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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사그라지는 '미국의 소리'

鶴山 徐 仁 2025. 3. 18. 16:33

오피니언 만물상

[만물상] 사그라지는 '미국의 소리'

안용현 논설위원

 

입력 2025.03.17. 20:57업데이트 2025.03.18. 00:08


일러스트=이철원

오스트리아 청년 바우어는 1930년대 반(反)나치 방송으로 히틀러의 주목을 받았다. 같은 오스트리아 출신인 히틀러 말투를 우스꽝스럽게 흉내 냈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자 지명수배됐던 바우어는 미국으로 망명했다. 2차 대전 초 괴벨스는 교묘한 영상 편집과 선전으로 독일군 무적 신화를 만들어 내 유럽 전역을 속였다. 미국은 1942년 2월 ‘미국의 소리(VOA)’ 방송을 만들어 괴벨스에 대응하면서 바우어를 독일어 방송 아나운서로 내세웠다. 독일 국민은 히틀러를 흉내 내던 바우어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바우어는 노르망디 상륙 직후 “서쪽에서 태풍이 시작됐다”는 첫 독일어 방송을 내보냈다.

▶1942년 6월 VOA에 “일제는 패망할 것이고 임시정부는 연합국 승인을 받을 것이다. 독립을 준비해야 한다”는 한국어 연설이 방송됐다. 임정 주미 외교위원장이던 이승만이었다. 이승만 제안으로 VOA의 한국어 방송이 시작됐다. 일제의 가짜 선전과 달리 궁지에 몰린 일본군 전황이 이를 통해 전해졌다. 이를 몰래 듣던 경성방송국 직원들이 대거 체포되기도 했다. 종전 후 VOA는 언론 자유가 없는 지역에 미국 정책 홍보와 함께 자유·민주의 가치를 퍼뜨렸다. 북한과 중국 관련 의미 있는 보도가 많았다.

▶VOA는 시진핑의 정적이던 보시라이가 체포됐을 때 중국이 함구한 내막을 상세히 보도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7월엔 북한산 석탄의 한국 밀반입 사건을 보도했다. 안보리 제재 위반이었다. 남북 판문점 선언의 영문본이 한글본과 미묘하게 다르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당시 청와대는 VOA 기자에게 ‘외신기자 단톡방’에서 “나가 달라”고 했다가 VOA의 반발을 샀다.

▶VOA는 미 정부 자금으로 운영되지만 독립된 편집권을 갖고 있다. 미국 법이 보장한다. 이런 VOA가 트럼프의 미움을 샀다. 트럼프는 2020년 VOA를 향해 “역겹다”고 했다. 중국 내 코로나 사망자를 중국 측 자료를 인용해 줄여 보도했다는 것이다. VOA 운영 기관에 자기 사람을 앉히려다 실패하기도 했다. 엊그제 VOA 기자와 직원 1300여 명이 휴직 통보를 받았다. VOA를 유명무실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시진핑은 2018년 관영 TV와 라디오 방송을 전부 합쳐 ‘중국의 소리(中國之聲)’라는 통합 매체를 만들었다. 중국몽을 중국 안팎에 선전하려는 것이다. 시진핑은 ‘중국의 소리’를 키우고 있는데, 트럼프는 ‘미국의 소리’를 없애려 한다. 웬 광풍인가 싶다.

안용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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