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크리스천의 환경사랑 창세기 1:27-31

鶴山 徐 仁 2021. 6. 12. 11:45

크리스천의 환경사랑 창세기 1:27-31

 

 

06월 12일 (토)

   
크리스천의 환경사랑 창세기 1:27-31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지구촌이 환경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는 앞으로 30년 뒤에는 해수면의 상승으로 나라가 지도에서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처럼 환경오염과 자연파괴를 하지 않았지만, 우리들의 잘못으로 나라를 잃게 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오존층이 파괴되고 각종 질병과 가뭄과 홍수와 지진이 일어나는 것도 이런 영향과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원인은 인간의 욕심입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는 과정에서 개발지상주의와 현대과학 기술문명의 결과입니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인간과 자연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공존해 왔는데 인간이 욕심으로 말미암아 환경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관계가 단절되면서부터 이런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제 더 이상 망가지지 않도록 이쯤에서 각성하고 우리 모두가 새로운 자세를 가지고 대처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 대안은 인간과 자연이 동반자적인 세계관을 가져야 합니다. 인간중심의 주도적인 세계관을 가지면 계속 자연을 파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생태중심적인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면 이것도 문제입니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자연은 인간의 노예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도 아니며 신앙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적인 존재인 인간이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인 자연을 잘 다스리고 아름답게 개발하고 관리하고 보호하는 동반자적인 윤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무책임한 개발이나 마구잡이식 지배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자연을 바라볼 때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또한 창조의 신앙으로 자연에 대한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나를 포함한 모든 대자연은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세계의 모든 자연은 하나님의 정원입니다. 우리는 주인되시는 하나님의 소유된 그 정원을 관리하는 정원사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최초의 작품입니다. 창세기 1장 “태초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육일동안 창조하시고 말씀하시는데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멋지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작품을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지금 엉망으로 만들고 망가트리고 있다면 이것은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실천해야 합니다. 본문 28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만물을 다스려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잘 보관하고 관리하고 그렇게 보살피라는 의미입니다.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서 크리스천이 먼저 모범을 보여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주 하나님, 너무 욕심따라 생각없이 살아 환경파괴에 동참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앞에서 청지기 의식도 없이 편리함만을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이제 자연과의 동반자적인 삶을 살아가게 하시고 창조신앙으로 책임감 있는 삶을 살아 주님이 기뻐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꿀벌들은 춤으로 말을 한다. 이른 아침 꿀을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다 
돌아온 정찰벌이 추는 춤을 읽으면 꿀 있는 곳을 알게 된다.  그런데 
종종 엄청나게 좋은 꿀의 출처를 발견한 정찰벌은 몇 시간 또는 심하면 
하루 종일 계속해서 춤을 춘다.”


최재천 저(著)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효형출판사, 23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고수(高手)에 이를수록 자연스럽습니다.  어느 분야이건 고수를 보면 
춤을 추는 듯이 일하고,  노는 것같이 유려합니다. 
자바(java)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였고, 마림바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킴 폴리제(Kim Polese)라는 여성이 있습니다. 생물학을 전공했고, 
당찬 얼굴 빛과 자신감으로 많은 여성들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춤을 좋아한다고 하는 그녀에게 어느 기자가 성공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나는 일하는 동안 춤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똑같은 질문을 춤의 여제 이사도라 덩컨에게 던졌다면 
“나는 춤추는 동안 일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고 했을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기존의 일 벌레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일을 놀이처럼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축제의 인간,  놀이와 일을 하나로 생각하는 인
간,  종일토록 춤을 추듯 일하는 인간.
자신이 태어난 소명을 발견하고 그 일에 집중하면 
춤추는 인생이 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끊임없이 감사를 가르치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감사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훈련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훈련 받지 못했다'는 뜻은 '감사가 무엇인지, 
감사의 표시는 어떻게 하는지, 
그런 표현을 왜 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도 "감사하라, 감사하라, 감사하라" 
끊임없이 감사를 가르치고 있다.
- 세상 윤리는 사람에게 감사하라고 가르친다.
- 우상 종교는 자연에게 감사하라고 가르친다.
- 교회에서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사람(이웃)에게 
감사하라고 가르친다.
 -고신일 목사의 ‘하나님의 뜻이니라’에서-


 삶 속에서 감사를 말하며 
감사를 표현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를 가르치며 사십시오. 
 부모가 자식에게, 어른은 젊은이들에게, 
목회자는 교인들에게 감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목회자가 감사를 가르치려고 감사절에 '배, 감, 사과'를 
가져오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없어서 가져오라고 한 것이 아니고  
그런 것을 준비하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고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