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섞지 말라 신 22:8-12

鶴山 徐 仁 2022. 8. 27. 11:56

섞지 말라 신 22:8-12

 
 
 
08월 27일 (토)
   
섞지 말라 신 22:8-12



8. 네가 새 집을 지을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이 떨어지지 않게 하라 그 피가 네 집에 돌아갈까 하노라
9.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을 다 빼앗길까 하노라
10.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11. 양 털과 베 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
12. 너희는 너희가 입는 겉옷의 네 귀에 술을 만들지니라
 
<네가 새 집을 지을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이 떨어지지 않게 하라>(8절).
참 놀라운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의 가옥은 대개 지붕이 평평한 슬라브식이고, 종종 그곳은 휴식이나 기도 장소로도 이용되었습니다(삼하 11:2, 느 8:16, 행 10:9). 따라서 자칫 실수하여 지붕에서 사람이 떨어질 위험성이 있었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난간을 설치하도록 규제한 말씀입니다. 불의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세심한 배려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피가 네 집에 돌아갈까 하노라>(8절)고 한 말씀을 보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태만과 무책임으로 이웃에게 해를 입혔을 경우에는 그 피의 책임을 집주인이 져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 규례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9절).
이것은 무엇이든 하나님이 창조하신 <순수한 상태>를 그대로 보존하라는 분부며, 이를 통해 이스라엘로 하여금 심오한 영적 진리를 깨닫게 하고자 의도하신 법도입니다.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을 다 빼앗길까 하노라>(9절)한 경계도 대단히 엄중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에 의해 성별된 공동체였습니다. 광야에서도,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오직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원형 그대로 지켜가야 했던 선민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가나안 원주민들의 이교적 풍습이나 우상문화에 물들거나 타협하여 여호와 신앙이 변질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신앙의 순결성을 강조하고 촉구한 규례라고 이해하시면 옳을 것입니다.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10-11절). 이 역시 소와 나귀, 양털과 베실의 조합보다는 여호와 신앙과 우상숭배,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혼합하지 말고 이스라엘 전통의 순수한 신앙을 잘 유지하고 보전하라는 의미의 규례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9절)하신 이유를 적어 보십시오.
-본문이 유난히 혼합종교의 위험을 경계한 이유는?
-현대 교회가 직면한 혼합주의의 위기를 든다면?
 
주님,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구별된 공동체입니다.
 세속 한복판에서 살지만 세속에 속하거나 세상에 동화되어 살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키며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천국 백성들입니다. 
부디 함부로 타협하거나 쉽게 신앙의 순결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시고, 배타적이라는 비판이 두려워 종교다원주의와 같은 혼합주의의 미혹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성령으로 저희의 믿음을 지켜주시옵소서. 
 
   
인간미
 
“지나친 달변가는 오히려 신뢰가 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끔 실수도 하는 사람에게 인간미가 느껴져 호감이 갈 때가 많아요.
완벽은 되려 1% 부족할 때 채워지는 것이랍니다.”


뽀로로 저(著) 《하늘을 날지 않아도 난 행복해》 (북플라자, 11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察: 꾸짖으면)
무리(輩)가 없다.” 고 하였습니다.
‘청수무어 (淸水無魚)’혹은 ‘수청(水淸)이면 무대어(無大魚)’라는
경구도 있습니다. 증류수처럼 물이 너무 맑으면 먹이도 없고 산소도 없
습니다. 또 물 속에 풀이나 돌이 없으면, 숨을 곳도 없고 알을 낳을
곳도 마땅치 않아 물고기가 없습니다.
이 말들은 사람이 결벽할 정도로 너무 맑음을 추구하면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맑고 고결하다는 것이 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도가 지나쳐서 혼자만이 고고(高孤)하고 깨끗
하다고 생각하다 보면, 다른 사람은 불결한 사람으로 보이게 마련입니다.
이런 사람은 타인에 대해 엄격한 잣대로 판단을 하면서, 포용력이 없어
집니다. 고결함을 잃지 않고도 포용력과 유연성을 가지는 것이 인간미
넘치는 참 맑은 물일 것입니다.
자기중심이 있으면서도 이웃과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쉽게 홀리면서도 이웃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의와 상념에만 집중한 사람들입니다.
반면 바울사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과 중심을 잃지 않은 상태
에서 이웃을 향해 한없이 열린 마음이 있었습니다. 중심을 잃지 않으면
서도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되어 그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였
습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
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고전9:22)
   
그리스도 안에서 권면해야 한다.
성도는 거룩하신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성도라 할지라도 연약한 인간이기에
 때로 범죄 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그리스도인이 다른 그리스도인을 
권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성도 간에는 오해를 무릅쓰고라도
권면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바울은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롬 15:14)고 했다. 
주안에서 하는 권면은 모든 책임을 주께서 져 주신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의 권면과 위로를 주고 받아야 한다 
-박재선 목사의 ‘공동체의 조화’에서-


주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이 낙심했을 때 
사랑의 위로로 감싸주셨습니다. 
기쁨도 슬픔도 어려움도 나눌 때 성도는 서로 형제요, 
하나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어려운 권면도 때로는 주저없이 해야합니다
 주께서 제자들을 위로하심으로 
평안을 끼쳐 주신 것처럼 서로 궘면하고 위로하십시오. 
'평강의 주께서 친히…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살후 3:16). 
  위로의 성령을 통하여 권면 받은 형제가 평강을 얻도록
 교제를 나누는 일은 피차에 매우 유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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