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중산층이 사라지는 나라
상위층이라 지원금 못 받는데 현실은 전셋값 감당 못 할 처지
중산층 생활은 갈수록 팍팍… 정부는 이들의 쇠락 가속화
입력 2021.09.08 03:00
6일부터 5차 재난지원금 신청이 시작됐다. 지급 대상이 되는지 확인해 보면서, 새삼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가늠해 보게 된다. 상위 12%에 속하는지, 아니면 하위 88%에 속하는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이 중엔 돈을 못 받아 느끼는 서운함보다 자신의 경제력이 상위 12%에 포함돼 놀라는 이가 적지 않다.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 신청이 6일부터 시작된 가운데 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에 재난지원금 사용처 안내문이 붙어있다./연합뉴스
지인 중에 20대 그룹 계열사에 다니며 아내와 맞벌이하는 사람이 있다. 자녀가 둘인 그는 이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부부 합산 건강보험료가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지금 3억원 이상 오른 서울 마포 아파트 전셋값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 만큼 올려주지 않으면 주인이 들어오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은행에 대출을 알아봤더니, 서울 외곽에 작은 집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한다. 전셋값을 구하지 못하면, 대입·고입 시험을 코앞에 둔 자녀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마저 이사 날짜가 안 맞으면 오피스텔 같은 곳에서 몇 달 월세살이를 피하기 어렵다. 그는 “상위 12%에 속하는 사람이 ‘전세 난민’이 되는 사회가 정상인가”라고 묻는다.
“돈(지원금)을 받아 좋긴 한데, 씁쓸하다”고 말하는 이도 만났다. 스스로 중산층이라 생각했는데, 졸지에 ‘하위층’으로 공인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이때 방점은 ‘88%’보다 ‘하위’라는 말에 찍힌다.
이런 웃지 못할 상황이 된 것은 여당은 전 국민, 정부는 하위 80%를 주장하다 어정쩡하게 88%로 타협했을 때부터 예고된 것인지 모른다. 나중에 선거가 임박하면 ‘하위 95’% ‘하위 99%’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코미디 같은 숫자 놀음도 문제지만, 더 우려되는 건 국민을 이렇게 상·하위층으로 양분하는 것이 일으킬 부작용이다. 사람들 머릿속에서 점점 ‘중간’이라는 인식이 옅어지는 것이다. 명목상 한국의 중산층 비율은 대략 60% 정도 된다. 하지만 각종 사회 조사에 따르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체감 중산층’은 40% 정도에 그친다. 어지간히 벌어도 급등한 집값에 사교육비 대느라 휘청이다 보면, 스스로 하위층이라 느끼게 된다.
중산층의 쇠락은 사회 안전판이 얇아져 사회적 양극화가 심각해진다는 뜻이다. 정상적 국가라면 중산층을 키우기 위해 한정된 자원을 쓰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현 정부는 반대다. 이번 코로나로 중산층에서 탈락할 위기에 놓인 계층을 꼽자면 단연 자영업자들이다. 이들에 대한 선별적이고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소상공 133만 사업체에 직접 지원하는 희망회복자금(4조2000억원)은 5차 재난지원금 예산의 40%가 채 안 된다. 부동산 정책도 상위층 때려잡겠다고 어설프게 몽둥이를 휘두르다 중산층만 때려잡고 있다. 중산층이 소득 33%를 원리금 상환에 쓴다는 가정 아래 20년 만기 주택 담보대출을 받아 살 수 있는 서울의 아파트가 전체의 3.9%에 불과하다. 성실히 일해서는 살 수 있는 집이 극히 드물다.
재난지원금은 결국 선거를 앞둔 집권당의 정치적 이유로 결정됐다. 임박한 선거에서 당장 득표에 도움이 되고, 재정 적자 등의 피해는 시간을 두고 나타날 것이다. 소 떼가 훑고 지나간 풀밭처럼 황폐해질 재정이야말로 ‘공유지의 비극’이라 불러야 한다. 재정을 메워야 하는 것은 결국 국민이다. 당장 내년부터 청구서는 돌아온다. 조세 부담률은 올해 20.2%에서 내년엔 20.7%로 오른다. 재난지원금도 ‘내돈내받’(내 돈 내고 내가 받는)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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