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호서 청혼했던 22살·19살 우크라 커플, 러시아 폭격에 숨져
결혼 1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장례식 맞아
유엔 “우크라 민간인 희생자 1만 명 넘어”
입력 2023.11.23. 10:42업데이트 2023.11.23. 11:28
사랑에 빠지기엔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전쟁은 끝이 없었고, 그들이 사는 우크라이나 남동부 도시인 자포리자에는 약 30㎞ 떨어진 남쪽에서 러시아군이 쏴 대는 미사일과 로켓이 1주일에도 한 번 이상 떨어졌다. 공습경보는 일상의 배경 소음이었지만, 때로는 경보도 없이 폭탄이 떨어졌다.
워싱턴포스트는 22일 첫눈에 반해 결혼했지만,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신혼 생활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숨진 젊은 우크라이나 남녀의 얘기를 소개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2022년 2월24일)한 지 6개월쯤 됐을 때, 다닐로 코발렌코(22)와 다이아나 하이두코바(19)는 요즘 젊은이들처럼 한 데이팅 앱에서 처음 만났다. 다이아나가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금발에 각진 턱을 가진 코발렌코는 다이아나가 좋아하는 에니메(일본 만화영화)의 주인공을 닮았다.
둘은 곧 사랑에 빠졌고, 한 순간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다이아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리자 야키모바(20)는 워싱턴포스트에 “다이아나가 이렇게 금세 사랑에 빠진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다닐로는 다이아나가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았고, 그를 위해 요리를 했다”고 말했다.
다이아나는 곧 어머니와 살던 시 외곽의 마을을 떠나, 다닐로와 그의 부모에 사는 방 4개짜리 아파트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러시아군의 폭탄이 떨어지는 어느 날 밤, 다닐로는 지하 방공호에서 다이아나에게 청혼했다.
그리고 만난 지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인 신고를 하고 정식 부부가 됐다. 둘의 결혼 반지에 새겨진 글씨는 ‘크루통(croutons)’. 보통 샐러드나 수프에 첨가되는, 사각으로 잘게 썰어 구운 빵조각이다. 함께 장 보러 갔을 때에, 두 사람이 동시에 외쳤던 것이기도 했다.
다닐로의 친구가 다닐로와 다이아나가 찍은 인스타그램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워싱턴포스트
다이아나는 인스타그램에 다닐로의 품에 안긴 자신의 사진을 올리며 “나는 이 재미있는 사람이랑 바로 결혼해버렸다. 하지만 이 열정은 곧 끝나겠지. 모든 여자가 다 그렇지 않나?”고 썼다. 남편에게 입을 맞추며 “이 전쟁통에도, 나는 열아홉살에 결혼했다고”라고 노래하는 동영상도 올렸다.
친구들은 둘 다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둘은 어느 순간에라도, 전쟁이 그들을 갈라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매순간을 사랑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다닐로와 다이아나의 스토리는 러시아 침공으로 수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겪는 안타까운 인명 상실을 상징한다”며 “매일 밤 러시아의 폭격은 수많은 무고한 우크라이나인의 생명과 꿈, 미래를 지워버린다”고 전했다. 다닐로의 한 친구는 지난 달에만 고교 친구와, 친구의 여자친구 등 2명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다닐로와 친구들이 즐겨 찾던 드니프로 강변의 항구와 참나무숲도 폭격에 사라졌다. 친구들은 “마치 등에 표적지를 달고 다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닐로와 다이아나는 달랐다. 다닐로는 나중에 유명해지고 싶어했던 뮤지션이었다. 약간 괴짜에 유머 감각이 뛰어나, 친구들을 한데 묶어주는 매력이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느긋한 삶을 좋아했다.
반면에, 다이아나는 매사에 적극적이었다. 카페에서 일하면서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늘 여러가지 일과 목표를 균형 있게 추구했다. 어린 10대 시절, 다이아나는 사촌과 함께 자포리자에서 열리는 K-팝 댄스 경연이나 콘서트에 가는 것을 즐겼다. 늘 긍정적인 에너지로 친구들에게 영향을 줬고,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면 멈출 줄 몰랐다.
10월16일 러시아는 자포리자 지역을 다시 폭격했다. 그들의 아파트 근처에도 폭탄이 계속 떨어졌다. 복도로 피신하려고 나섰는데, 다이아나가 몇몇 소지품을 챙기려고 돌아섰다. 다닐로가 그 뒤를 따랐다. 둘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거대한 폭발음이 이 아파트의 3층과 5층 사이를 덮쳤고, 두 사람이 자던 방도 날려 버렸다. 문짝만 남았다. 다닐로의 아버지는 늘어진 아들의 몸에 필사적으로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아들은 숨졌다. 다이아나의 일그러진 시신은 다음날 잔해 속에서 발견됐다.
길 건너 살던 친구는 다닐로의 아파트가 폭격된 것을 알고 달려 올라갔지만, 다닐로의 아버지는 아들이 죽었다고 말했다. 친구는 그 날 이후 집을 나설 때마다 다닐로가 살던 아파트에 난 거대한 구멍을 본다.
지난 16일은 그들의 결혼 1주년 기념일이 될 뻔했지만, 그들은 자신의 장례식을 맞았다. 친구들은 화장(火葬)된 두 사람의 골분(骨粉)을 섞어 의미 있는 장소에 뿌릴 계획이다.
다이아나의 사촌 아나스타샤는 아직도 다이아나의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린다. 막연히 이 글을 다이아나가 읽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에 “세상에서 가장 멋진 커플이 될 수도 있었을 그들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21일 우크라이나의 유엔인권감시단은 러시아 침공 이래,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망자는 1만 명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희생자 중 560명 이상이 어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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