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입력 2020-08-17 00:00 수정 2020-08-17 03:52
그제 문재인 대통령의 제75주년 8·15 광복절 경축사는 한마디로 답답한 국민의 마음을 풀어주기에 미흡한 것이었다. 부동산정책의 실패 등으로 인한 지지율 추락이 보여주듯 지금 민심은 그 어느 때보다 현 정부가 과감한 국정 쇄신을 통해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8·15 경축사인 만큼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고 독립된 민주국가로서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겠지만, 경축사 어느 대목에서도 문 대통령이 지금의 대내외적 위기를 직시하고 심기일전하겠다는 다짐을 느끼기 어려웠다.
먼저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북한 핵 문제를 의제로 삼지도 못한 채 “남북협력이야말로 최고의 안보정책”이라는 공허한 말을 내놓는 데 그쳤다. 보건의료 방역협력, 산림협력, 농업기술 공동연구 등을 거듭 제안하긴 했으나 홍수 피해에 대한 어떤 외부 지원도 받지 않겠다는 북한의 시큰둥한 태도 때문에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옹색한 상황임을 드러냈을 뿐이다.
갈등의 교착 상태가 이어지는 대일관계 역시 “언제든지 일본 정부와 마주 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원칙론적인 입장만 내놓았다.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 담겨 있지만, 그렇다고 상황을 타개해 나갈 특별한 비전은 제시되지 않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패전기념일 추도사는 ‘역사’라는 단어가 아예 사라지고, 자위대 역할 확대를 의미하는 ‘적극적 평화주의’를 주장하고 나서는 등 오히려 강경 기조로 ‘퇴행’했다. 한일관계가 돌파구를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다시 대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실물경제의 위기, 꺾이지 않는 부동산값 상승,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청년실업, 나랏빚의 급격한 증가 등 후손들에게 물려줄 국가의 지속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난제들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경제 상황에 대해서도 “올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7개국 가운데 성장률 1위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는 장밋빛 전망을 인용해 ‘선방론’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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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여 있기만 한 남북관계와 대일관계에 대한 뚜렷한 해법도, 국론을 분열시켜 온 국정 독주에 대한 성찰도 없었던 이번 경축사는 문 대통령이 낙관적인 전망에만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만 더 키워 주었다. 임기 후반기 국내외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선 환골탈태 수준의 대대적인 국정 쇄신이 필요한데 대통령은 국회 절대 과반 의석만 믿고 갈수록 민심과 멀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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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對外관계 비전도, 국정쇄신 의지도 찾기 힘든 文 8·15 경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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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쇄신 #문재인 대통령 #경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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