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삿 14:5-14)외 2

鶴山 徐 仁 2020. 3. 1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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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종소리 - 365일 하나님과 행복한 삶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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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월 1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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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삿 14:5-14)

5. 삼손이 그의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젊은 사자가 그를 보고 소리 지르는지라

6.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7. 그가 내려가서 그 여자와 말하니 그 여자가 삼손의 눈에 들었더라

8.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맞이하려고 다시 가다가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 떼와 꿀이 있는지라

9. 손으로 그 꿀을 떠서 걸어가며 먹고 그의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서 먹게 하였으나 그 꿀을 사자의 몸에서 떠왔다고는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10. 삼손의 아버지가 여자에게로 내려가매 삼손이 거기서 잔치를 베풀었으니 청년들은 이렇게 행하는 풍속이 있음이더라

11. 무리가 삼손을 보고 삼십 명을 데려와서 친구를 삼아 그와 함께 하게 한지라

12.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너희에게 수수께끼를 내리니 잔치하는 이레 동안에 너희가 그것을 풀어 내게 말하면 내가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너희에게 주리라

13. 그러나 그것을 능히 내게 말하지 못하면 너희가 내게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줄지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네가 수수께끼를 내면 우리가 그것을 들으리라 하매

14.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본문 해석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6절).

삼손은 천하무적의 괴력의 사나이였습니다.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이스라엘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힘의 비밀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삼손의 힘이 그의 머리털에서 나온다고 믿은 것은 오직 삼손 자신의 생각일 뿐 성경은 그의 힘에 대해 항상 <여호와의 영이 임하셨기 때문>(19절, 15:14, 16:20)이라고 합니다. 그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체포될 당시 힘을 쓰지 못한 것도 머리털이 잘려서라기보다는 여호와께서 그를 떠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의 초인적인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삼손은 언제 그런 여호와의 영의 감동을 받았을까요? 

이점이 중요합니다. 그가 나실인의 언약을 지킬 때였습니다. 즉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충실했을 때 그와 정비례하여 힘이 강력해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인간의 순종을 말씀합니다. 따라서 순종이야말로 하나님의 위대한 힘을 저장하는 그릇입니다. 그럼에도 삼손은 신실하지 못했고, 무책임했으며 나실인의 언약도 무참하게 파기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영이 그를 떠났고 그는 머리카락을 잘리고 힘도 잃고 두 눈도 뽑히고 놋줄에 매여 연자 맷돌을 돌리는 짐승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방인의 구경거리로 추락하고 만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 삼손이 다시 한 번 신전의 두 기둥을 무너뜨릴 만큼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머리털이 다시 자랐기>(16:22) 때문이라기보다는 회개하고 진지하게 기도하여(16:28) 다시 여호와의 영이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성도들이나 교회도 하나님의 영의 도우심으로만이 강력한 악령의 역사를 물리치고 세상과의 대결에서도 승리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결단과 적용

-심손의 초인적인 힘에 대한 당신의 견해를 적어 보십시오.

-삼손의 그 큰 힘이 왜 그를 떠났을까요?

-삼손이 딤나 사람들에게 낸 수수께끼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삼손의 그 위대한 힘은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의 머리칼이 길어서가 아니라 그가 나실인의 언약을 지켜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을 때 여호와의 영이 역사하사 그토록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언약을 지키지 않아 머리카락을 잘렸을 때는 여호와의 영이 그를 떠나시므로 힘을 잃고 파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디 이 시대 저희도 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강력한 성령의 역사 속에서 놀라운 힘을 발휘하며 살게 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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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

나는 예수님이 은사를 주신 이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중 몇 가지만 생각해 본다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훈련받고, 

하나님의 교회가 강해지고, 모두 성장하여 예수님처럼 되고, 

우리가 오류와 유혹하는 거짓된 음성에 희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재능, 기술, 은사를 구별하려는 노력은 그만두자. 단 한 가지, 

이 모든 능력이 궁극적으로 하늘에서 내린 것임을 인정하자. 

-고든 맥도날드의 [영적 성장의 길] 중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왜 주셨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이 있어야 합니다. 

것이 세상 가운데서 드러나지 않는 작은 것일지라도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임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주께 하듯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셨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믿음이 진짜입니다. 

더 이상 남의 은사를 내 것으로 둔갑시키거나 부러워하거나 더 큰 은사를 구하기보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은사에 만족하며 충성을 다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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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월 1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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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블레셋 여자를(삿 14:1-4)

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3.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본문 해석

<삼손이 자기 부모에게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2절).

삼손은 사사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에 앞서 블레셋 여인과의 결혼을 원했습니다. 딤나에 갔다가 그곳에서 한 블레셋 여인을 보고 돌아와 부모에게 <그 여자를 내 아내로 삼게 해 달라>며 조릅니다. 부모는 당연히 <네가 어찌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의 딸을 아내로 맞으려 하느냐>(3절)며 반대했지만 삼손의 고집과 끈질긴 요구를 이기지 못해 결국 허락하고 맙니다. 

 

<내가 그 여자를 좋아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3절).

성경은 당시 삼손이 그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기를 원했던 동기를 두 가지로 전합니다. 

①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3절)

이 말은 <그 여자가 나를 즐겁게 하므로>라는 뜻입니다. 

② <그 여자와 말하니>(7절)

이 표현은 <그 여자와 말이 통한다>는 의미입니다. 

삼손은 딤나의 블레셋 여인의 이 두 가지 매력에 끌려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관철하다 결국은 엄청난 실패에 직면하고 맙니다. 결혼 상대의 신앙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겉모습이 아름답고, 서로 대화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이방 여인과 결혼하여 큰 아픔을 겪었던 삼손의 선택이 오늘 이 시대 성도들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아합 왕이 이세벨이라는 이방 여인과 결혼하여 자신과 나라를 참혹한 비극에 빠뜨린 것처럼 삼손도 그렇게 자신의 정욕대로 이방 여인과 결혼하면서 그의 모든 것이 철저하게 어긋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부모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결혼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삼손의 이방 결혼과 또 실패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랴>(고후 6:14-15).

결단과 적용

-<딤나>는 원래 어느 지파의 기업이었습니까(수 19:34)?

-이방 결혼을 금하는 출애굽기 34:16 말씀을 옮겨 보십시오.

-삼손의 아내 선택에 대한 당신의 소감을 간략히 적어 보십시오.

오늘의 기도

주님, 삼손은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나실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이나 부모님보다는 모든 걸 철저하게 자신의 인간적인 취향대로 결정하고 또 아내도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실패로 이어졌고, 그 비극은 또 다른 불행을 잉태하며 그의 삶과 사명과 운명을 위협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소명을 받은 자는 자신의 기호나 바람보다는 오직 하나님의 뜻이 우선임을 깨닫고 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결단으로 살아가게 해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한 의자의 법칙
인문학 나눔

“사람의 뇌는 동시에 두 가지 반대 감정을 가질 수 없다.  

곧 사람의머리에는 오직 한 의자만 놓여 있어서 

여기에 절망이 먼저 앉아버리면희망이 함께 앉을 수 없고,  

반대로 희망이 먼저 앉아버리면 절망이함께 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차동엽 저(著) 《희망의 귀환》 (위즈 앤 비즈, 9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의자 하나에는 한 사람만 앉을 수 있다는 ‘한 의자의 법칙’이라는말이 있습니다.  

리 마음은 의자와 같습니다.  마음의 의자에 낙심이앉으면 평화가 올 수 없고,  

반대로 평화가 앉으면 낙심이 앉지 못합니다.   

평화와  낙심의 합은 100입니다.   평화가 ‘50’ 일 때 낙심은 ‘50’이 되고,  

평화가 ‘90’일 때 낙심은 ‘10’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하늘의 평화가 임합니다.  

하늘의 평화가 충만할수록 낙심이 작아집니다.  

낙심을 몰아내는 길은 내 마음에 앉은 

낙심의 자리를 몰아내는 하늘의평화가 임하는 것입니다.

기독 메시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그림 큐티더 보기
요한계시록 21장 4절
고린도전서 15:10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He will wipe every tear from their eyes. 

There will be no more death or mourning or crying or pain, 

for the old order of things has passed away.(NIV)

도서 큐티더 보기
교회

교회는 아직 더 많은 퍼즐 조각들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교회에 대한 어떤 퍼즐 조각도 

내 마음의 뿌리에 숨어있는 늪에 빠져 삼켜질 수 있었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따뜻함이라는 지나치게 감정적인 요소, 

심지어 선지자적 말씀의 선포까지도 예외 없이 무력하게 

소진시킬 수 있는 자기중심적 욕망, 자기 존재를 입증하려는 

우상이 이 늪에 붙은 이름이었다. 결국 자신의 기대, 

자신의 욕구,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열망이 문제였다.

-정갑신의 [대답하는 공동체] 중에서-

 

교회를 세워가고자 하는 열망은 귀합니다. 

그러나 그 많은 것에 자기중심성을 버리지 못하면 

자신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노력이 자기 의나 공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는 바벨탑이 우리 안에도 날마다 자라고 있습니다. 

자기 부인이 없으면 자기중심성에서 떠나지 못합니다. 

십자가를 붙들지 않으면 우리는 골고다 언덕 너머에 있는 

구원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자기라는 늪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리의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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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월 12일 (목)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기묘자(삿 13:15-25)

15.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구하옵나니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 하니

16.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게 하나 내가 네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마노아가 알지 못함이었더라

17. 마노아가 또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귀히 여기리이다 하니

18.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19. 이에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이적이 일어난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본즉

20.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21.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 마노아가 그제야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22. 그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니

23.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24.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본문 해석

<마노아가 또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 내 이름은 기묘자라>(13-18절).

여기에 나오는 <기묘자>란 히브리어 <펠레>로 <이해를 초월한 자>, <놀라운 분>이란 의미입니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초월적이고도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칭호입니다. 이사야서에서는 메시아의 속성을 묘사하는 말로도 사용됐습니다. <...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8:6).

 

그렇습니다. 주님은 <기묘자>이십니다. 믿는 자들이란 본문의 마노아와 그의 아내처럼 기묘자이신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입니다. 마노아 부부를 보십시오. 본래 임신하지 못해 출산을 경험해 보지 못한 가정이었는데, <기묘자>를 만나고 임신하여 <태양>(삼손)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아들을 낳았습니다. 

 

또한 블레셋의 침략으로 사십 년간이나 고통당했는데 그 <기묘자>로부터 <그가(삼손)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라>(5절)는 희망의 메시지를 듣습니다. 

이렇듯 <기묘자>는 비극의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가정적인 아픔을 안고 사는 자들에게, 그리고 이름 없이 살아가는 약하고 천한 자에게 찾아오셔서 그야말로 기묘한,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고 상식을 초월하고 물리적 법칙을 초월한 이적으로 아들도 생산하게 하시고, 외적도 물리치게 하시고, 절망적인 위기에서 탈출하게도 하십니다. 

 

십자가는 기묘자되신 주님의 인간 구원 방식의 극치입니다. 기묘자이신 주님의 정체성이 가장 극적으로 구현된 사건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완전한 사람이신 분, 완전한 공의를 관철하시면서 동시에 완전한 사랑을 성취하시는 분이니 얼마나 놀라울 정도로 <기이하고 묘한 자>라는 칭호가 잘 어울립니까? 

주님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기이하게, 불가사이하게, 초월적으로 사랑하시고 또 경이롭게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기묘자>십니다.

결단과 적용

-이사야 9:6-7을 옮겨 적어 보십시오.

-<기묘자>라는 칭호에 대한 당신의 견해를 적어보십시오.

-삼손의 어린 시절에 대한 특징을 요약해 보십시오(24-25절).

오늘의 기도

주님, 저희로 하여금 <기묘자>로서의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총을 깊이 체험하고 또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주님이 베푸신 사랑과 구원은 기묘하지 않은 게 없음을 고백하며 진심으로 감사하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존재 그 자체와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 그 무엇 하나도 초자연적 이적이 아닌 것이 없음을 

시인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더욱 담대한 저희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좋은 사람을 얻기 위하여
인문학 나눔

“HP사의 공동 창업자 중 한 사람인 데이비드 패커드는 동업에서 

신뢰관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회사의 성장 속에서 입증해 보인 사람입니다. 

그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신이 내리는 선물’ 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사람과의 관계를 저버리는 것은 신이 내린  선물을 

내팽개쳐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김형수 저(著) 《참 좋은 생각》 (함께, 11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회복됩니다.  좋은 사람은 마치 좋은 공기와 같습니다.  

좋은 공기를 마시면 육체에 새 힘을 얻는 것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면 

영혼도 새 힘을 얻습니다.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살아 오면서 

가장 탁월한 의사결정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창업 동역자 폴 앨런, 

하버드대학 기숙사친구였던 마케팅의 귀재 스티브 발머를 최고 경영자로 

영입한 것이라고대답했습니다.  

자신의 약한 점을 보완해 줄 수 있고,  전적인 신뢰를할 수 있으며,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하고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것은빌 게이츠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한 사람 더아눕 굽타가 가세합니다.  

1997년, 스탠포드 대학 교수 아눕 굽타는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술자로 명망을 얻고 있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빌 게이츠는 자신의 전용기를 보내 만찬에 초대하는 등 

아눕 굽타의 영입을 위해 많은 공을 들입니다.  채식주의자인 굽타를 위해

자기 정원에서 특별 채식 만찬으로 초대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빌 게이츠의 제안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빌 게이츠는 기상천외한 일을합니다.  

바로 아눕 굽타가 소속돼 있던 회사 자체를 통채로 인수해버립니다.  

졸지에 아눕 굽타의 사장이 빌 게이츠로 바뀐 것입니다.  

이에 아눕 굽타는 빌 게이츠와 함께 일하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만남의 축복,  그 만남을 알아보는 눈,  

그리고 그 인재를 얻기 위한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 같은 

섬김 속에 승리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바나바는 최고의 인재 바울을 알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기득권을 바울에게 주면서 그를 세웠습니다.  

그 결과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기독 메시지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11: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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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3편 4절
고린도전서 15:10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your rod and your staff, they comfort me.(NIV)

도서 큐티더 보기

죄는 성향과 방향성을 가진다. 하나님을 향한 방향성을 갖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가? 우리가 이 땅에서 먹고 자면서 

똑같이 살아가는 것 같아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의 방향성은 하나님께 향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께 향하지 않는 우리의 방향이란 

결국 바벨탑을 쌓고 자기 이름을 내는 것 일뿐이다. 

신앙의 방향은 하나님께 맞춰져 있어야 한다.

-김남국의 [넌 내가 책임진다] 중에서-

 

죄란 우리의 성향과 방향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잘못한 것으로 죄를 생각하지만 

죄의 근본은 우리의 마음, 태도, 자세에 이미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선한 의도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한다고해도 

그것이 하나님께 방향을 두지 않으면 죄가 됩니다. 

그래서 날마다 우리의 마음을 살펴야 하는 이유이며, 분별해야 하는 까닭입니다