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명령과 금식 에 9:29-32

鶴山 徐 仁 2021. 11. 19. 18:57

명령과 금식 에 9:29-32

 
 
11월 19일 (금)
   
명령과 금식 에 9:29-32


29. 아비하일의 딸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가 전권으로 글을 쓰고 부림에 대한 이 둘째 편지를 굳게 지키게 하되
30. 화평하고 진실한 말로 편지를 써서 아하수에로의 나라 백이십칠 지방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에게 보내어
31. 정한 기간에 이 부림일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는 유다인 모르드개와 왕후 에스더가 명령한 바와 유다인이 금식하며 부르짖은 것으로 말미암아 자기와 자기 자손을 위하여 정한 바가 있음이더라
32. 에스더의 명령이 이 부림에 대한 일을 견고하게 하였고 그 일이 책에 기록되었더라
 
<부르>는 <제비를 뽑다>할 때의 <제비>고, <부림>은 <부르>의 복수형입니다.  
본문은 아각 사람 하만이 바사 왕국 내 모든 유다인들을 진멸하기 위해 제비뽑아 정한 날이  도리어 유다인 구원의 날, 축제의 날이 되었기 때문에 그 반전의 날을 기리기 위해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부림에 관한 <화평하고 진실한 편지>를 써 전국의 유다인들로 하여금 정한 기간에 함께 부림절을 지키며 성대하게 그 날을 기념하게 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쓴 편지의 내용을 보면 <명령한바>와 <금식하며 부르짖은 것>이 라는 내용이 나옵니다(31절). 언제나 이 두 가지 요소가 기적을 부르고 부림절이라는 축제를 만듭니다. 바사의 유다인들이 모르드개와 왕후 에스더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던들, 그래서 그들이 금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았던들 제비 뽑아 정해 놓은 유다인 집단학살의 날이 도리어 대적들의 죽음의 날이 되고, 모르드개를 달기 위해 세운 높은 장대에 하만이 달리고, 하만이 장악했던 바사의 권력 서열 2위 자리가 모르드개의 것이 되는 대반전이 가능했을까요? 


이 시대도 마찬가집니다. 명령에 순종하고 금식하며 부르짖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는>(22절) 기적이 나타납니다. 사실 우리는 이 에스더서 어디에서도 눈에 띄는 하나님의 이름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손길은 결코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만은 오직 자신의 감정과 탐욕에 따라, 악의에 따라 행동했고, 아하수에로 왕도 거기서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과 명령대로 처신했습니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은 금식하고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려 몸부림쳤습니다. 결국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유수한 부림절이라는 기념일, 축제일을 제정하게 한 것입니다. 
<에스더의 명령이 이 부림에 대한 일을 견고하게 하였고 그 일이 책에 기록되었더라>(32절).
 
-말씀에 대한 순종과 금식하며 부르짖는 기도가 결국은 문제해결과 감사와 기쁨의 축제를 가능케 한다고 믿으십니까?
-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역사와 모든 사건 배후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확신하십니까?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대반전을 경험한 당신의 개인적인 부림절 없으십니까? 
 
주님, 저희도 에스더처럼, 모르드개와 바사의 유다인들처럼 말씀과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게 하시옵소서. 
언제나 정당하고 옳으신 주님 말씀에 순종하며 결단하며 살게 해주시옵소서. 
또한 금식하며 기도하게 하사 저희의 절절한 부르짖음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큰 은혜도 체험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그래서 저희로 하여금 지금도 하나님의 반전과 역전의 은혜를 체험하는 부림절의 축복을 누리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창의성의 바탕 ‘의인화’
 
“휴대전화를 휴대전화로만 봐서는 더 나은 휴대전화가 나올 수 없습니
다. 이때 시인들은 휴대전화를 사람으로 바꾸어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새로움을 찾아내고 만들어야 하는 시인들에게 의인화는 생각의 기초이자
창조와 창의의 바탕입니다.”


강신장 황인원 공저(共著) 《감성의 끝에 서라》
(21세기북스, 135-13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내가 사물이 되어보고, 사물을 사람처럼 여겨보는 ‘의인화’는 새로운
관점과 공감을 일으키는 창의성을 낳을 수 있습니다.  
“만드는 제품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세요. 제품을 사람으로 만들고 제
품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할지,그런 말을 왜 하고 싶어 할지,그런
말을 어떻게 하고 싶어 할지(중략) 생각해보는 것입니다.”(139쪽)
창의성은 다르게 보고, 낯설게 보는 관점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르게 보고, 낯설게 보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의인화’입니다.
하나님을 인간처럼 묘사한 신인동형론(神人同形論 anthropomorphism)적
표현이 성경에 종종 나옵니다. 하나님을 ‘의인화’한 것입니다. 하나
님은 자신을 계시하시되 인간의 수준에서 인간이 이해하고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인화는 우리와 공감하기
위한 하나님의 크신 배려 중의 하나입니다. 이렇듯 상대편의 입장에
서서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을 ‘공감’이라고 합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은 이웃과의 공감을 싫어하고 자신들이
의인이라는 교만한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들은 나는 그들과 레벨이
다르다고 하면서 이웃을 향해 담을 쌓으며, 따로 서서 기도하였습니다.
(눅18:11) 급기야는 예수님마저도 거부했습니다.
‘의인화’는 ‘창의성’의 시작입니다. 의인화는 ‘공감’입니다.
그런 즉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이 창의성의 시작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
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히4:15a)
   
야고보서 4장 17절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Anyone, then, who knows the good he ought to do and doesn't do it, sins.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은
나폴레옹은 황제가 되었을 때, 스스로 왕관을 썼다고 한다.
 그만큼 믿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죽을 때, “조세핀, 내가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 한 사람 뿐이었소.”라고 말했다. 
조세핀 이외에는 믿을만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말이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인생은 실패작이다. 
결국 모든 사람으로부터 버림받고 
아무도 그 사람을 따르지 않는다.
-작자 미상의 글 ‘바울 되는 길’에서-


나폴레옹은 크게 일하고 화려하게 살았지만 
그의 말년은 쓸쓸하고 비참했습니다
 능력과 은사 중의 최고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입니다. 
오직 나 밖에 모른다는 것은 실패자의 길입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해주고 배려해 주며
 다른 사람의 믿음을 위하는 것을 
보람으로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이 
승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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