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입력 2020.08.27 03:14
손진석 파리특파원
영국의 유력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 행태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칼럼을 냈다.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옹졸함과 내면의 권위주의에 포커스를 맞췄다. 이코노미스트는 문재인 정부 사람들이 일부 언론을 야당 편이라 여기고 그들로부터 비판을 받으면 '피포위 의식(Siege mentality)'을 갖는다고 했다. 민주적 집권 세력을 이런 용어로 표현한 건 이례적이다.
피포위 의식은 원래 적군에 포위된 상황을 말하는 군사 개념이다. 이를 특정 사회적 집단의 정서를 설명하는 용어로 미국 심리학자 대니얼 크리스티가 가다듬었다. 외부로부터 공격받는다는 공통의 정서가 발동해 강한 내부 결속을 이끌어낸다고 크리스티는 분석했다. 흑백 사고에 빠지고 외부인을 신뢰하지 않으며, 두려움에 시달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려는 특성을 보인다고 했다. 소위 '친문 세력'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언론인으로서 피포위 의식을 깊게 성찰한 이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다. 그는 피포위 의식을 가진 정치 집단은 스스로 고결하다고 여기며, 대중에게 자신들의 우월함을 어필하는 스토리를 전달할 줄 안다고 했다. '악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성스러운 소수'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추종자들이 뭉친다고 했다. 친문 세력의 '충성심'이 발동하는 메커니즘이다.
브룩스는 피포위 의식이 집단 내 지도자의 해악을 정당화하는 경향으로 흐른다고 했다. 자신들의 집단이 위험에 빠졌다는 두려움을 느끼면 정직, 예절, 성(性) 윤리 등을 지킬 여유가 없다며 눈을 감아버린다는 것이다. 조국, 윤미향처럼 도덕적 흠결이 노출된 사람들을 왜 극성스럽게 감싸고 도는지 설명이 된다.
중요한 포인트는 피포위 의식이 주로 독재 권력과 그들의 추종자를 설명할 때 쓰이는 표현이라는 점이다. 이란, 북한, 베네수엘라 등의 철권통치 세력이 서방에 의해 위협받는다며 공포를 조장해 지지자들을 동원하는 원리를 설명하는 용어다. 브룩스가 피포위 의식 개념을 끌어온 것도 미국의 극우 정치가인 로이 무어가 아동 성추행을 저질렀는데도 왜 극렬 보수층이 그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는지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민주화 운동이란 '훈장'을 달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독재나 극우 정치의 특질을 보여주는 용어로 비판받은 건 부끄럽다는 정도에 그칠 일이 아니다. 요즘 피포위 의식을 적극 활용하는 세력으로는 사 법부·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폴란드 극우 포퓰리스트 정권이 지목된다. 이들과 비슷하게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경로를 '한국의 민주적 권력'이 따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해외 유력 매체가 제기한 것이다.
브룩스는 피포위 의식을 가진 집단의 말로(末路)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들에게 거슬리는 팩트는 걸러버리고 점점 극단으로 치닫다가 자기 파괴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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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27/20200827000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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