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땅에 남은 자들 왕하 25:18-30
07월 27일 (수)
유다 땅에 남은 자들 왕하 25:18-30
18. 시위대장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
19. 또 성 중에서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내시 한 사람과 또 성 중에서 만난 바 왕의 시종 다섯 사람과 백성을 징집하는 장관의 서기관 한 사람과 성 중에서 만난 바 백성 육십 명이라 20.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그들을 사로잡아 가지고 립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21. 바벨론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22. 유다 땅에 머물러 있는 백성은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긴 자라 왕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가 관할하게 하였더라 23. 모든 군대 지휘관과 그를 따르는 자가 바벨론 왕이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삼았다 함을 듣고 이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느도바 사람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마아가 사람의 아들 야아사니야와 그를 따르는 사람이 모두 미스바로 가서 그달리야에게 나아가매 24. 그달리야가 그들과 그를 따르는 군사들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너희는 갈대아 인을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며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가 평안하리라 하니라 25. 칠월에 왕족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이 부하 열 명을 거느리고 와서 그달리야를 쳐서 죽이고 또 그와 함께 미스바에 있는 유다 사람과 갈대아 사람을 죽인지라 26. 노소를 막론하고 백성과 군대 장관들이 다 일어나서 애굽으로 갔으니 이는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 27.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왕 에윌므로닥이 즉위한 원년 십이월 그 달 이십칠일에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28. 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이고 29. 그 죄수의 의복을 벗게 하고 그의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하였고 30. 그가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양이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유다 땅에 머물러 있는 백성은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긴 자라 왕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가 관할하게 하였더라>(22절).
본 절 이후로부터는 느부사라단에 의해 유다 땅에 남겨진 자들에 대한 역사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앗수르와는 달리 바벨론은 정복지에 자국민의 이민정책을 펴지 않고 그 현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 자치제를 실시해 세금과 조공을 챙겼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가운데 명문 출신인 그달리야를 총독으로 세우고 새로운 형태의 행정을 유다에 도입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처사에 대해 그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불만을 품어 그달리야를 몰아내고 다른 유다인으로 총독을 삼기 위한 시도가 발생했습니다. 이때 유다에 계속 남아 있던 백성들은 어떤 특정한 기술도 없고 바벨론에 전혀 유익하지 않다고 판명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외에도 상류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도 상당수가 있었는데 그들은 유다 각지에 숨어 있던 사람들로서 예레미야와 바룩, 그리고 몇몇 왕족이 있었습니다. <그달리야>는 예레미야의 충고에 따라 바벨론을 섬기는 길만이 살 길임을 굳게 믿고 있었으며 그러한 충고를 하는 예레미야 선지자도 보호해주었습니다. 당시 바벨론이 유다 땅에서 실시한 정책은 남아 있는 유다인들의 감정과 정서를 최대한 손상시키지 않는 온건한 방식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유력한 증거가 바로 사반의 손자요 아히감의 아들인 그달리야로 총독을 삼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달리야의 조부인 사반은 서기관 출신으로 요시야 왕 때에 큰 명성을 떨쳤던 사람이며 그의 부친 아히감도 왕의 사절단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즉 그는 상당한 명문가 출신으로 유다 백성들의 신임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이러한 사람을 총독으로 내세워 유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회유했던 것입니다. 그달리야도 그러한 바벨론의 유화정책에 순응하여 그 땅 백성들을 잘 화합시켜 실질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후환이 두려워 국수주의자들은 암몬으로, 그리고 또 다른 무리들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데리고 애굽으로 도망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다 신명기에서 예언한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 <그달리야>의 할아버지 <사반>에 대해 22:3절과 예레미야 26:24을 참고해 소개해보십시오.
- 당시 식민지를 관리하는 바벨론의 정책에 대해 당신의 견해를 간략히 적어보십시오. -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다 사람의 수를 예레미야 52:28-30을 참고하여 확정해보십시오. 주님, 유다가 결국 그들의 어리석음과 불순종으로 옛 종의 모진 멍에를 다시 쓰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 쉽고 가벼운 하나님의 은혜의 멍에를 거부하면 죄와 사탄의 무거운 멍에를 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부디 저희로 하여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9-30)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그 말씀 앞에서 바르게 판단하고 결단하는 성도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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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피터슨이 말하는 책과 유튜브
“책은 초상화와 같아요. 사진과 반대되는 의미에서 말이죠.
사진은 찰칵하면 사진이 금방 찍히죠. 반면 초상화는 물감을 덧칠하고, 그 위에 또 덧칠하고, 몇 개월 동안 지속해서 작업해야 하죠. 캔버스 위에는 같은 그림이 계속 있는 거에요. 하지만 그림에 깊이가 있는거죠. 책은 당신이 생각하고 그리고 또 생각하게 만들어요. 생각하고 또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당신은 어느 다른 매체보다도 책을 읽으면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거에요.” 조던 피터슨 「유튜브 ‘조던 피터슨의 일기장’」 ‘독서와 유튜브, 팟캐스트의 차이’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세계적인 석학 조던 피터슨은 독서를 가리켜 ‘초상화’, 유튜브, 팟 캐스트 등을 ‘사진’으로 비유하였습니다. 유튜브, 팟 캐스트, 오디오 북 등은 운전을 할 때나, 설거지, 운동을 할 때도 동시에 ‘듣는 독서’를 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에 매우 유용한 독서 도구입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독서는 ‘독서 행위’를 통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생각의 깊이, 생각의 근육을 키워주는 결정적인 장점이 있습니다. 최고의 기독교 변증학자 중 하나인 C.S.루이스는 독서의 감동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훌륭한 문학을 읽으면 나는 천의 인물이 되면서도 여전히 나로 남아 있다. 그리스 시에 나오는 밤하늘처럼 나는 무수한 눈으로 보지만, 보는 주체는 여전히 나다. 예배할 때나 사랑할 때,또 도덕적 행위를 할 때나 지식을 얻는 순간처럼,독서를 통해서도 나는 나를 초월하되 이때처럼 나다운 때는 없다.” (《책 읽는 삶》, 12-13쪽)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하나님의 최고의 일반 은총 중의 하나인 ‘책’을 통해, 영성 지성 감성이 조화롭고 풍성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딤후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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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2장 29절
너희가 여호와께 감사제물을 드리려거든 너희가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드릴지며
"When you sacrifice a thank offering to the LORD, sacrifice it in such a way that it will be accepted on your behal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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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
심리학자들은 슬럼프에 빠졌을 때 감정보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라고 말합니다. 대부분 슬럼프에 빠지는 이유는 사실보다 자기의 느낌과 감정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사실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자기 스스로 실패자라고 생각하고, 자기 스스로 거짓 감정에 속아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경우, 객관적 사실은 지금 죽을 만큼의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두려운 쪽은 아합 왕과 이세벨입니다. 실패자는 엘리야가 아니라 아합 왕과 이세벨입니다. 이세벨은 자기가 두려우니까 엘리야를 겁주기 위해서 그냥 독설을 내뱉은 것뿐입니다...이러한 거짓된 감정은 결국 엘리야를 슬럼프에 빠뜨리고 맙니다.
-김동수의 [힐링, 마음 백신] 중에서- 우리는 마음에도 속도가 있고, 온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슬럼프에 빠지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온도가 낮을 뿐만 아니라 속도도 침체되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슬럼프의 원인이 마음의 문제이며, 사실보다 감정에 따라 확대하여 염려와 근심이 생겼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슬럼프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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