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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산실’ 뚫은 토종 과학자… “망한다는 연구도 밀어붙인 맷집 통했죠” [김윤덕이 만난 사람]

鶴山 徐 仁 2024. 2. 26. 12:10

오피니언

‘노벨상 산실’ 뚫은 토종 과학자… “망한다는 연구도 밀어붙인 맷집 통했죠” [김윤덕이 만난 사람]

막스플랑크 연구소 첫 한국 단장

차미영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첫 한국인 단장으로 선임된 차미영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는 가짜 뉴스를 비롯해 빈곤, 기후변화, 식량 문제 등 인류 공통의 사회 안전망에 관한 연구를 할 것이며, "연구가 너무 재미있어서 월요일 되기만을 기다렸다”라고 밝혔다. /김지호 기자

김윤덕 기자


입력 2024.02.26. 03:00업데이트 2024.02.26. 06:02

오는 6월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연구단장으로 입성하는 차미영 카이스트 교수는 "내가 추구하는 기초과학은 이론과 논문을 넘어 사회적 파급력을 갖는 액셔너블한 과학"이라고 말했다. 2024년 2월16일 /김지호 기자

대통령의 독일·덴마크 순방이 취소된 덕에 차미영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던 독일 레오폴디나 한림원 행사에 동행하기로 돼 있었다. 빅데이터와 AI를 기반으로 가짜 뉴스, 기후변화, 식량 문제 등 지구촌 공동의 이슈를 분석해온 차 교수는, 최근 세계적 권위의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첫 한국인 단장에 선임돼 화제가 됐다. 빽빽한 일정에 3월 이후에나 볼 수 있겠다던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인슈타인 배출한 노벨 사관학교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어떤 곳인가?

“한마디로 ‘공룡’이다. 독일 전역에 86개 연구소, 2만4000명의 연구원과 직원을 둔 세계 최고의 기초과학 연구 빅텐트다. 총재 밑에 300명의 연구단장이 있고 그중 한 명이 됐다.”

-노벨상 사관학교라던데.

“아인슈타인, 막스 플랑크를 비롯해 노벨상 수상자가 30명이 넘는다. 노벨상 말고도 각 분야 최고 연구자들이 모인 곳이라 단장 회의에 참석하면 굉장할 것 같다(웃음).”

-’보안 및 정보보호연구소’의 단장이라고 들었다.

“그중에서도 ‘인류를 위한 데이터과학 연구그룹’을 이끈다. 가짜 뉴스를 비롯해 빈곤, 기후변화, 식량 문제 등 인류 공통의 사회 안전망에 관한 연구를 할 것이다.”

-단장직에 ‘지원’한 게 아니고 ‘초대’받았다고 하더라.

“작년 겨울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심포지엄이 있었다. 내가 카이스트와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진행해온 연구에 대해 주제 발표를 했는데, 타 분야 연구단장들까지 다 와서 듣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일종의 면접이었다.”

-후보군에 하버드대, 옥스퍼드대 학자들도 있었다던데.

“다양성(diversity)을 위해 아시아 학자인 내가 우선순위가 된 게 아닐까(웃음). 나의 도전적이고 초긍정적인 리더십이 좋은 인상을 줬다고 하더라. 우리 팀은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연구도 과감히 추진해왔다.”

-오는 6월 임기가 시작되면 카이스트 교수직은 그만두나.

“카이스트에서 겸직할 수 있는 파격 대우를 해주셨다. 학생으로 입학해 교수 생활까지 24년을 몸담은 카이스트를 떠나야 했다면 몹시 슬펐을 것이다.”

-연봉도 파격적인가?

“돈 때문이라면 한국에 남거나 실리콘밸리로 가야지(웃음). 100년 전통의 막스플랑크엔 연구의 독립성을 지켜주는 ‘하르나크 원칙’이 있다. 단장에게 연구 예산과 인사권을 일임한다.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믿고 기다려준다. 전통, 관습의 폐해가 있을 거라는 상식을 깨뜨리는 곳이다.”

오픈AI가 개발한 영상 생성AI '소라(Sora)'. '도쿄 거리를 걷는 여성' 등 짧은 텍스트를 제시하면 그에 맞는 동영상을 만들어낸다 .

◇백만 팔로어의 오류

-차미영 연구팀은 ‘액셔너블한 기초과학’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우리 연구의 주제는 사회 현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논문이나 이론으로만 남아 있지 않고 사회에 직접 파급력을 갖는 연구를 하려고 한다. 사회과학자들, 그리고 유엔 등 세계 기구들과 협업하는 이유다.”

-2008년 소셜미디어에 관한 연구를 일찌감치 시작했더라.

“그때만 해도 얼리 어답터들만 이용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용자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스스로 수집한 정보를 자발적으로 공유하고 전파하는 혁신적인 미디어였다. 대세가 될 거란 확신이 왔다.”

-17억개 트위터를 분석한 논문 ‘백만 팔로어의 오류’는 4000회 가까이 인용될 만큼 반향이 컸다.

“2008년 막스플랑크 연구소 박사후 연구원(포닥)으로 있을 때 서버 50대로 수집한 네트워크를 분석한 연구다. 단순히 팔로어(follower)가 많다고 해서 메시지 전파력이나 사회적 영향력이 큰 건 아니라는 결과를 데이터로 증명했다.”

-소셜미디어를 연구하다 가짜 뉴스로 관심이 옮겨간 건가.

“트위터가 나온 첫 3년 동안의 데이터를 들여다보니 가짜 뉴스가 굉장히 많이 보였다. 양질의 정보가 많은데 왜 사람들은 가짜 뉴스를 퍼뜨리지?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사람을 왜 계속 팔로(follow)하지? 그런 궁금증에 연구를 시작했다.”

-가짜 뉴스의 특징을 밝히기도 했다.

“일반 정보는 초반에 확 읽히고 사라지는데 가짜 뉴스는 파도처럼 정점을 오르내리길 반복한다. ‘어디서 들은 건데’처럼 확실하지 않은 표현이 많고, 낚시성 제목과 본문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건 초창기 가짜 뉴스에 해당하는 특징이다. 요즘은 딥페이크 등 개인이 판별하기 어려운 가짜 뉴스가 쏟아져온다. 사용자가 챗GPT와 직접 대화하면서 정보를 얻는 등 유통 경로도 바뀌고 있다. 오픈AI가 최근 발표한 영상 생성 AI 소라(Sora)는 내게도 충격적이었다. 텍스트를 주면 짧은 영상을 뚝딱 만들어낸다. 가짜 뉴스는 이제 새로운 게임이 됐다.”

-대책이 별로 없다는 뜻인가?

“AI 기술이 너무 빨리 발전하고 정보가 산발적으로 퍼지기 때문에 중앙의 컨트롤은 거의 불가능하다. 뒤따라가면서 규제하고 안전장치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 진짜 문제는 우리나라의 가짜 뉴스 처벌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가짜 뉴스 자체에 대한 처벌은 없고 명예훼손죄로 몇백만원 벌금 내는 정도다.”

-올해 선거를 치르는 나라가 많다.

“어떤 형태로든 대형 사고가 날 텐데 우리나라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2023년 9월 독일 뮌헨 막스플랑크 연구소(뒷줄 왼쪽에서 셋째) 헤드쿼터에서 패트릭 크래머 막스플랑크 총재가 차미영 카이스트 교수겸 기초과학연구원(IBS) 그룹장에게 공식적으로 단장직을 제안한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IBS

◇실패, 두렵지 않다

-가짜 뉴스 범람에 네이버, 유튜브,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의 책임이 적지 않다.

“미 대선 기간이던 2016년, 페이스북으로 연구년을 다녀왔다. 플랫폼이 왜 가짜 뉴스를 안 막는지 비난받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플랫폼이 어떤 정보가 가짜 같아서 가리거나 삭제하면 사용자로부터 고소가 들어온다. 일일이 검증하기도 힘들다. 플랫폼이 할 수 있는 일은, 양질의 콘텐츠를 위로 올려 가짜 뉴스를 후순위로 밀리게 하는 것뿐이다.”

-소셜 네트워크의 폐해가 많지만 행복을 도모하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더라.

“지금의 알고리즘들은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고 사용자를 더 오래 잡아두느냐에 사용되고 있다. 이와 반대로 나를 더 많이 웃게 해주고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쪽으로 알고리즘을 개발할 수도 있다. 가까운 친구보다도 플랫폼이 노출하는 콘텐츠의 영향이 더 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플랫폼들은 사용자의 삶을 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유엔 등 세계기구와의 협업도 많았다던데.

“세계관세기구에 탈세범 잡는 알고리즘을 제공해 개발도상국들이 탈세를 막고 제대로 세수를 거둘 수 있게 도와줬다. 유엔개발계획(UNDP)과 함께 인도네시아의 물가지수를 샘플링해 가짜 물가를 잡는 작업도 했다.”

-데이터 과학이 개도국이나 후진국들에 더 필요하다고 했더라.

“빈곤, 환경오염, 식량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데 데이터 과학이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성 영상을 보면 어느 지역이 빈곤한지, 어느 지역에 쓰레기가 쌓이고, 인구가 밀집해 있는지 다 보인다. 문제는 디지털화가 안 된 개도국에는 이런 기술과 알고리즘을 제공해도 사용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괴리를 줄여나가는 것이 과제다.”

차미영 교수의 다국적 연구팀. 차 교수는 카이스트와 기초과학연구원에 지난 5년간 20국에서 130여 명의 인턴을 채용했다.

◇몰입과 공상 좋아하던 아이

-과학자가 된 건 물리학자였던 아버지 영향일까.

“난 좀 별스러웠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음악을 들으면 눈앞에 꽃잎이 막 떨어지고, 눈을 감으면 별이 가득한 우주가 펼쳐졌다(웃음). 몰입과 공상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춘천에서의 성장기는 어땠나.

“호수와 안개 속에서 자랐다. 소설가 오정희 선생님과 같은 아파트인 데다 딸이 나와 동갑이라 맨날 놀러 갔다. 그 집에는 언제나 클래식 음악이 흘렀다.”

-천문학을 하려다 카이스트엔 없어 전산학을 공부했다던데.

“전산도 재미있었다. 요즘엔 데이터가 전산에만 있는 게 아니어서 어느 분야에 갔어도 재미있는 걸 찾아 연구했을 거다.”

-’로봇의 인권’도 연구 주제더라.

“나와 함께 막스플랑크 연구소로 가는 우리 팀은 다국적 연구원들로 구성돼 있다. 지난 5년간 20국에서 130명의 인턴을 채용했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인재들에게서 다양한 아이디어와 창의가 나온다. 미래의 이슈로 떠오를 ‘로봇의 인권’을 연구해보자는 아이디어도 그렇게 나왔다. 트럼프가 집권해서 좋을 딱 한 가지는 미국으로 흡수될 우수한 과학 인재들이 카이스트로 올 수 있다는 점이다(웃음).”

-여성이라 차별받은 적은 없나.

“당시엔 남고, 남자 대학이나 다름없는 과학고와 카이스트에서 ‘빡세게’ 공부만 하고 살아선지 차별 같은 건 인지할 틈이 없었다(웃음). 지금은 여학생 수가 많아져서 정말 좋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남편, 양가 부모님, 베이비 시터 등 모든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았다. 연구가 너무 재미있어서 월요일 되기만을 기다렸다(웃음).”

-후배들에게 회의할 때 뒷자리에 앉지 말라고 했더라.

“초대받은 회의라면 나만의 목소리를 내고 와야 한다. 어디서든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돼야 한다. 하다못해 행사가 있으면 총장님 옆에 서는 게 좋다(웃음).”

-직업병은 없나?

“병이 아니라 혜택! 소셜미디어에 중독되지 않는 나만의 방법을 터득했다. 페이스북이든 유튜브든 네이버든 필요할 때 사용하고 바로 앱을 지워버린다. 다시 깔기 귀찮아서라도 안 본다(웃음).”

-외모며 말투가 과학자 같지 않다는 말도 들을 것 같다.

“결핍 때문일 거다. 공부만 하는 바람에 10대, 20대에 누려야 할 낭만이 없었다. 그래서 석·박사 과정 때 꽃무늬 원피스만 입고 다니고, 여성 잡지를 한 달에 다섯 권씩 구독했다(웃음).”

-여성은 수학, 과학에 약하다는 편견에 대해.

“남녀는 선천적으로 다른 생물이 아니다. 다만 지금은 여러 가지 융합 능력이 필요한 시대고 100세까지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인문적 소양과 예술적 감성도 함께 키워야 한다. 아, 경제도 좀 일찍 가르쳐달라. 내가 펀드와 재테크는 완전 무지하다, 하하!”

2024년 2월 16일 서울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는 차미영 카이스트 교수. 외모며 말투가 과학자 같지 않다는 질문에 차 교수는 "학창시절 슬리퍼 끌고 공부만 하고 살아서 낭만에 대한 결핍이 크다. 석박사 과정때 꽃무늬 원피스만 입고 다닌 이유"라며 웃었다. /김지호 기자

☞차미영

1979년 대전에서 태어나 춘천에서 자랐다. 강원과학고를 졸업한 뒤 카이스트 전산학부에 입학,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2년간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10년 카이스트 교수로 임용됐다. 5년간 기초과학연구원(IBS) 데이터 사이언스그룹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