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이것이 무엇입니까 (출 16:11-21)

鶴山 徐 仁 2020. 12. 14. 10:41

이것이 무엇입니까 (출 16:11-21)

 

 

12월 14일 (월)

   

이것이 무엇입니까 (출 16:11-21)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13.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14.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셨느니라
17.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19.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20.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21. 무리가 아침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 햇볕이 뜨겁게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을 불평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원망과 불평에 대해 어떻게 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출애굽기는 내용 전체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 말씀에 그들이 먹을 것이 없자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들의 원망과 불평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홍해 앞에 있었을 때도, 홍해를 건너서 마라에 있을 때도... 수도없이 그들은 불평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그 불평까지도 응답하십니다. 불평은 나쁜 것이긴 하지만, 반면에 불평을 한다는 것은
불평하는 대상을 의지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우리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끊임없이 불평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불평에 대해서도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정말 문제는 우리가 문제와 상황에 부딪혔을 때조차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불평도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증거로 삼으십니다. 

 오늘 하나님이 그 불평에 대한 응답으로 만나를 주시는데, 한 가지 원칙을 주십니다. 아침에 이슬이 내릴 때 만나가 내리는데, 어떤 사람은 많이 거두고 어떤 사람은 적게 거둡니다. 어떤 사람은 몸이 아파서 거두러 나가지 못하여 먹지 못하고, 어떤 사람이 힘이 있어 많이 거두고 쌓아둡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하신 원칙이, 하루가 지나면 그것을 썩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주실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같이 누리도록 만나를 내려주시는데, 그것을 어느 한 사람이 많이 취하여 불공평하게 배분되는 것에 대해서 경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주기도문에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에게”가 아니가 “우리에게”입니다. 이것을 만나의 메시지와 연결됩니다. 어떤 사람이 많이 거두어 창고에 쌓아두고 내어놓지 않음으로 인하여, 누군가는 굶고 눈물겨워하는 것을 보고 다음 날에 그것을 썩게 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쌓아 둘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많이 거두면 몸이 불편하여 거두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누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중요한 뜻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두 개의 바다가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바다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강입니다. 갈릴리 바다와 사해입니다. 갈릴리 바다와 사해는 연결되어 있어서 갈릴리 바다의 물이 흘러 사해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갈릴리 바다는 살아있고, 사해는 죽어 있습니다. 사해가 죽은 바다인 이유는 흘려보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것도 흘려보내지 않으면 당장은 행복할 것 같지만, 그것은 분명 썩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흘려보내며, “나의 양식”이 아닌 “우리의 양식”을 위해 기도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 우리는 “일용할 양식”이 아닌 “쌓아 놓을 양식”을 위해 걱정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삶을 돌아봅시다. 

- 나에게 주신 은혜를 흘려보내기 위해 결단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주님! “최소한 이 정도는 나에게 필요하다.”고 간구했던 것들이 욕심이었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지 못하는
자세였음을 회개합니다. 오늘 하루 “어떻게 쌓을지”가 아니라 “어떻게 흘려보낼지”를 기도하고 순종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질 뻔했지만

 

“작가 마가렛 미첼은 10여 년에 걸친 산고 끝에 이 위대한 작품을 완성

하였지만,이 무명작가의 작품을 받아 출판해 주겠다는 출판사는 한 곳

도 없었습니다. 끈질기게 3년이 넘도록 출판사를 찾아 다녔지만 한결

같이 외면당했습니다.”

 

김한수 저(著) 《공감》 (하늘아래, 4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미국의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 30여개 언어로 번역되어 2천만 부 이상 판매된 베

스트셀러이자 고전입니다.

작가 마가렛 미첼은 10 여년에 걸친 산고 끝에 작품을 완성합니다. 그

러나 무명작가의 작품을 받아 출판해 주겠다는 출판사는 한 곳도 없었

습니다. 3년이 넘도록 출판사 다녔지만 외면 당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첼은 막 출장길에 오르려는 맥밀란 출판사의 레이슨

편집장에게 여행길에 꼭 한 번만 읽어 달라고 부탁을 하며 억지로 원

고를 맡겼습니다. 대륙횡단 철도는 10여 일이 걸리는 장거리 여행길입니

다. 그러나 레이슨 편집장은 읽지 않았습니다. 열차 여행 도중에 그는

전보를 세 통이나 받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소설을 꼭 한 번 만 읽어 봐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세 번째 전보를 손에 쥔 레이슨은 마침내 원

고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방대한 장편 소설에 푹 빠져 버

립니다. 열차에서 내린 레이슨은 이 책을 출판합니다.

미첼의 이런 적극성이 없었다면 책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함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

원전의 뉘앙스를 잘 살린 찰스 윌리엄스의 번역본에는 이렇게 되어 있

습니다. “Keep on asking, keep on seeking, keep on knocking.”

다시 말하면, “계속해서 구하십시오. 계속해서 찾으십시오.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십시오”라고 의미입니다. 건성으로 기도하지 않고, 간절한

마음으로 계속적으로 적극적으로 기도할 때 주님이 열어주시는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신명기 31:8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신명기 31:8

The LORD himself goes before you and will be with you; he will never leave you nor forsake you.

Do not be afraid; do not be discouraged." Deuteronomy 31:8 [NIV]  

   

하나님을 위한 사람들로 구별해 내신 자

'성도'라는 말은 "거룩한 무리"이라는 뜻입니다. 

개인적으로 적용하면 '성자', '성인'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거룩하여서 거룩하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죄악 된 세상에서 하나님이 불러내셔서

하나님을 위한 사람들로 구별해 내셨기에 '성자'가 된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천국백성답게, 

성도답게 구별되게,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박영일 목사의 ‘로마서 강해 2'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자입니다.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이런 은혜와 사랑을 베푸신 주님께 감사하고 

많은 이를 잘 섬기고  이 복된 소식을 입을 벌려 힘써 전하는 사람,

이 사람의 거룩한 무리가 성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