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98] 법을 지켜야 할 이들이 법을 외면하고 거짓말한다면
김규나 소설가
입력 2021.02.10 03:00
아라빈드 아디가 ‘화이트 타이거’ .
나흘 전에 법정에 갔었어. 판사가 무슨 명령을 내렸는데 변호사들 마음에 전혀 들지 않았던 모양이야. 대놓고 그 명령을 거부하더라고. 아주 광적으로 변해서 판사를 끌어내리더니 마구 두들겨 패더라니까. 판사가 주재하는 바로 그 법정에서 말이야. 아니, 사람들이 판사를, 그것도 법정 안에서 두들겨 팬다면, 우리들의 미래가 도대체 어떤 꼴이겠는가? 아라빈드 아디가 ‘화이트 타이거’ 중에서
지난 4일 법관 탄핵이 국회에서 강행되었다. 해당 판사는 일찌감치 사의를 표명했고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은 데다 며칠 후면 임기가 만료되는 터였다. 그런데도 탄핵이 가능했던 건 정치적 판세를 계산한 대법원장이 그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가 입맛 따라 대통령이든 판사든 마음대로 탄핵할 수 있는 권력 집단임을 또 한 번 세상에 각인시킨 사건이다.
2008년에 출간된 아라빈드 아디가의 소설 ‘화이트 타이거’는 부패할 대로 부패한 인도의 정치계와 그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을 신랄하게 들춰낸다. 운전기사 발람은 원하는 만큼 뇌물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엄청난 세금을 부과한 정치인들에게 현금 다발을 선물하러 다니는 주인을 모신다. 한번은 장관의 보좌관을 차에 태우게 되는데 그가 판사 구타 사건을 이야기하며 나라의 미래를 걱정한다. 하지만 그야말로 더 많은 뇌물과 향응을 바라는 가장 썩은 정치인 중 하나일 뿐이다.
한때는 국회의원과 판사처럼 법과 관련된 사람들은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의 사도인 줄 알았다. 그러나 국회는 자기들에게 이로운 법만 만들고 법조인은 권력 앞에 엎드려 진실과 자긍심을 스스로 내던진 지 오래다. 그러니 소설 속 판사처럼 누군가의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내렸다고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진들 누굴 탓할 수 있을까? 일부 법조인과 국회가 ‘사법부 바로 세우기’를 외친다지만 법의 이름으로 거짓말하고 진실에 침묵하며 혼란에 앞장선 건 그들 자신이 아니었는지. 눈앞의 손익에만 급급한 당사자들의 현실 인식이 안타깝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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