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하나님을 만나면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창세기 21장 1-8절)

鶴山 徐 仁 2020. 12. 10. 07:20

하나님을 만나면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창세기 21장 1-8절)

 

 

12월 10일 (목)

   

하나님을 만나면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창세기 21장 1-8절)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기억하십니까? 두렵고 무서운 하나님으로 기억하십니까?

아니면, 사랑과 기쁨의 하나님으로 기억하십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믿을 때, 웃기보다는 심각해집니다.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고 책망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니까 하나님 앞에서 경직됩니다. 

이것은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흔히 ‘실없이 웃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리스도인은 ‘실없이 웃는 사람들’입니다. 

‘실없이’라는 말은 ‘이유 없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유 없이 웃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창세기 21장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이후에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장입니다. 

사라는 하나님이 말씀은 하셨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그래서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웃음)”이라고 짓습니다. 

사라는 잃어버렸던 웃음을 찾게 됩니다. 성경에 하나님을 진실로 만난 사람들은 웃게 됩니다. 

진정한 웃음을 되찾게 됩니다. 

아이들은 하루에 평균 400번 이상 웃는 반면, 어른들은 하루에 15번 웃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것이 포함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때문에 그냥 ‘이유 없이’ 웃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 또한 그런 우리를 보시며 웃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아직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은 때라도 그 약속을 믿고 웃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의 이 기쁨이 우리에게 끝나는 것은 하나님의 원하는 기쁨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으로 인하여

우리와 만나는 사람들이 웃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사라와 같은 고백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이 은혜가 내가 웃을 뿐만 아니라

그 웃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렸던 웃음을 찾는 웃음의 통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 오늘 하루를 살면서 웃음을 선언해봅시다. 하나님의 주신 기쁨을 빼앗아가는 상황들과 

   환경 속에서 세상의 어떤 것도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빼앗아갈 수 없다고 선언해 봅시다. 

 - 나의 웃음을 통해 나와 만나는 사람들이 잃어버렸던 웃음을 회복하게 될 것을 기대하며 

   우리를 사용하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하루를 살아갑시다.   

 

주님!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웃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또한 나의 웃음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질 수 있는 기쁨의 통로로 나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좋은 사람

 

“좋은 농부는 가뭄이 들어도 밭갈이를 그치지 않는다.

좋은 장사꾼은 손해를 보더라도 가게 문을 닫지 않는다.

훌륭한 선비는 가난하더라도 도에 게으르지 않는다.”

 

《순자(荀子)》제1권 2편 「수신편(修身篇)」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나쁜 농부는 가뭄이 들면 한탄만 하며 밭갈이를 그칩니다.

나쁜 장사꾼은 손해 볼 일이 생기면 소비자를 배려하지 않고 무조건 가게 문을 닫습니다.

나쁜 선비는 환경이 않 좋아지면 학문을 닦지 않고 술독에 빠져 삽니다.

신앙의 삶이란, 햇볕이 가득하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관성 있게

주님을 신뢰하며 주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러했습니다.

요셉은 이복 형들의 시기를 받아서 억울하게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노예 생활 중에도 신실하게 살아서 주인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이 자신의 집에 팔려온 요셉을 보면서 느낀 것이 이것입니다.

“저 아이는 여느 노예들과 다르구나. 무언가 저 아이의 삶에 흐르는  일관적인 원리가 있구나.”

그 일관적인 원리는 바로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 같이 일관적으로 살았습니다.  

젊었을 때도, 나이 들었을 때도,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고난의 순간에도 영광의

순간에도 늘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좋은 신앙인은 이러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39:2)

   

마태복음 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마태복음 8:26

He replied, "You of little faith, why are you so afraid?" Then he got up and rebuked

 the winds and the waves, and it was completely calm.

Matthew 8:26 [NIV]

   

하나님께 침묵을 강요하는 행위

대부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기보다는 

보이는 인간과 좋은 관계 맺기를 원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명백히 위배되는 일은 

쉽게 눈감아 버린다. 

불의한 자와의 불편한 관계를 피하기 위해 

하나님께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불의와 타협함으로 오는 인간적 평안보다는, 

불의한 자들과 불화함으로써 오는 

내적 갈등과 고통을 선택했다. 

그것이 그의 영혼과 온 교회와 

그리스도를 위해 유익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 평안과 기쁨은 

그에게 있어서 모두 거짓 평안과 기쁨이었던 것이다.

-박재선 목사의 ‘하나님을 좋게 하는 信仰’에서-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내가 인간을 좋게 하랴, 하나님을 좋게 하랴,

인간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보수 신앙은 절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하나님의 절대 신앙입니다.

많은 시련과 환란과 사연을 견디고 이기면서

신앙을 지켜온 성도들은

인간의 이면과 체면에 치중하지 말고 

하나님을 좋게 하는 신앙, 하나님께 인정받고 축복받는 

진실한 신앙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창세기 강해(19) : 박영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