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금송아지 왕상 12:21-33

鶴山 徐 仁 2021. 11. 17. 19:26

금송아지 왕상 12:21-33

 
 
11월 17일 (수)
   
금송아지 왕상 12:21-33


21.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다 온 족속과 베냐민 지파를 모으니 택한 용사가 십팔만 명이라 이스라엘 족속과 싸워 나라를 회복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돌리려 하더니
22.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3. 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 온 족속과 또 그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24.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돌아갔더라
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26.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31.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32.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33.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르엘을 건축하고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25-26절).
여로보암이 이렇게 세겜을 북왕국의 정치적 구심점으로 삼았지만 여전히 그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 것이 있었습니다. 다윗 이래로 이스라엘의 신앙의 중심지로 자리잡아 온 예루살렘의 종교적 기능 때문이었습니다. 여로보암으로서는 남왕국과의 철저한 결별을 위해 북왕국에도 예루살렘 못지 않은 종교적 구심점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게 바로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 정책은 경건한 신앙인들에게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드려져 그들 중 상당수는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건 대탈출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대하 11:13-16).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28-29).
과거 광야 시절 이스라엘은 시내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고 모세를 통해 나타내신 여호와의 언약도 거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이 지금 모세 당시의 그 패역했던 이스라엘의 상황을 의도적으로 상기시킴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언약을 거부하도록 종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솔로몬 말기의 부패상과 르호보암의 폭정 등을 경험한 백성들로서는 더 이상 하나님과의 언약이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 여로보암의 설득이 그럴 듯하게 들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목전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하나님마저도 팔아버린 여로보암의 죄악은 결코 형벌을 피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을 북왕국의 예배의 중심지로 택한 것은 그 두 장소가 모두 전통적으로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고, 또 벧엘은 북이스라엘의 남방 경계 지역에, 단은 북방 경계 지역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디서나 오가기가 편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32절). 
이처럼 이스라엘의 정치적 분열이 곧 절기의 분열, 종교적 분열까지도 야기한 것입니다. 
 
-본문 22절에 등장하는 <스마야> 선지자에 관해 아는 대로 적어보십시오(대하 12:15).
-분열된 이후에도 남왕국 유다는 여전히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어디에다 수도를 건설했습니까(25절)?
-본문 28절과 출 32:4 말씀을 비교해보시고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숭배에 대한 당신의 견해를 간략히 적어보십시오.
 
주님, 북왕국의 여로보암이 분열 이후에도 계속 예루살렘을 순례하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하기를 원하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잡아두기 위해 벧엘과 단에 산당을 짓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안치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거기서 분향하고 제사하게 했다고 합니다. 
왕이 나서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 앞에 제사하게 함으로써 북왕국 백성 모두를 우상 숭배의 죄악에 빠뜨린 것입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백성들의 영원한 운명에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를 저희로 다시 한 번 깊이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좋아요’
 
“지금도 페이스북에는 ‘좋아요’를 많이 받아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죠.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행복이며,앞으
로는 그 인정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AI로 변할 수도 있을 겁니다.”


스가스께 마사노부 저(著) 현선 역(譯) 《동물과 기계에서 벗어나》
(항해, 10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남의 평가에 자신의 행복을 맡긴다면, 자신이 진짜 꿈을 모르고 남의
꿈을 모방하며 사는 것과 동일합니다. 이런 사람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나의 모습,혹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만들어내는 ‘가짜 자
기’에 휩싸여 살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욕망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무수한 타자의 조합이고 우리의 자아는 타자들의 욕망으로 조
립된 자아일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타자와의 관
계성은 필수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너무 강할수록 자신의 잠재력의 상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주신 최고의 명품입니다.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살
려고 하는 것은 모조품으로 살려는 것과 같습니다. 가장 나다운 삶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을 좇아 사는 삶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3:14)
   
요한계시록 2장 3절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You have persevered and have endured hardships for my name, and have not grown weary.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은 요셉을 버리신 적이 없습니다. 형들이 구덩이에 버릴 때도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애굽으로 버려질 때도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감옥으로 버려질 때도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그를 버리지 않고 보내셨습니다. 바로 앞에 설 때까지 하나님은 그를 치밀하게 보내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아무도 버리지 않으십니다. 어떤 상황을 만나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이루어 질 것입니다.
-최병락의 [다시 시작하는 힘, 은혜] 중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다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신뢰합니다. 그래서 믿고 기다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빚어가시기 위해 모든 상황속에 보내십니다. 다만 이것을 알고 순종하므로 믿음을 드릴 때를 구분하는 것은 성도의 몫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나타내기 위해 우리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