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도끼 왕하 6:1-7
03월 24일 (목)
물에 빠진 도끼 왕하 6:1-7
1.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2.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그 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하는지라 3. 그 하나가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가리라 하고 4. 드디어 그들과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5.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 6.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 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7.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6장에는 서로 주제가 다른 세 가지 이야기가 나열식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① 엘리사가 선지자 생도들을 어떻게 이끌었으며 그 선지 학교가 어떻게 발전해 가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② 요아스 왕이 엘리사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고 불렀던 것처럼 엘리사의 사역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에 두는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③ 사마리아성에 닥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여호람 왕이 하나님 앞에서 늘 행악을 일삼았음에도 하나님은 그를 두 차례나 도우셨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끝까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참혹한 곤욕을 치르게 하셨고 급기야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 온 것이니이다>(5절). <빌려 온>이란 말의 히브리어 <솨울>은 <애걸하다> <구걸하다>는 뜻입니다. 즉 도끼를 물에 빠뜨린 선지 생도는 너무도 가난하여 도끼를 살 수 없었기에 이웃에게 애걸하여 겨우 빌려 온 것이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도끼 하나도 살 수 없는 가난한 생도였기에 이제 그걸 배상해줘야 할 처지가 되었으니 얼마나 난감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곳을 보이는지라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6-7절). 엘리사 선지자가 행한 이 이적은 주님이 고기의 입에서 금화를 꺼낸 이적이나 오병이어의 이적 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현실적인 필요를 채워주시고 또 문제도 해결해 주시는 분이심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단순하고도 사소한 사건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도끼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늘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의 소중한 믿음도, 영혼도 다 잃어버릴 수 있음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생명을 잃어버리고 형식만을 붙잡고 사는 신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잃었다 찾은 보화를 다시 잃지 않도록 잘 간직하십시오. 더욱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셔서 마귀에게 나의 소중한 것들을 빼앗기지 않는 복된 성도들 되시길 간절히 빕니다. - 본문의 엘리사의 이적과 마 17:28, 눅 9:12-17에 소개된 주님의 이적을 비교해보십시오.
- 선지자 생도들이 왜 굳이 엘리사를 나무 베는 장소인 요단으로 모시고 갔을까요(3절)? -나뭇가지를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한 엘리사의 이적에 대한 당신의 소감을 적어보십시오(6절). 엘리사를 통해 물에 빠진 쇠도끼가 물 위로 다시 떠오르게 하신 주님, 그 이적은 당연히 엘리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것이었습니다.
오늘 저희들의 물에 빠진 도끼도 모두 수면 위로 떠오르는 역사가 있게 해주시옵소서. 저희의 힘으로는 결코 쇠도끼를 물에 띄울 수 없사오니 주님이 친히 역사하사 물에 가라앉은 저희들의 무거운 과제들이 주님의 능력으로 다 물위에 떠오르는 역사가 있게 하사 <너는 그것을 잡으라>(7절)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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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
한 교장 선생님이 운동장에서 휴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한 학생이 지나가면서 못 본채 합니다. 어느 학생은 “여기도 저기도 휴지가 있어요.” 하고 휴지 있는 곳을 말해 주며 지나갑니다. 다른 학생은 “누구누구가 휴지를 버렸어요.” 하고 이르면서 그냥 지나갑니다. 어느 학생은 아무 말 않고 교장 선생님과 함께 같이 휴지를 줍습니다. 어느 학생이 제일 예쁘고, 어느 학생이 제일 밉습니까? 오랜 기간 동안 기업에 사람을 소개하는 헤드헌터로 일해 온 저자는 회사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이 ‘평론가’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매사에 이것이 문제고 저것이 틀렸다고 말만 앞세울 뿐, 실제 일을 하는 것은 그들의 모진 비평의 대상이 되어주는 다른 사람들이다. 남들은 다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데 혼자서 뒷짐 지고 돌아다니며 일이 잘 됐네, 못 됐네 말잔치만 벌이는 이를 어떤 조직에서 반기겠는가. 다른 어떤 조직보다 날카로운 안목과 분별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신문사에서조차 이들은 가장 인기 없는 인물 유형이다...” (20쪽)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마23:3,4) “무슨 일에든 앞장서서 먼저 말을 꺼내고 연락을 돌리는 동네 반장형, 크고 작은 일이 생길 때마다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하는 돌쇠형도 있고, 눈에 띄기 싫어하며 뒤에서 자기 일에만 충실한 아웃사이더형도 있다.
이들 못지않게 자주 눈에 띄는 또 한 유형이 있으니, 바로 평론가형이다(중략). 아는 것도 많고 남들이 잘 보지 못하는 문제점을 잘 찾아내는 이들이 기업 내에서 받는 평가는 어떨까? 아마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로 여겨지지 않을까? 대답은 정 반대다. 회사는 ‘평론가’ 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실은 아주 질색을 한다.” 신현만 저(著) 「회사가 붙잡는 사람들의 1% 비밀(위즈덤하우스, 19-20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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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학교
하나님께 무엇을 구해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성경의 분명한 교훈이다. 하지만 가장 높은 수준의 기도는 ‘무엇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다. 가장 거룩한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그 분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복된 기도를 맛본 사람은 기적이라는 것에 크게 매료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기도 응답으로 하나님께 무엇을 얻어내는 것보다 그 분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고백한다. 여러 삶의 학교 가운데 인간의 영혼의 교훈을 얻는 학교는 ‘침묵의 학교’다. 시편에는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말씀에는 매우 깊은 의미가 담겨있는데 이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적용된다. -A.W. 토저의 ‘예수 방향으로 가라’에서- 대개 입이 열변을 토할 때는 영적으로 뜨거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잠잠히 있을 때에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진리들이 있습니다. 먼저 귀를 기울여 듣지 않는 사람은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자신의 영혼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충분히 살피고 침묵 속에 하나님의 깊은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시간을 할애하십시오. 그러면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
03월 24일 (목)
물에 빠진 도끼 왕하 6:1-7
1.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2.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그 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하는지라 3. 그 하나가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가리라 하고 4. 드디어 그들과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5.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 6.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 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7.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6장에는 서로 주제가 다른 세 가지 이야기가 나열식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① 엘리사가 선지자 생도들을 어떻게 이끌었으며 그 선지 학교가 어떻게 발전해 가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② 요아스 왕이 엘리사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고 불렀던 것처럼 엘리사의 사역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에 두는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③ 사마리아성에 닥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여호람 왕이 하나님 앞에서 늘 행악을 일삼았음에도 하나님은 그를 두 차례나 도우셨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끝까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참혹한 곤욕을 치르게 하셨고 급기야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 온 것이니이다>(5절). <빌려 온>이란 말의 히브리어 <솨울>은 <애걸하다> <구걸하다>는 뜻입니다. 즉 도끼를 물에 빠뜨린 선지 생도는 너무도 가난하여 도끼를 살 수 없었기에 이웃에게 애걸하여 겨우 빌려 온 것이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도끼 하나도 살 수 없는 가난한 생도였기에 이제 그걸 배상해줘야 할 처지가 되었으니 얼마나 난감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곳을 보이는지라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6-7절). 엘리사 선지자가 행한 이 이적은 주님이 고기의 입에서 금화를 꺼낸 이적이나 오병이어의 이적 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현실적인 필요를 채워주시고 또 문제도 해결해 주시는 분이심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단순하고도 사소한 사건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도끼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늘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의 소중한 믿음도, 영혼도 다 잃어버릴 수 있음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생명을 잃어버리고 형식만을 붙잡고 사는 신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잃었다 찾은 보화를 다시 잃지 않도록 잘 간직하십시오. 더욱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셔서 마귀에게 나의 소중한 것들을 빼앗기지 않는 복된 성도들 되시길 간절히 빕니다. - 본문의 엘리사의 이적과 마 17:28, 눅 9:12-17에 소개된 주님의 이적을 비교해보십시오.
- 선지자 생도들이 왜 굳이 엘리사를 나무 베는 장소인 요단으로 모시고 갔을까요(3절)? -나뭇가지를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한 엘리사의 이적에 대한 당신의 소감을 적어보십시오(6절). 엘리사를 통해 물에 빠진 쇠도끼가 물 위로 다시 떠오르게 하신 주님, 그 이적은 당연히 엘리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것이었습니다.
오늘 저희들의 물에 빠진 도끼도 모두 수면 위로 떠오르는 역사가 있게 해주시옵소서. 저희의 힘으로는 결코 쇠도끼를 물에 띄울 수 없사오니 주님이 친히 역사하사 물에 가라앉은 저희들의 무거운 과제들이 주님의 능력으로 다 물위에 떠오르는 역사가 있게 하사 <너는 그것을 잡으라>(7절)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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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
한 교장 선생님이 운동장에서 휴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한 학생이 지나가면서 못 본채 합니다. 어느 학생은 “여기도 저기도 휴지가 있어요.” 하고 휴지 있는 곳을 말해 주며 지나갑니다. 다른 학생은 “누구누구가 휴지를 버렸어요.” 하고 이르면서 그냥 지나갑니다. 어느 학생은 아무 말 않고 교장 선생님과 함께 같이 휴지를 줍습니다. 어느 학생이 제일 예쁘고, 어느 학생이 제일 밉습니까? 오랜 기간 동안 기업에 사람을 소개하는 헤드헌터로 일해 온 저자는 회사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이 ‘평론가’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매사에 이것이 문제고 저것이 틀렸다고 말만 앞세울 뿐, 실제 일을 하는 것은 그들의 모진 비평의 대상이 되어주는 다른 사람들이다. 남들은 다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데 혼자서 뒷짐 지고 돌아다니며 일이 잘 됐네, 못 됐네 말잔치만 벌이는 이를 어떤 조직에서 반기겠는가. 다른 어떤 조직보다 날카로운 안목과 분별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신문사에서조차 이들은 가장 인기 없는 인물 유형이다...” (20쪽)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마23:3,4) “무슨 일에든 앞장서서 먼저 말을 꺼내고 연락을 돌리는 동네 반장형, 크고 작은 일이 생길 때마다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하는 돌쇠형도 있고, 눈에 띄기 싫어하며 뒤에서 자기 일에만 충실한 아웃사이더형도 있다.
이들 못지않게 자주 눈에 띄는 또 한 유형이 있으니, 바로 평론가형이다(중략). 아는 것도 많고 남들이 잘 보지 못하는 문제점을 잘 찾아내는 이들이 기업 내에서 받는 평가는 어떨까? 아마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로 여겨지지 않을까? 대답은 정 반대다. 회사는 ‘평론가’ 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실은 아주 질색을 한다.” 신현만 저(著) 「회사가 붙잡는 사람들의 1% 비밀(위즈덤하우스, 19-20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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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학교
하나님께 무엇을 구해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성경의 분명한 교훈이다. 하지만 가장 높은 수준의 기도는 ‘무엇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다. 가장 거룩한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그 분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복된 기도를 맛본 사람은 기적이라는 것에 크게 매료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기도 응답으로 하나님께 무엇을 얻어내는 것보다 그 분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고백한다. 여러 삶의 학교 가운데 인간의 영혼의 교훈을 얻는 학교는 ‘침묵의 학교’다. 시편에는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말씀에는 매우 깊은 의미가 담겨있는데 이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적용된다. -A.W. 토저의 ‘예수 방향으로 가라’에서- 대개 입이 열변을 토할 때는 영적으로 뜨거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잠잠히 있을 때에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진리들이 있습니다. 먼저 귀를 기울여 듣지 않는 사람은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자신의 영혼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충분히 살피고 침묵 속에 하나님의 깊은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시간을 할애하십시오. 그러면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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