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든 떡 왕하 4:32-44
03월 09일 (수)
처음 만든 떡 왕하 4:32-44
32.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33.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34.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35.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 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36.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이르되 네 아들을 데리고 가라 하니라 37.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38.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39.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 들포도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호박을 따서 옷자락에 채워가지고 돌아와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그들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 40. 이에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더니 무리가 국을 먹다가 그들이 외쳐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죽음의 독이 있나이다 하고 능히 먹지 못하는지라 41. 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이르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독이 없어지니라 42.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그가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43. 그 사환이 이르되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44. 그가 그들 앞에 주었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았더라 <엘리사가 ...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를 하고 눈을 뜨는지라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이르되 네 아들을 데리고 가라 하니라>(35-36절).
수넴 여인은 엘리사의 방에서 자신의 아들이 다시 살아난 것을 보고 엘리사 앞에 <엎드려 절했다>(37절)고 합니다. 선지자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감사의 표시요 또 하나님에 대한 찬양의 태도였을 것입니다(시 110:4, 요 11:4). 물론 엘리사의 죽은 아이를 살리는 모습과 주님이 죽은 자를 살리실 때의 모습은 차이가 큽니다. 엘리사는 여러 가지 행동을 취한 반면 주님은 언제나 말씀 한 마디로 충분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의 신성과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 선지자의 영성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이르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독이 없어지니라>(41절). 이 치명적인 독이 든 국을 해독시킨 사건은 필요 때마다 우리의 도움으로 다가오는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의 역사를 다시 한 번 증거한 이적이고, 길갈의 흉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증하고 타락한 행위를 일삼아 나타난 일종의 영적 빈곤의 모형을 드러낸 것으로 하나님은 그 어떤 해로운 독에서도 반드시 그의 택하신 백성들을 지키시고 구하신다는 사실을 확인시키신 계시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그가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그 사환이 이르되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42-43절). 보리떡 20개와 채소 한 자루로 일백 명이 먹기에는 대단히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실제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이적이 바로 주님이 행하신 오병이어의 이적의 한 모형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오늘 이 본문을 통해 다시 한 번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와 차고 넘치는 자비하심을 깊이 느끼고 깨닫게 됩니다. 오늘날도 인간의 이성으로 하나님의 놀라우신 권능과 은혜를 제한하거나 불신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발견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죽은 아이를 살린 본문의 엘리사의 이적과 막 4:39-42, 눅 7:13-15, 요 11:43-44 등이 전하는 주님의 이적을 한번 비교해보십시오.
-<처음 만든 떡>을 선지자에게 드린 행위(42절)의 의미를 레 23:9-14, 출 34:26, 신 26:3-10 등에서 확인해보십시오. -보리떡 20개의 이적과 마 14:13-21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이적을 비교해보십시오. 주님, 주님은 저희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의 독성을 제거하고 해독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또 엘리사가 보리떡 20개로 백 명의 굶주린 사람을 배불린 것처럼 주님은 저희에게 먹을 것을 주사 지쳐 쓰러지거나 누구도 주려 무너지지 않게 하십니다. 부디 일용할 양식을 보장하사 저희가 늘 감사하며 기뻐하며 주님의 성호를 찬양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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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신 인류시대
“미국의 대형 백화점은 문을 닫았고, 100년 전통의〈타임〉도 파산 후
인수되었다. 우리나라의 한국씨티은행은 무려 90개의 지점을 폐쇄했다. 이제 사람들은 물건을 사러 마트나 백화점을 가지 않고,종이신문을 보지 않으며, 돈을 입금하기 위해 은행에 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수십 년 동안 유지되던 일상의 모습들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달라진 걸까? 이 모든 것은 스마트폰을 손에 쥔 신인 류, 바로 포노 사피엔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최재붕 저(著) 《포노 사피엔스》(쌤앤파커스, 24쪽) 중에 나오는 구절 입니다. 2015년 3월 영국의 유명한 대중매체 《이코노미스트》는 ‘스마트폰의 행성(Planet of the phones)’이라는 표지 기사를 통해서 ‘포노 사 피엔스’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했습니다. ‘지혜가 있는 인간’이 라는 의미의 호모 사피엔스에 빗대어, ‘지혜가 있는 폰을 쓰는 인간’ 이라는 의미의 ‘포노 사피엔스’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스마 트폰이 없이는 생활하는 것이 힘들어지는 새로운 인류 문명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말한 것입니다. 스마트폰은 불과 10년 사이에 전 인류의 생활에 가히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변화를 불러오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인한 폐해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제 스마트폰은 누가뭐래도 우리의 새로운 장기 (臟器)가 되어 우리가 가장 가까이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선지자들이 현실을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듯이, 스마트폰의 폐해를 줄이고, 스마트 폰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시대의 사명이 있습니 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
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벧전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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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2편 5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Why are you downcast, O my soul? Why so disturbed within me? Put your hope in God, for I will yet praise him, my Savior and my Go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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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참 기독교인인지 살펴보라
요즈음엔 교회와 기독교인을 향해
비판이 소리가 굉장히 많고 크다. 그것은 기독교의 교리나 신앙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마음을 잃어버려서 빈곤해진 그리스도인과 교회들이 보여주는 추한 모습 때문이다. 그러나 추한 교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는 정직하고 신실한 사람들이 있다. 참 기독교인 주변에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많다. 더불어 여러분에게 한 가지를 권하고 싶다. 참 기독교인들을 찾아보고 나 자신이 참 기독교인인지 살펴보라. -임종학 목사의 ‘ 정원사의 편지’에서- ‘그 때에 내가 참 믿는 자를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시며 세속화한 세상 속에서 찾기 힘든 하나님의 사람들에 관해 예수님은 이야기하십니다. 그러나 참 하나님의 사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참 예수의 사람을 찾고 만나며 관계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만남이 될 것이고 이런 만남으로 인해 참 믿음의 삶들이 활발해질 때 교회와 기독교는 세상으로부터 비판이 아니라 존경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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