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사망 국적
1929. 5. 4, 벨기에 브뤼셀 |
1993. 1. 20, 스위스 톨로세나츠 |
미국 |
[스크랩] 오드리 헵번, 그녀의 일생
출처 : 오드리 헵번, 그녀의 일생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무화과 ・ 2021. 8. 17. 8:14
출처: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오드리 헵번
(Audrey Hepburn | Audrey Kathleen Ruston)
출생-사망 1929년 5월 4일, 벨기에 - 1993년 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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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헵번이 열 살이 되던 해 1939년,
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고
독일군은 모든 물자와 식량공급을 끊었다.
그녀는 열 여섯살까지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그녀의 마른 몸매는 다이어트가 아닌 전쟁으로 인한
'영양실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삭막한 전쟁터 속에서 만난건 바로
'유니세프'였다.
그때부터 시작된 유니세프와의 인연을 이어 배우의 길을 접은 뒤, 1988년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임명되어
어린이를 돕기위해 전세계를 여행했다.
오드리 헵번은,
170cm라는 큰 키로 인해 프리마돈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발레리나의 꿈을 포기한다.
그리고 어머니를 돕기 위해 영화의 단역으로 출연하며 관계자들의 눈에 띄기 시작한다.
<GIGI>라는 연극에서 주연을 맡으며 대성공을 거둔 후,
<로마의 휴일>의 감독인 '윌리엄 와일러'의 눈에 띄게 된다.
그렇게 <로마의 휴일>을 통해 대스타의 길을 걷게 된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뉴욕 비평가 협회상 등
총 10개의 상 수상
출처: 코리아 데일리
하지만, 대스타의 길을 걸었던 그녀의 결혼생활은 쉽지 않았다.
두 번의 이혼 끝에, 그녀는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했고
구호활동 중 소말리아에서 대장암 판정을 받은 후
1993년, 우리의 곁을 떠났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지 28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들에게 세기의 연인으로 회자되고있다.
그녀가 그렇게 기억될 수 있었던 건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삶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
'100억을 주고 단 한사람을 나의 저녁식사에 초대할 수' 있다면,
오드리 헵번을 초대하고 싶다.
그녀의 아름다움 뒤에 감추어진 진짜 마음은 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다.
모든 장미에는 가시가 있듯 오드리 헵번의 인생에도
가시가 만든 굴곡이있다.
그 길을 따라 오드리는 많은것을 배우고 경험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드리는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며 아름답게 생을 마감했다.
'그녀가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했기 때문에, 굉장한 미모의 여배우였기 때문에'
이런 수식어들과 상관없이,
그녀의 삶을 같이 걸어보니 왜인지 모를,
오드리 헵번이라는 사람자체에 관심이 기울기 시작했고
그녀를 기억할 것이다
출처
[유니세프 창립 70주년 기념] 인생의 시작과 끝을 유니세프와 함께 한 오드리 헵번
www.unicef.or.kr
세기의 연인, 오드리 헵번의 알려지지 않은 삶과 명언
www.unice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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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드리 헵번, 그녀의 일생|작성자 무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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