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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社會 關係

[만물상] 태극기 소지죄

鶴山 徐 仁 2020. 10. 6. 15:49

[만물상] 태극기 소지죄

한현우 논설위원


입력 2020.10.05 03:18

 

 

지난 2005년 광복 60주년을 맞아 서울에서 열린 남북 축구대회에는 태극기를 갖고 입장할 수 없었다. 한국 응원단 구호 “대–한민국”도 외칠 수 없었다. 남북 공동준비위원회가 깃발과 현수막 등 개별 응원도구를 일절 반입할 수 없게 했기 때문이었다. 붉은악마는 “우리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응원단”이라며 응원을 포기했다. 2002년 남북 축구대회 때도 경찰은 한반도기를 통과시키고 태극기는 단속해 관객들과 실랑이를 벌였었다. 남북 화해 무드 때마다 벌어진 일이다.

▶1882년 탄생한 태극기는 경술국치 후 일제강점기 내내 제작과 소지 자체가 불법이었다. 3·1운동 때 수많은 사람이 들고 나왔던 태극기는 각 가정에서 만든 것이어서 그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이었다고 한다. 현재 태극기는 ‘대한민국 국기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이를테면 국기가 훼손됐을 때는 소각해서 폐기해야 한다. 형법은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태극기를 손상·제거·오욕한 사람을 최고 징역 5년으로 다스리고 있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태극기는 보다 친근하게 국민 삶 속으로 파고들었다. 태극기를 몸에 두르거나 얼굴에 그린다. 한때 오토바이 폭주족들도 삼일절과 광복절에 태극기를 달고 내달렸다.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대거 태극기를 들고 나오면서 ‘태극기 집회’ ‘태극기 부대’ 같은 말들이 생겨났다. 그래서 이 정권에 태극기는 애물단지 신세다. 국가의 상징인 동시에 반정부 시위용품으로 펄럭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집회에서 국기의 상징성을 훼손하는 경우 태극기 활용을 제약할 수 있다”는 법안이 나오기도 했다.

 

 

▶개천절 날 정부 규탄 시위를 단속하던 일부 경찰이 서울 시내에서 차량을 검문하다가 “차 안에 왜 태극기가 있느냐”며 일부 운전자의 통행을 막았다고 한다. 태극기를 단속하는 건 불법이라는 지적에 “위험 방지 차원에서 적법하게 한 일”이라고 해명했다니 ‘태극기 소지죄’라도 생긴 것인가. 정작 이날 거리에는 무수한 태극기가 펄럭였고 개천절 경축식 참가자들도 태극기를 흔들었다.

▶군사정권 시대 경찰은 거리에서 아무나 붙잡아 가방을 뒤졌다. 이른바 금서(禁書)로 분류된 책이나 시위 관련 유인물이 있으면 바로 연행했다. 무식한 경찰들이 막스 베버 책을 보고 “마르크스? 빨갱이네” 하며 잡아가거나 인도 명상록인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혁명 서적이라며 압수한 것도 그때 실화다. 그랬던 경찰이 이제 소지품을 뒤져 태극기가 나오면 ‘불순분자’ 취급한다. 어쩜 그렇게 하는 짓이 점점 독재정권 닮아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