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하나님의 프로포즈(호 2:14-20)

鶴山 徐 仁 2021. 1. 16. 07:20

하나님의 프로포즈(호 2:14-20)

 

 

01월 16일 (토)

   

하나님의 프로포즈(호 2:14-20)


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8.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하나님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고멜 같은 이스라엘을 향해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16절)고 하십니다. 

또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10-20절)고 하셨습니다. 
여기 나오는 <남편>은 히브리어로 <이쉬>라고  
하는데, 이것은 <여자를 소유할 수 있는 법적
지위를 가진 남자>라는 뜻이 아니라 <여자의 상대적 의미인 파트너로서의 남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음란한 여인과도 같은 이스라엘 혹은 오늘 우리들을 군림하는
주인의 지위로서가 아닌 동등한 파트너로서 보다 긴밀한 사랑을 나누는 <연인관계>, 
명실상부한 <부부관계>로 
세워가시겠다는 약속이십니다. 

당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는 간음한 아내와 경건한 남편의 관계였는데 과연 이게 가능할까요?


더구나 아내가 집을 나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둘씩이나 낳았습니다. 누구도 용서하거나 다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사랑하겠다, 용서하겠다. 네게 장가들겠다고 하십니다. 

그것도 <진실함으로> 장가들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늘 틈만 있으면, 기회만 닿으면, 핑계거리만 주어지면 배신하고 떠나고 등 돌릴 태세가 되어 있지만

주님은 우리가 못나게 굴고 간음하고 부정하고 주님의 이름을 욕 되게 굴 때도 여전히 우리를 진실되게
사랑하신다고 고백하고 계십니다. 좀 더 리얼하게 표현하면 우리는 다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하고 간음한 아내와도 같은 사람들입니다.  우상에게 몸을 판 고멜과도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내게 장가드시겠다고 하신 겁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도 하나님의 이 사랑에 응답해야 합니다. 

나도 하나님의 이런 사랑을 조금이라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곧 <내 사랑을 배신하고 간음한 배우자를 용서하고 사랑하듯 

이 세상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라>는 뜻에 다름 아닙니다. 우리는 한눈을 팔며

건성으로 사랑하는데 하나님은 나에 대해 여전히 눈 먼 사랑을 하고 계십니다. 

부디 <네게 장가 들리라>하시는 주님의 프로포즈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성실하게 응답하시는 신부가 되시길 빕니다.

 

-호세아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십시오.

-<네게 장가 들리라>하신 하나님의 프로포즈에 대해 이스라엘은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고멜과도 같은 내게 용서와 사랑을 다짐하시며 <장가 들겠다>고 고백하시는
하나님께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

 

  

 

주님, 그동안 이스라엘은 바알과 짝하며 하나님을 등지고 배신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호세아 선지자를 보내사 고멜과의 결혼생활로 이스라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의 진수를 전하셨습니다. 가출을 하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고 온갖 부정한 짓을
다 저질렀음에도 여전히 사랑하시고 거듭 용서하시고 장가들어 진실한 부부생활을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사오니 저희들 하나님의 이 사랑의 메시지를 가슴에 깊이 새기게 해주시옵소서.

 
   

등경 위에 둔 등불처럼

소금은 은밀하게 역사한다. 

소금이 녹는 것은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를 않는다.

그러나 빛은 밝히 역사한다. 

빛은 밖으로 발산된다.

그러기에 빛이 비치는 것은 사람들의 눈에 환하게 보인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우리가 말 아래 둔 등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등경 위에 둔 등불이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는 것처럼, 

우리는 어두운 세상에서 우리의 빛을 밝히 비추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세상에서 해야 할 역할이기 때문이다. 

-박상훈 목사의 ‘빛과 소금이 하는 일’에서-

 

물론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었다고 해서,

등불의 성질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등불은 여전히 등불입니다.

단지 등불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뿐입니다. 

등경 위에 둔 등불처럼,

언제나 등불의 역할을 다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자칫 방심하면 어두운 세상에 동화되기 쉽습니다. 

예수님이 주의를 주신 대로, 

우리의 등불을 말 아래 숨기지 마십시오. 

등경 위에 둔 등불처럼, 우리의 빛을

모든 사람에게 밝히 비추도록 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