나 주한미군을 북한의 위협을 抑制하기 위한 동맹으로서 보다는 남북화해의 걸림돌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태도 변화의 근저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결정적인 分水嶺이 된 것은 2000년 6월에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이었다.정상회담 이후 불어
닥친 남북화해의 바람은 북한과 미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종래의 인식에 큰 변화를 초래하였으며, 최근의 반미감정의 확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다른 한편 동서냉전의 종식과 테러와의 전쟁으로 미국의 대외전략도 급격히 변했다. 9·11 사태 이후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는
세력균형 및 지역안정 유지에서 테러리즘의 근절과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로 바뀌었다. 또 군사기술의 革新으로 전 세계에 걸친 미군의 전진배치에
의존하던 동맨전략도 근본적으로 수정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변화는 북한 위협에 대한 한미양국의 인식차이 및 한국 내 漸增(점증)하는
반미감정과 맞물려 한미동맹의 장래에 暗雲을 드리우고 있다. 과연 반세기에 걸친 한미동맹에 미래는 있는 것인가?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 한미동맹의 가치와 이익은 분명히 존재한다. 최근의 남북화해의 무드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여전히 상존한다.
더구나 당면한 북한 문제를 넘어 장기적으로 한미동맹은 동북아라는 험난한 공간에서 생존과 자율을 모색해야 할 우리에게 소중한 안전보장을 제공해 줄
수 있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에 있어 미국의 지원과 협조가 결정적임은 이미 지적하였다. 한편 한미동맹은 장기적으로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 동북아의 要衝(요충)에 위치한 한반도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수행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워싱턴의 一角에서는 냉전종식으로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가 감소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지만 이는 근시안적 시각에 불과하다. 가령,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覇權(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최근 고구려 역사 논쟁이 시사하듯이 향후 중국이 어떤 길을 갈 것인지는 결코 분명하지 않다. 만약 한미동맹이 해체되고 미국이
한반도에서 철수한다면 동아시아 대륙에서 중국의 힘을 견제하기는 어려워 질 것이다. 이 경우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은 대단히 취약하고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코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眼目이 있는 정책결정자라면 동아시아의 세력균형과 안정유지에 한반도가
얼마나 소중한지 쉽게 내다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미동맹은 미일동맹과 함께 지난 반 세기동안 동아시아의 안정유지에 필수 불가결한 역학을 하였으며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한 한미동맹을 해체하거나 약화시키는 것은 결코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을 것이 自明하다. 하지만 동맹이
중장기적으로 한미양국 모두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해서 동맹의 장래가 저절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동맹관계가 장기적으로 유지되고 강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동맹의 존재이유와 성격, 형태 등이 새로운 현실에 맞도록 조정되어야 한다.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급변하는 전략적, 정치적 경제적 현실을 직시하여 동맹을 새롭게 定義하고 活力을 불어넣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동맹관계를 진정으로 “互惠的(reciprocal)”인 관계로 만드는 것이다. 호혜적인 동맹이란 동맹관계를 관리함에 있어서 단순히
동맹국이 상호 “평등(equal)”해야 한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호혜적 동맹의 핵심은 동맹국들이 호혜적인 공헌 내지 기여를 하는데 있다.
만약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억제력(deterrence)과 안전보장(reassurance)을 기대한다면 우리도 이에 상응하는 호혜적 寄與를 할
각오를 해야 한다. 호혜적 기여의 구체적 내용은 한미양국의 합의를 통해 결정되겠지만 분명한 것은 호혜적 공헌없이 동맹이 장기적으로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탈냉전과 反테러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동맹의 개념도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과거 냉전시대의 非對稱的,
후견인-피후견인(patron-client) 형태의 동맹은 이제 좋든 싫든 더 이상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게 되었다. 대신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공동이익에 기초한 “自發的·互惠的 連帶(a coalition of willing)” 형태의 동맹이 새로운 추세로 대두하고 있다.
한미동맹도 결코 이에 예외일 수는 없다. 한미동맹의 장기적 지속 가능성은 결국 양국이 서로의 필요를 얼마나 호혜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호혜적 동맹을 수용할 용의가 있는가? 국력의 차이가 있는 두 국가간의 동맹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동맹 파트너는 통상
“放棄(abandonment)”와 “連累(entrapment)”의 상반된 우려를 갖게 마련이다. 과거 한미동맹관계에서 우리는 종종 미국이
일방적으로 철수할 가능성을 우려해왔다. 반면 미국의 세계전략에 연루되어 우리가 원치 않는 개입을 강요 당할 우려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민의 위협인식이 변하고 미국의 대테러 전쟁이 확대됨에 따라 이제는 점차 連累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이러한 우려는 세대, 이념적 성향,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나 한국사회를 분열시키고 양국화시키는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그 결과 한미동맹의 문제는 우리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정치적
논란거리가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한미동맹의 장기적 지속 여부는 단순히 동맹의
가치나 존재이유에 대한 객관적 판단에만 좌우되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장래에 대한 분명한 비전과, 인기에 연연치 않고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용기임을 유념해야 한다. 외교정책이 국내정치의 종속변수가 되어가는 세태에서 한미동맹을 유지·강화하기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리더십과 꾸준한 국민설득, 그리고 동맹에 대한 국내적 지지 基盤을 확대해나가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미국도 한미동맹의
장래를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해야 함은 물론이다. 동맹이 지속·강화되기 위해서는 공동의 이익 뿐 아니라 공동의 가치와 상호 존중의 정신에 기초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동맹의 기반을 잠식할 수 있는 미국의 일방주의나 오만 禁物이다. 미국은 대등한 동반자로서 한국을 존중하고 동맹과 관련한 모든
사항을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맺음말
국제관계에서 地理는 물론 不可變的 요소지만, 地理의 전략적 含意는 결코 不變이
아니다. 국제관계의 力學이 변함에 따라 地理의 전략적 함의도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다. 냉전이 끝나고 한국이 동북아의 주요 행위지로 부상함에
따라 동북아에서 한반도가 차지하는 의미도 급격히 달라졌다. 지난 100년간 한반도는 동북아 강대국간 세력다툼의 피동적 대상에 불과했으나, 최근
처음으로 한반도가 동북아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주도하는 상황의 反轉이 일어났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한국의 역할과
책임도 커졌다. 동북아에 심대한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는 한반도의 안보현안은 다양하지만 북한의 핵개발과 불확실한 장래, 그리고 한미동맹의
장기적 지속 여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들 현안은 물론 상호 밀접히 연계되어 있다. 가령, 현재의 핵위기가 어떤 방식으로 해결되는가는 북한의
장래와 不可分의 관계가 있다. 또 이는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미국의 역할에도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현안들을 總體的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한미동맹의 확고한 뒷받침이 없이는 이러한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반면 한반도가 당면한 도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한반도 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에 걸쳐 큰 혼란과 불안정이 초래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미동맹의 강화는 한국 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이익에도 부합된다고 하겠다. 우리 앞에 놓인 복잡하고 엄청난 도전에 대처하는 첫 걸음은
현재 어려움에 처한 한미동맹을 치유하고, 더 나아가 再定義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비전과 리더십, 창의력과 끈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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