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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 칼럼] 문재인 정권의 ‘빨갱이’ 만들기

鶴山 徐 仁 2020. 10. 1. 21:26

공무원 A씨는 불순한 월북자로
북한 만행은 우발적 사고로
김정은은 통 큰 계몽군주로…

선우정 부국장


입력 2020.09.30 00:46

 

선우정 부국장

 

연평도 해역에서 피살된 공무원 A씨에 대한 28일 문재인 대통령의 애도 표명은 실종 신고 후 170시간 만에 나왔다. ‘미안하다’는 김정은의 통지 이틀 후였다. “어떻게 북한 해역으로 가게 됐는지 경위와 상관없이”라는 구절도 달았다. 경위란 월북(越北)을 말한다. 대통령 발언 직후 여당은 “월북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같은 당 양향자 의원은 야당을 향해 “굳이 월북이 아니라고 우기는 이유는 뭐냐”고 물었다. 29일 해양수산부는 월북이 사실이라고 발표했다. 애도한다면서 그의 명예를 밟고 또 밟는다.

반대로 묻고 싶다. “굳이 월북을 강조하는 이유는 뭐냐”고. 한국 사회에서 월북은 여전히 반역을 뜻한다. 문 대통령이 존경한다는 김원봉도 월북자다. 해방 직후 다수의 월북자처럼 김일성에 의해 반역자로 몰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대통령은 김원봉의 월북 사실을 들춘 적이 없다. 독립 영웅으로 존경한다면서도 어둠에 묻힌 김원봉의 숙청 과정을 밝혀 달라고 북한에 요구한 일도 없다. 문 정권은 김원봉의 월북 행적을 말하고 빨갱이라고 비판한 야당을 구시대적 색깔론으로 몰아붙였다.

천안함 장병은 사진과 이름이 공개돼 매년 국민의 추모를 받는다. 금강산에서 참변을 당한 박왕자씨도 무고한 희생자로 국민의 추모 대상이었다. 피살된 공무원은 한국 언론에서 여전히 A씨, 모씨, 아무개씨다. 그는 정부가 월북 가능성을 제기한 순간부터 대한민국의 위로와 보호 대상에서 제외됐다. 국가를 배신한 비(非)국민으로 전락했다. 비참한 최후는 불순한 동기가 유발한 자업자득의 결과로 해석됐다. 군이 국민의 죽음을 방치한 ‘골든타임 6시간’, 나라가 국민의 생명을 외면한 ‘대통령 침묵의 33시간’ 등 무수한 국가 책임은 월북설에 희석되고 있다.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얘기하고 아카펠라 공연을 감상해도 괜찮다. 죽은 자는 비국민이니까. 문 정권은 월북 낙인, 반역자 낙인, 빨갱이 낙인을 활용해 정부의 무능을 보여주는 대한민국 공무원 A씨의 상징 가치를 성공적으로 해체했다. 쉽게 말해 대중이 월북자 사진을 들고 광화문에 쏟아져 나올 리는 없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사인(私人)에 대한 기관의 정보 공개를 범죄로 다룬 첫 정부다. 조국 사건 이후 제 식구가 비리의 주역으로 떠오르자 황급히 그런 조치를 내렸다. 지금 수사기관은 흉악범의 범죄 동기도 쉽게 알려주지 않는다. 이번엔 달랐다. A씨 사건은 23일 오후부터 인터넷 뉴스로 빠르게 퍼졌다. 모든 정보를 정부가 장악할 때다. 언론은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처럼 누군가 전하는 조각 정보를 끼워 맞추고 있었다. 이때 처음 나온 중대 정보가 A씨의 월북 정황이었다. ‘북한이 한국 국민을 사살하고 불태웠다’는 본질적 정보는 24일 새벽부터 보도되기 시작했다. 불순한 동기가 참혹한 결과에 앞서 알려졌다. 이런 식으로 거꾸로 확산된 정보 유통을 본 적이 없다. 이후 정부∙여당은 재차, 삼차 A씨의 월북설을 제기했고 어제 월북을 사실로 확정했다.

 

 

이 사건이 더욱 비극적인 것은 그를 살해한 북한이 그를 신원(伸冤)하려 한 것이다. 북한은 한국 정부에 보낸 통지문에서 A씨가 ‘(월북 의사를 밝힌 적이 없고) 한두 번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렸다’고 주장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북한의 박수부대 앞에서 “남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나라다. 이런 나라의, 게다가 가을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8급 공무원이 총을 겨눈 북한군 앞에서 대한민국 국민임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북한을 믿지 않는다. 북한 체제를 지탱하는 두 기둥이 수령과 거짓말이다. 한국 정부의 주장도 믿지 않는다. 자진 월북을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은 자진 월북을 확신할 수 있는 정황만큼 많다. 설사 월북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건 본질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 침묵하는 김원봉의 월북보다 천 배는 더 비본질적이다. 북한이 한국 국민을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것, 그리고 위기에 직면한 권력이 독점 정보를 굴려가며 한 국민을 월북자, 반역자, 빨갱이로 낙인찍은 것이 본질이다.

‘나도 문 정부에 버려질까 두렵다, 북에서 죽은 공무원처럼.’ 25일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공감한다. 상대를 공동체의 적으로 몰아 배제하는 타자화(他者化) 전술은 문 정권의 필살기로 통한다. 이번엔 국민 한 명에게 권력의 필살기가 들어갔다. 공무원 A씨는 불순한 월북자로, 북한의 만행은 우발적 사고로, 김정은은 통 크게 사과한 계몽군주로 포장됐다. 문 대통령은 그제 “(이번 사건이)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는 계기로 반전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사건이 더욱더 비극적인 것은 그가 아주 버려진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무원 A씨의 죽음은 흥행이 끝난 남북 평화 쇼를 화려하게 되살릴 ‘반전의 계기’로 문 정권에 의해 재활용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