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여론을 ‘졸속’ 수렴하는 나라
입력 2021.09.07 03:00
윤순진 2050 탄소중립위원회 공동위원장./뉴시스
“이런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는 나라가 없다.” 윤순진 2050탄소중립위원장이 최근 한 인터뷰에서 자랑 삼아 한 말이다. 윤 위원장은 8월 탄소 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발표한 뒤 10월 최종안을 확정하기까지 “수백 개 넘는 단체와 간담회를 갖고 ‘탄소 중립 시민회의’를 통해 여론도 수렴한다”면서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그 ‘정신 승리’ 포장지를 걷어보면 결함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기간이 너무 짧다. 준비 과정을 거쳐 무작위로 뽑힌 시민 530여 명이 집중 학습·토론을 통해 탄소 중립 시나리오에 대한 의견을 내는 데 주어진 시간은 한 달이다. 전문가도 아닌 일반인들이 한 달 만에 과연 그 복잡한 내용을 다 파악하고 견해를 정리할 수 있을까.
더구나 ‘이런 나라가 없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프랑스에는 기후시민협약(CCC)이 있고 영국 기후의회(CAUK)도 비슷하다. 프랑스 기후시민협약은 2019년 10월부터 작년 6월까지 시민 150명이 1990년 대비 온실가스 40%를 감축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한 협의체다. 올 1월 460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9개월 동안 7차례 회의를 했다. 영국 기후의회는 시민 108명이 지난해 1~5월 2050 탄소 중립 방안을 토론해 같은 해 9월 556쪽 제안 보고서를 냈다. 6번 회의가 열릴 땐 주말 이틀을 꼬박 썼다. 경제·산업·농업·환경·에너지·교통 등 각 분야 전문가 자문단 47명이 함께했다.
탄소 중립 시민회의는 교육 내용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6시간 분량 동영상 자율 학습이 전부인 데다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다룬 수업은 3시간에 불과하다. 다른 교육 자료는 오래된 방송·강연 영상으로 채웠고, 참가자들끼리 토론하는 건 한 차례만 잡혀 있다.
강사진은 친정부 성향 일색이다. 결론을 정해놓고 국민을 들러리 세우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인다.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원전 공사 재개를 결정했지만 정부는 오히려 설문 문항 하나에서 ‘원전 축소’가 8%포인트 높게 나왔다며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는 근거로 활용했다. 탄소 중립은 원전 건설을 재개할 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하는 것보다 훨씬 장기적이고 광범위한 문제다. 이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정책을 한 달짜리 시민회의에 부치는 구상 자체가 무리수라는 지적도 많다.
행보 자체도 너무 조급하다.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한 뒤 연말 부처합동계획이 발표됐다. 올 1월부터 6개월 동안 국책 연구 기관 중심으로 시나리오 밑그림을 그렸는데, 5월 말 탄소중립위를 꾸린 지 석 달도 안 돼 검토를 끝내고 초안이 나왔다. 이번에는 두 달 만에 이해관계자 의견과 여론을 반영해 보완하겠다고 한다. 윤 위원장 말대로 ‘이런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는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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