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 왕하 5:8-19 외 1

鶴山 徐 仁 2022. 3. 15. 10:17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 왕하 5:8-19

 
 
03월 15일 (화)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 왕하 5:8-19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16.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18.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19.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 그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가니라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9-10절).
엘리사 선지자가 말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찾아온 나아만 앞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권력이나 부귀영화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병환자 나아만 장군은 오히려 선지자 엘리사가 교만하다고 노하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물론 나중에는 자신의 병고침이 선지자 엘리사의 어떤 마술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고 그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한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선지자의 명령은 굳이 치료를 위한 행위였다기보다는 전폭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명령이었습니다. 그것도 일곱 번이나 씻으라고 한 것은 완전한 순종의 요청이었던 것입니다. 


<다메섹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12절).
나아만의 이런 생각은 매우 합리적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이적이란 순종함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모르고 오직 인간적인 생각만을 앞세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뱀에게 물려 죽어갈 때 하나님께서 장대에 높이 매달린 놋뱀을 보면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 그 말씀에 순종하여 놋뱀을 쳐다 본 자는 다 살았습니다. 


이것은 구원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다셨고, 그를 바라보며 믿는 자마다 모두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들을 위해 실천 가능한 방법으로 은총을 베푸시고 당신의 긍휼을 나타내셨지만 인간은 늘 자신의 어리석은 이성만을 고집하며 하나님의 능력은 물론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구원마저도 거부해버립니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14절).
처음에는 노하여 그냥 돌아가려 했으나 결국 엘리사의 말대로 실행하여 놀라운 치유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부드럽고 깨끗하게 된 것은 오직 그의 순종의 결과였음을 놓치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대한 당신의 소감을 간략히 적어보십시오.
-나아만이 엘리사의 분부대로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었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병 나은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왜 흙을 요구했을까요(17절)?vv
 
주님, 엘리사 선지자의 처사에 마음이 몹시 상했던 나아만 장군이 그냥 떠나려 했으나 부하들이 설득하여 결국은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목욕을 하자 정말 그의 피부가 어린아이의 살처럼 깨끗하게 변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함을 뜻하는 일곱 번 순종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저희들 이 나아만의 얘기를 통해 더욱 철저한 순종의 믿음을 배우게 해주시옵소서. 
 
   
인간과 기계의 대결 1라운드
 
“처음 인간과 기계의 싸움은 러다이트(Luddite Movement)운동이다.
(중략) 1811년 말경 노팅엄 근처에서 시작되어 이듬해에 요크셔, 랭커
셔, 더비셔, 레스터셔 등으로 퍼졌다. 저임금에 시달리던 영국의 직물
노동자들이 공장에 불을 지르고 기계를 파괴한 사건으로 ‘기계 파괴
운동’이라고도 한다.”


홍성원 저(著) 《생각하는 기계 vs 생각하지 않는 인간》
(리드리드, 2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위해 발명한 기계가 인간 위에 올라서는 상황을 늘 두
려워하고 경계해 왔습니다. 러다이트(Luddite Movement)운동은 19세기
초반 영국에서 발생한 기계 파괴 운동입니다. 1811년에서 1817년 사이,
산업 혁명을 통해 등장한 방직기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데 분노한 섬유
공장 노동자들이 주축이 되어 네드 러드의 통솔하에 가면을 쓰고 공장을
돌아다니며 기계를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러다이트 운동은 기계제 생산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기계 사용은 대중화 되어갔고, 기계로
인해 산업은 갈수록 발전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컴퓨터 빅데이터 인공지능의 발달로 창의적인 능력을 지닌
극소수의 인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노동자가 최저 임금 수준에 머
물게 될 것이라며, 신 기술을 거부하는 ‘신 러다이트’적인 주장이 있
습니다. 공감이 갑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뒤로 돌지 않습니다.
기계의 발달로 인한 발전을 인정하고, 기계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시대를 이해하고 활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대를 넘어서는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잇사갈 지파처럼 ‘시세를 알고’ 그 시세 속
에서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이며”
(대상12:32)
   
누가복음 4장 8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Jesus answered, "It is written: 'Worship the Lord your God and serve him only.'"
Luke 4:8 [NIV]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기 전에는 이 세상에서
 우리 삶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것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길을 다 가기 전에는 결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끝내지 못한 계획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잘 참으면서 기다리라.
어느 날 왜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시는 일들을 확실히 알고 계심을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릭 워렌의 ‘결정하지 못함으로 받게되는 압력’에서-


하나님은 실수를 하시지 않습니다.
 잘못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나에게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아십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을 나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래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결과를 아십니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모든 고민거리, 어려움, 육체의 가시, 질병 
 우리가 “왜”라고 질문하는 모든 것들이
 어느 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아주 분명해 질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 왕하 5:1-5

 
 
03월 14일 (월)
   
나아만 장군 왕하 5:1-5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5.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vvv
 
동족을 대상으로 했던 이전의 사역과는 대조적으로 이 5장에서는 이방인을 상대로한 엘리사의 사역을 소개함으로써 그의 예언 활동이 굳이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만인의 구원을 겨냥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즉 아람 왕의 군대 장관인 나아만이 나병에 걸려 여종인 히브리 소녀의 소개로 엘리사를 찾아와 병 고침을 받은 사실과 또 사환인 게하시가 저지른 범죄 사실을 통해 이스라엘의 패역상도 함께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1절).
이처럼 나아만은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는 등 그간 많은 공적을 세운 유능한 군대 장관이었으나 불행하게도 나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3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에서 사로잡아 온 <어린 소녀>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명성을 이방 땅에 전파하도록 하셨습니다. 나약한 소녀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는 곧 이방에까지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 미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때로 하나님은 지극히 작고 비천한 자를 통해서도 당신의 나라를 확장해 가십니다.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 하니라>(7절).
물론 이스라엘 왕의 이 같은 분노는 아람 왕의 말을 오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낱 인간에 불과한 자신에게 그런 중대한 병을 고쳐달라고 한 것은 공연히 시비를 거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됩니다. 
언뜻 우리의 생각으로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게 무엇이든 주께서 시키시는 일이라면 일단 해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분부를 확실하게 이해되고 다 납득이 돼야 따르겠다고 생각하는 것에 우리의 중대한 착오가 있음을 깨닫는 거기에 비로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동족을 대상으로 했던 이전의 사역과는 대조적으로 이 5장에서는 이방인을 상대로한 엘리사의 사역을 소개함으로써 그의 예언 활동이 굳이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만인의 구원을 겨냥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즉 아람 왕의 군대 장관인 나아만이 나병에 걸려 여종인 히브리 소녀의 소개로 엘리사를 찾아와 병 고침을 받은 사실과 또 사환인 게하시가 저지른 범죄 사실을 통해 이스라엘의 패역상도 함께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1절).
이처럼 나아만은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는 등 그간 많은 공적을 세운 유능한 군대 장관이었으나 불행하게도 나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3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에서 사로잡아 온 <어린 소녀>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명성을 이방 땅에 전파하도록 하셨습니다. 나약한 소녀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는 곧 이방에까지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 미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때로 하나님은 지극히 작고 비천한 자를 통해서도 당신의 나라를 확장해 가십니다.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 하니라>(7절).
물론 이스라엘 왕의 이 같은 분노는 아람 왕의 말을 오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낱 인간에 불과한 자신에게 그런 중대한 병을 고쳐달라고 한 것은 공연히 시비를 거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됩니다. 
언뜻 우리의 생각으로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게 무엇이든 주께서 시키시는 일이라면 일단 해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분부를 확실하게 이해되고 다 납득이 돼야 따르겠다고 생각하는 것에 우리의 중대한 착오가 있음을 깨닫는 거기에 비로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vv
 
-<아람족>과 <아람어>에 관해 아는 대로 적어보십시오(16:5, 왕상 15:18-20, 사 36:11, 스 4:7, 단 2:4, 마 27:46, 막 5:41, 7:34).
-1절에 나오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는 말씀을 당신은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이스라엘 왕이 자신의 옷을 찢은(7절)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v
 
주님, 여호와는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만민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여호와는 오직 유능하고 큰 자만이 아니라 포로로 잡혀간 어린 소녀를 통해서도 역사하심을 깨닫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 나아만 장군 얘기가 저희에게도 큰 도전과 은혜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이방인을 통해서도 그 영광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뜻을 통해 우주와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경륜을 바르게 체험하는 저희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소비자를 알라 이 땅을 알라
 
“포노 사피엔스가 주도하는 디지털 문명의 가장 큰 특징은 ‘기업이
왕’인 시대에서 ‘소비자가 왕’인 시대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손에
쥔 스마트폰 덕분에 어느 기업이든 나를 만족시키는 서비스만 제공하면
순식간에 이동 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이죠.”


최재붕 저(著) 《포노 사피엔스》(쌤앤파커스, 134쪽) 중에 나오는 구절
입니다.
스마트폰으로 거의 모든 생활을 하는 신 인류 포노 사피엔스의 등장은
미디어 유통 서비스와 제조업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디지털 소비문명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하여 자본, 방송, 소위 말하는 시스템, 권력이 지
배하던 시대가 서서히 지나가고, 소비자가 왕이 되는 시대가 열렸습니
다. 따라서 소비자의 개별적인 요구나 주문에 맞추어 바로 물품이나 서
비스를 제공하는 ‘온 디멘드(On-demand)’사업이 서서히 대세가 되어
갑니다. 대표적인 것이 독일의 아디다스입니다. 지금까지는 기업에서
신발이나 옷 등을 생산해서 시장에 내놓으면 소비자가 구입하는 방식이
었습니다. 그런데 아디다스의 ‘스피드 팩토리’는 온디맨드 방식으로
소비자가 디자인을 선택하면 로봇과 3D 프린터를 이용해 제품이 생산
되고 택배로 소비자의 집 앞까지 배송합니다. 그 시간이 채 24시간이
걸리지 않아 스피드 팩토리라고 합니다. 그러면 재고관리 비용, 소매점
마진, 도소매점의 유지비용을 줄일 수 있어서 소비자는 지금보다 낮아진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현대의 기업들이 소비자가의 취향을 알기 위해 모든 빅데이터를 활용해
분석하듯이, 현대의 그리스도인들 또한 전도 선교 구제를 위해 이 땅의
흐름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시대를 잘 읽었습니
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 같이 되었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자
신도 율법 아래 있는 자처럼 보이게 하였고, 약한 자들에게는 자신도
약한 자처럼 되었습니다. 아덴에서는 아덴사람들의 성정을 파악하여 철
학적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어떻게 하든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
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을 잘 알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행17:22)
   
누가복음 4장 4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Jesus answered, "It is written: 'Man does not live on bread alone.'"
Luke 4:4 [NIV]
   
어느 날 영원의 밝은 빛 밑에서
삶은 길을 따라가는 여행이라고 한다. 
잠언 4장 18절 말씀을 보시라.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새벽에 햇빛이 완전히 밝은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삶도 처음에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감에 따라 더욱 더 분명해진다.
 어느 날 완전히 밝게 비치는 정오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을 향하신 삶의 길을
 분명히 볼 수 있게 하실 것이다. 
-.릭 워렌의 ‘결정하지 못함으로 받게 되는 압력’에서-


나의 삶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을 때, 
또 위험과 혼돈한 현재 상태에서
 이런 삶이 무슨 가치가 있을 것인가 하며
 의아해지는 현실, 분명하지 않아 혼란할 때가 있습니까?
어느 날 영원의 밝은 빛 밑에서
 삶을 밝혀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내 삶의 그림 전체를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특별히 선택하신 
삶의 목적을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